영화 스탭들이 영화에 붙길 기다려 2001년 10월16일 오전. 날씨 맑음.
오늘은 새벽 일찍 일어나서 모두 동원되는 날이었다. 엑스트라들이 많이 동원되는 날이었기 때문에 연출부들은 새벽 4시에 일어나 이미 분장팀과 합류하고 있었다. 엑스트라들이 많은 날은 연출부들이 분장을 하고 엑스트라들 안으로 섞여 들어간다. 그래서 그들의 동선을 그 안에서 일일이 지시해줘야 한다. 당신이 눈썰미가 좋은 사람이라면 엑스트라들의 움직임 안에서 그들의 움직임이 그룹지어져 있음과 함께 그들을 이끌고 움직이는 사람을 발견할 것이다. 그 사람이 연출부라고 생각하면 거의 틀림없다. 이날 촬영은 이미 45회 촬영이었는데, 장면은 장승업이 마흔한살이 되던 1882년 초여름 양반집을 나와 시장거리로 나서면서 떡을 훔치는 거지를 보고 회상에 잠기는 이 영화의 두 번째 장면이었다.
장면 # 2 서울 거리(초여름), 41살
화창한 날씨와 대조를 이루어 황량한 풍경, 포졸들이 각지에서 모여든 처참한 유민 무리들을 단속하고 있다. 그 아수라장 속을 지나가는 홍포차림의 승업, 뒤를 따르는 판쇠, 거지패 중 한놈이 떡판의 떡을 훔쳐 잽싸게 달아난다.
떡장수 “이런 후레자식 같은 놈들, 거기 못 서느냐?”
쫓아가는 떡장수를 피해 달아나는 거지패를 물끄러미 바라보던 승업, 어릴 적 기억으로 빠져든다.
물론 영화의 도입부인 대목의 계절이 초여름인데도 불구하고 이 장면을 늦가을이 된 지금 찍는 가장 큰 이유 중 하나는 세트장이 이제야 만들어졌기 때문이기도 할 테지만, 더 큰 이유는 “영화 스탭들이 영화에 붙을 때까지 기다려만 했기 때문”(임권택 감독과의 인터뷰)이었다. 이제는 충분히 다들 들어왔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영화 안의 사람이나 바깥의 사람이나 함께 장승업의 회상에 이끌려 그의 기억을 따라 플래시백의 타임머신 안으로 들어가는 것이다. “영화는 쉬운 장면부터 찍는 거요. 처음부터 어려운 장면과 맞닥뜨리면 풀어낼 도리가 없는 거요. 그건 누구라도 마찬가지일 거요. 그렇다고 어려운 장면을 뒤로 몰아도 안 되는 거요. 그러면 나중에 완전히 지치게 되는 거요. 그걸 잘 순서를 맞추어서 어려운 것과 쉬운 걸 운용해가는 게 중요하지요.”(임권택 감독과의 인터뷰)
시장통 안으로 걸어들어가는 장승업을 카메라는 3m 높이의 크레인으로 따라 올라가면서 종로 거리 전경을 함께 보여주어야 했다. 이미 가게마다 드라마를 지시한 상태였다. 장승업이 등을 보이고 거리 안으로 걸어 들어가는 장면이었다. 항상 현장에서 제일 괴롭히는 것은 태양광선이다. 구름은 해를 뒤쫓고 있었고, 초여름을 보여주어야 할 따가운 햇살은 번번이 구름 뒤로 숨었다. 게다가 많은 엑스트라들은 마음대로 움직여주지 않았다. 우선 카메라가 지상에서 수직 상승하면서 장승업을 뒤따라가는데 여기에는 세 가지 속도가 맞아야 한다. 그 하나는 장승업의 걸음걸이와 그 주변의 엑스트라들의 오고 가는 걸음걸이, 그리고 카메라가 올라가는 속도가 맞아야 한다. 크레인에서 카메라를 들어올리는 건 지렛대의 법칙을 응용한 사람의 무게 속도이다. 그러나 반대편에서 누르는 사람은 당연히 파인더가 보이지 않는다. 그리고 그 카메라를 틀어주는 또다른 한 사람이 있다. 말하자면 세 사람의 움직임에 의한 카메라의 속도와 초점이 프레임 안의 등장인물과 맞아야 한다. 이 장면에서는 중간에 초가지붕이 걸리기 때문에 올라가는 속도가 반드시 일정하지는 않았다. 