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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정소년` 장혁이 쓴 15개월의 <화산고> 고군분투 촬영외전
2001-12-07

화산에서 죽도록 굴렀네, 영화를 배웠네

<사비망록>이라는 전설 속의 책을 얻기만 하면 무림의 최고수가 된다는 이야기가 전해져내려오는 가공의 학교 화산고. 이곳을 배경으로 펼쳐지는 판타스틱액션영화 <화산고>에서 장혁은 핵심인물이다. 그가 학교에 등장하면서 학교에는 심상치 않은 기운이 감돌기 시작하며 비정과 배신, 그리고 우정과 사랑의 드라마가 펼쳐진다. 화산고를 장악하려는 장량, 교감, 수학교사 등의 음모에 분연히 맞서 진흙탕에 처박힌 정의를 구해내는 것도 모두 그의 몫이다. 영화 경력이라곤 ‘세상물정 잘 모르던 시절’ <>에 출연했던 것이 고작인 장혁은 이 영화를 통해 비로소 배우가 뭔지, 연기가 뭔지, 영화가 뭔지를 깨달았다. 2000년 8월31일 시작, 2001년 7월13일까지 무려 11개월 가까이 진행된 촬영과정에서 그는 자신만의 캐치프레이즈 ‘열정과 패기와 젊음’이 영화 안에서 어떻게 구현돼야 하는지를 깨닫게 됐고, 다른 사람과의 작업이 얼마나 힘겹고 감동적인지를 알게 됐다. 이 일지는 배우 장혁이 <화산고>를 찍는 동안, 깊이 간직해뒀다가 <정글쥬스> 촬영을 마친 최근에야 다시 정리해낸 피와 땀과 눈물의 기록이다(현재 <화산고> 홈페이지에서 연재중인 일기는 <화산고> 촬영을 마친 직후 정리한 내용이다). 이 일지를 통해 우리는 감독이나 제작자와는 다른 배우의 영화에 대한 시각을 읽을 수 있을 것이다. 편집자

2000년 7월9일

서울 싸이더스 사무실

시나리오를 처음으로 접하는 날, 설렘은 황당함으로 바뀌었다. 제목부터 <화산고>라…. 아니, 차승재 이사님은 내게 <허리케인 조>를 찍자고 하지 않았나. 혹시나 하고 시나리오를 읽어봤지만, 권투 글러브조차 나오지 않고 거짓말같이 장력을 날리고 공중에서 뺑그르르 도는 만화 같은 이야기밖에 없다. 이런, 4개월 동안 양재동 복싱장에서 연습한 건 뭐란 말인가. 그래 뭐 어차피 같이 영화를 만들자고 약속한 것, 그냥 하자고 마음을 먹는데 오히려 함께 들어온 <정글쥬스>(애초 이 영화의 제목은 <딕조멕>이었다)라는 시나리오가 맘에 든다. 뭔가 개성있고 강해보이는 캐릭터가 괜찮을 것 같다. 그리고 <화산고>라는 영화는 시나리오가 재밌긴 한데, 여기에 적힌대로 화면이 만들어지지 않을 것 같다. 자신의 공력을 주체하지 못하는 김경수의 캐릭터도 잘 파악이 안 된다. 그런데 차 이사님이 <화산고>를 1월까지 끝낸 뒤 <정글쥬스>를 찍게 해주겠다고 보장하신단다. 결국 가벼운 마음으로 이 영화에 임하기로 나는 결심한다.

이 만화같은 그림이, 만들어질까?