무엇보다도 카메라가 따라가는 속도가 장승업을 군중 속에서 놓치면 안 된다. 일부러 장승업을 구별하기 위해 다른 사람들과 다른 색의 갈색 도포를 입히기는 했지만, 모습이 작아지면서 놓칠 수도 있기 때문이다. 게다가 엑스트라들은 종종 무리지어 움직이면서 화면의 일부분을 비워버리기 일쑤였다. 아홉번 만에 오케이가 난 이 장면의 뒤이은 숏 3은 걸어가는 장승업을 따고 들어가서 트래킹숏으로 따라간다. 좀더 정확하게는 트래킹과 팬이 결합한 것인데, 세 가지 이동이 화면 안에 함께 있다. 전체적으로는 두개의 마스터숏 사이의 더블액션인데, 그 화면 안에서 장승업의 걸음과 시장통 사람들의 이동과 병사들의 이동이 있다. 그러니까 전체 화면의 움직임은 장승업과 병사들을 반대 방향에 놓고 두개의 동선을 그은 다음 시장통 엑스트라들의 동선을 빈 공간에 채워 넣었다. 간단치 않은 이유는 동선이 동일선에 있기 때문에 부딪치기 쉽다는 점도 있지만(사실 그건 기초다!), 진짜 이유는 장승업을 둘러싼 사람들이 엑스트라 같지 않게 그들끼리도 살아 움직여주면서 장승업의 드라마를 다치면 안 된다는 것이다.
그들 모두는 조선시대 말을 함께 살아간 사람들이다. “주인공이 지나가면 사람은 항상 교차시키는 것을 기본동선으로 잡고, 그 다음에 넣고 빼기를 시작하는 것이 중요합니다.”(정일성 촬영감독과의 인터뷰) 거지 아이가 떡을 훔쳐가자 떡장수 아줌마가 지르는 소리를 사인으로 하여 카메라는 팬하면서 장승업을 프레임 아웃시켰다가, 그 자리에 선 카메라 안으로 장승업이 다시 걸어 들어온다(비인칭 시점숏에서 일인칭 시점숏, 그리고 다시 비인칭 시점숏. 이것을 컷으로 나누지 않고 팬을 통해서 연출했다. 히치콕의 원칙 그대로이다. “드라마가 요구하지 않으면 시점숏을 만들기 위해서 장면을 나누지 말라. 그것이 영화의 경제성이다.”).
여기서 사운드는 주관적 몽타주의 기능을 한다. 그런데 실제로 모브신 장면을 보면서 그 미장센에서 어려운 점은 그 모브신을 만들어내는 것보다 그 장면의 엔지를 골라내는 것이 더 어렵다는 사실을 알았다, 수많은 사람들이 동시에 움직이고 있기 때문에, 어느 부분에서 누가 잘못되었는지는 놓칠 수밖에 없었다. 솔직히 말하면 그것을 따라가면서 보는 것조차 쉬운 일이 아니었다. 그런데 임권택 감독은 여지없이 잘못을 아주 구체적으로 지적하였다. “동선을 따라가면서 보는 거요. 인물을 보고 있으면 사실은 아무것도 안 보고 있는 거니까. 문제는 그게 마음속에 그어놓은 것이기 때문에 확연하지 않아 보이긴 하지만, 그러나 그게 분명하지 않으면 그 다음 장면을 어디서 받아야 할지 알 도리가 없는 거죠.” (임권택 감독과의 인터뷰) 그러나 여기에는 더 중요한 것이 있다. 그 엑스트라들이 움직이는 것은 그저 공간을 채우기 위한 것이 아니라는 점이다. 무엇보다도 그 엑스트라들이 세트 안에서 세트를 삶의 공간으로 살아 있게 만들어주고, 그들이 시대의 공기를 만들어내는 것이다. 그래서 그들의 동선은 동시에 조선시대 말 사람들의 생활의 동선이 되어야만 했다. 이 장면을 세 숏으로 나누기는 했지만, 예비로 두 숏을 더 찍어놓았다.
임권택이라는 거대한 나무를 봄 2001년 10월16일 오후
오후에 뒤이어 장면 120으로 이어졌다. 종로 거리를 무대로 장승업이 표구사에 찾아가 맡긴 그림을 찾아 찢어버리는 대목이다. 그런 장승업 곁을 일본 군대가 지나가면서 나라가 기울어가는 모습이 거기 겹친다
장면 # 120 표구사
승업 (들어서며)“내 ‘쌍마도’ 어떻게 됐냐?”
장황사 1 “오늘 중으로 끝내려고 하네. 배접은 다됐어.”
승업 “어딨어?”
(승업, 그림을 보고 있으면 주인과 중개상이 들어온다)
주인 “야. 거! 청군에 비하면 영판 규율이 쎄구만!”
승업 “이 ‘쌍마도’ 내가 다시 그려줄 테니 가져가겠네.”
주인 “안 돼! 무슨 소린가? 김진사네가 지금 황새목이 돼가지고 기다리고 있는데, 오늘 중에는 표구 끝내서 전해준다고 철석같이 약속했는데.”
(승업, 칼로 그림을 북북 긋고는 나간다)
중개상 “아이구, 저놈의 성질머리하고는 어쩐지 좀 허술해 보이더라니.” 주인 “내가 보기에는 괜찮은데.”
우선 이 장면들은 빛의 방향의 일관성 때문에 같은 방향으로 빛이 떨어지는 장면들을 먼저 몰아서 찍고 있었다(햇빛은 항상 영화를 불편하게 만든다. 영화 안에서 일순간에 벌어지는 장면이지만, 실제로 그 촬영은 하루종일 걸렸을 수도 있다. 그런 경우는 화면에 떨어지는 빛을 보면 안다). 홀수촬영은 아니지만, 일단 한쪽 방향에서 몰아서 찍을 수 있는 것들을 먼저 찍어나갔다. 이런 경우 반대 방향에서 찍을 때 동선이 문제가 될 수 있다. 그래서 임권택 감독은 한쪽 방향으로 몰아서 찍으면서 숏 단위 안에서 행동이 그 자체로 완결되게 연출했다.
다만 숏 2의 그림을 빼내는 장면은 더블액션으로 찍었다. 그러니까 장승업이 표구를 빼내는 숏 2에 대한 장황사 두명의 반응을 찍은 숏 3은 신 안에서 잉여이다. 그러나 숏 3이 없으면 상상선을 넘어가지 못한다. 길을 중심으로 그어놓은 상상선을 맞추기 위해서 임권택 감독이 사용한 상대숏은 표구라는 소도구를 중심으로 놓고 세워졌다. 그건 매우 합리적인 선택이었다. 일단 표구는 이 장면의 중심 소도구일 뿐만 아니라(관객은 표구가 어떻게 되는지가 이 신의 관심이다. 그러니까 표구는 일종의 이 신의 히치콕적인 매거핀이다), 가볍기 때문에 자유자재로 위치를 옮기면서 카메라의 위치에 자율성을 줄 수 있었다. 여기서 재미있는 점은 네 가지 사이의 불일치이다. 그것은 이야기의 시점과 카메라의 시점을 일치시킬 필요가 없다는 것이며, 이야기의 주인공과 숏의 주인공이 일치할 필요가 없다는 것이다. 카메라의 프레임 안에 걸려든 모든 등장인물들의 동선을 따라 결정하는 대신 현장은 숏의 논리를 따르면 된다. 다소 번거롭게 설명한다면 숏의 세계-내-존재는 결국 시선의 문제이다. 그래서 프레임에서 장승업이 들어가 있는가, 아니면 프레임 바깥으로 빠져 나오는지가 매우 중요해진다. 임권택 감독은 내 머리 속에서 내가 알고 있는 영화문법들과 거의 술래잡기를 벌이는데, 이번에는 절대 이 선을 넘지 못할 것이라고 생각한 금지의 상상선을 때로는 인물로, 또는 동선으로, 그리고 프레임 인-아웃을 따라서, 그리고 종종 숏의 기능을 신의 기능으로 바꿔서 정말 귀신같이(!) 빠져나갔다. 장 미셀 프루동이 임권택 감독의 영화를 이야기하면서 “오늘날 이 고전적인 마에스트로가 남아서 영화를 만들고 있다는 사실을 발견한 건 일종의 기적이다. 그는 지금 세계 영화 속에서 고전의 시대를 재현해서 우리에게 눈부시게 보여주는 중이다”라고 말할 때 나는 전적으로 공감한다. 포스트모던 시대의 반칙영화들을 보다가 임권택 영화의 현장에 선 것은 내게서 영화의 원칙에 대해서 다시 생각해보게 만드는 성찰의 시간이 되었다. 그날 오후는 내게서 지구의 회전을 느낄 만큼 어지러운 하루였다. 거기 그 지구에 임권택이라는 거대한 나무가 단단하게 뿌리내리고 서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