2000년 8월3일

서울 보라매공원 액션스쿨, 기초훈련

<화산고>에는 와이어액션을 비롯해 다양한 액션연기가 많아서 액션스쿨을 다니며 몸을 만들고 있다. 사실 만만치 않게 시급한 것은 캐릭터 분석이다. 시나리오를 죽 읽어본 결과, 경수라는 캐릭터를 표현하기 위해선 상상력에 많은 부분을 의지할 수밖에 없을 것 같다. 무공을 쓰는 모양새도 그렇지만, 사모하는 유채이에게 사랑을 고백하면서도 내면의 두려움 때문에 표정은 일그러지는 경수의 모습은 만화적인 상상력의 소산인 것 같다. 사실 이 영화를 찍으면서 평소에 틈틈이 만화책과 애니메이션을 봐왔다는 것에 자부심을 갖게 됐다. 만약 <골든보이>를 보지 않았다면, 채이만 만나면 푼수가 되는 모습을 어떻게 연기했을 것이며, <미래소년 코난>을 가슴 깊이 간직하지 않았던들 자기 자신이라는 섬에 갇힌 아이의 연기를 어찌 했겠는가, 푸하하. 여기서 만족할 장혁이 아니다. 극의 흐름이 고조되면서 경수의 캐릭터도 점점 진지해지고 멋있어진다는 점을 표현하기 위해 시나리오에 맞는 캐릭터 계획표도 짜나갈 생각이다.

2000년 8월31일

충북 청주 청주상고 교문 앞, 경수의 등장

드디어 크랭크인이다. 드디어 내 이름을 건 첫 영화를 찍는 것이다. 청주상고에서 벌어진 첫 촬영분은 비바람 천둥번개와 함께 경수가 아홉 번째 학교인 화산고로 전학오는 장면이다. 번쩍이는 번개 아래 장풍으로 교문을 열어젖히고 ‘무슨 일이 있어도 졸업하고 말겠다’는 각오로 학교로 걸어들어가는 전학생 김경수의 마음은 곧 나의 마음이다.

2000년 10월12일

전남 고흥군 도양읍 도양중학교 운동장, 경수와 수학의 대결투

그토록 두려움에 떨었던 와이어액션 연기를 찍은지도 벌써 나흘째. 경수가 교실에서 운동장으로 튀어나가는 장면을 찍기 위해서도 와이어를 쓴다. 그래야 빠르고 과장된 동작을 보여줄 수 있으니까. 그런데 영 몸이 말을 듣지 않는다. 거짓말 아니라 서른몇번쯤 땅바닥을 굴렀다. 결국엔 카메라를 머리로 받는 상황까지 벌어졌다. 감독님이 걱정스러운 눈으로 보기에, “열정, 패기, 젊음밖에 없슴다”라고 앙다문 소리를 했다. 그랬더니 감독님은 바로 서른번 정도를 더 시키더군. 공중에서 몸을 회전시키지 못해 땅바닥에 머리를 받고 쓰러진 게 몇번이던가. 아, 차라리 그냥 누워버리고 싶다는 생각이 든다. 사실 난 와이어액션의 위험성을 안다면 아는 편이다. D통신회사의 CF를 찍기 위해 미국에서 줄을 매단 채 연기한 적이 있다. 시스템이 잘 갖춰진 곳답게 7개의 안전장치를 놓고 촬영을 했는데도, 일을 끝낸 뒤 섬뜩했다. 몸에 매어놓은 두개의 줄 중 한쪽이 풀어져 있었던 것이다. 그런데, 여긴 별 안전장치도 없다. 결국 믿을 거라곤 열정과 패기와 젊음밖엔 없구나, 하는 데 생각이 미치게 된다. 쩝.

2000년 12월20일

경기도 양수리 종합촬영소 교실세트, 요마와 경수의 만남

오늘은…? 나 혁이의 생일이다. 오늘 같은 날은 그냥 본명인 정용준이라고 할까나. 이기원, 김형건, 김석환, 민성기, 임진삼에다가 정수한까지 고향인 부산 친구놈들이 몽땅 올라왔다. 반갑구나 이놈들. 나를 생각해줘서 부산에서 여기 양수리까지 올라오다니. 모두 징그럽게 친하고 좋은 놈들이다. 열여덟 나이에 서면 바닥에서 쥐포랑 오징어 팔던 한놈은 날보고 실패하면 언제든지 내려오란다. 내 자리를 비워놓았다고 말이다. 친구들은 정말 내겐 소중한 존재다. 촬영장에는 언제나 친구가 한명 이상 붙어 있었고, 이들은 내 연기의 단점을 세세하게 지적해주는 등 여러 가지 도움을 줬다. 녹동에서 촬영할 때는 한놈이 <짱가> 비디오를 빌려와 동심의 세계로 돌아가기도 했다. 그러고보니 이상하다. 학교 다니던 시절 아웃사이더였던 내가 이 친구들 덕분에 인사이더가 됐던 것처럼 <화산고>의 경수도 외톨이로 지내다가 친구들 품으로 들어간다. 흐흠, 재밌는 일이군요.

2001년 1월1일

양수리 종합촬영소, 복도

스물여섯의 새해가 밝았다. <화산고>가 예상대로 끝나준다면 <정글쥬스>도 찍을 수 있을 것 같다. 하긴, 지난해 가을 안에 다 찍기로 했던 도양에서의 전투장면이 끝나지 않았으니 예정대로 1월 안에 끝날 것 같진 않은데…. 부모가 열 손가락 깨물면 안 아픈 손가락이 없다는데, <화산고>나 <정글쥬스> 내겐 그런 존재 같다. 근데 이거 웬 영감님 말씀? 한살을 더 먹어서 그런가?

2001년 3월13일

전남 담양 대숲, 경수와 수학의 첫 대결

경수가 수학교사 마방진에게 무참하게 짓밟히는 장면을 찍은 대숲에선 정말 무참하게도 다쳤다. 수학이 날린 장풍에 쓰러지지 않으려고 대나무를 잡고 안간힘으로 버티는 장면을 찍는데, 어찌나 피아노줄을 세게 잡아당기는지 아파서 죽는 줄 알았다(참고로 와이어액션을 위해서는 사타구니를 중심으로 몸을 지탱해주는 하네스라는 장비를 입어야 하니 어디가 아팠는지는 짐작 가능하시겠죠?). 또 강풍기는 왜 그리 강하게 트는지 바람에 날리는 대나무 줄기에 부딪히는데, 이게 장난이 아니다. 별로 안 아플 것 같다고? 실험정신이 투철한 분이라면 대나무 막대기로 얼굴을 수십번 때려보시라. 그리고나서 그 일이 일어난 것이다. 보통 와이어액션을 할 때 반대편 줄은 사람이 당기게 된다. 하지만 빠른 속도로 부상하는 장면 등을 만들기 위해서는 디셀레나라는 기계를 사용한다. 그런데 이날 기계 조작미숙으로 너무 갑작스럽게 당겨져 내 허리가 대나무에 부딪혔다. 그때의 쿵, 하는 소리는 지금 생각해도 무섭게 느껴진다. 몇십초 뒤던가, 정신이 돌아온 것은. 대숲장면에선 코도 크게 다쳤고, 360도 회전하다가 종아리에도 상처를 입었다. 병원은, 그러나 갈 수 없었다. 나 때문에 촬영이 늦어지는 것이 싫었기 때문이다, 라고 말하면 너무 폼을 잡는 건가? 하긴 허준호 선배를 생각하면 내가 어찌 병원에 갔겠나. 준호 형은 신경을 너무 쓰고 스트레스를 많이 받아 왼손이 잠시 마비까지 됐는데도 최선을 다해 촬영을 마쳤다. 그러면서 “옛날에 <하얀전쟁> 같은 영화 찍을 때는 진짜 폭탄이 옆에서 펑펑 터졌다”며 지금은 좋아진 거란다. ‘열정’ 장혁이 잠시 숙연해지는 순간이었다.

여기 촬영장이야, 극기훈련장이야?

2001년 3월15일

양수리 종합촬영소 샤워실 세트, 경수와 채이의 키스

음허허허. 하지만 오해하진 마시라. 내가 민아에게 뭔가 음흉한 감정을 품은 건 절대로 아니다. 어쨌건 민아는 촬영장의 꽃이다. 감독님은 민아가 와이어액션을 하고 나면 늘 기특하다고 말씀하신다. 아닌 게 아니라, 저 얄팍해보이는 체구의 아이가 동동 매달려서 35번의 NG를 낸 다음에 OK 사인을 받곤 가뿐하게 내려오는 모습을 보면 근성이 대단하구나 하는 생각이 들곤 했다. 아무튼 오늘 나 김경수는 그동안 흠모해오던 유채이와 사랑을 확인하고 첫 키스를 나누게 된다. 그것도 샤워실에서. 아, 물론 옷은 입은 채다. 흠흠…. 그런데 어째 분위기가 내 상상과는 다르게 돌아가는 것 같다. 보통 키스신 하면 분위기도 잡아주고 하는 것 아니던가. 웬걸, 나와 채이의 키스신에선 20여개의 샤워실 물줄기가 펑 터지면서 화사한 분위기를 연출하게 돼 있다. 가뜩이나 막내동생뻘 되는 민아와 어색한 자세를 연출하고 있는데, 스탭들은 거기 물 잘 터졌지, 그리고 조명은 이렇게, 카메라는 저렇게 등등만 외쳐대고 있다. 이것 참 민망하기 그지없다.

2001년 4월30일

양수리 종합촬영소 야외세트, 대폿집 앞 장면

최악의 기분이었다. <화산고> 촬영 시작한 지 8개월이 다 되어가는 동안 가장 힘빠지는 순간이다. 이젠 더이상 <정글쥬스>팀에게 기다려달라고 부탁할 수 없는 상황인 것이다. 나 하나 때문에, 내 욕심을 채우기 위해 영화 제작이 차일피일 미뤄지는 모습을 볼 수가 없다. <화산고>도 물론 좋지만, <정글쥬스>는 정말 출연하고 싶었던 작품이었다. 지금 생각은 여전히 ‘저 영화를 찍지 않으면 평생 후회할 것 같다’는 것이다. 하지만 지금은 어쩔 수 없이 출연을 포기하는 수밖에 없다. 오늘만큼은 김태균 감독님이 원망스럽기도 하다. 처음 계획대로 1월까지는 끝내지 못하더라도, 3월 말에는 끝내줬어야 한다는 생각도 든다. 박중구 조감독 형과 동시녹음 담당 김경태 형 등이 위로해준다. 이 형들도 이 영화가 늦어지는 바람에 다른 작품에 들어가지 못하고 있는 상황이다. 하긴 나머지 스탭들 모두가 마찬가지다. 물론 감독님의 책임만은 아니다. 제작부쪽의 책임도 분명 있을 것이다. 하여간 내 상태가 너무 안 좋아 과연 앞으로 촬영을 잘할 수 있을지 모르겠다.

2001년 5월26일

도양중학교 운동장, 경수와 수학의 대결전

내 파이팅이 강한 걸까, <정글쥬스>를 머릿속에서 지워버린 것일까. 이젠 다시 <화산고>에만 전념할 수 있을 것 같다. 사실 한 일주일 동안 마음고생이 심했다. 그래 뭐 어쩔 건가. 이미 지난 일을 되돌릴 순 없는 법, 이제부터 다시 열심히 영화를 찍을 거다, 뭐. 그동안 많은 스탭들에게 걱정을 하게 한 듯해 미안한 마음도 든다. 그 위험한 시기를 넘기게 해준 것도 다 스탭 형들의 도움이다. 어쨌건 이 생활도 수개월을 하다보니 몸에 익나보다. 초반엔 조금만 매달려 있어도 여기저기가 아팠는데, 이젠 와이어에 매달려 있는 게 삶이 되다보니 편하기까지 하다. 지금은 줄에 매달린 채로 빵과 우유도 먹고, 아는 사람들이 구경오면 재주도 넘고 하니까.

2001년 6월10일

도양중학교 운동장, 경수와 수학의 대결전

난 술을 잘 먹진 못하는데, 좋아하긴 한다. 삼겹살을 굽고 소주 한잔을 걸치면 그만한 분위기도 없다. 특히 도양에 다시 내려온 다음부터는 하루도 거르지 않고 술잔을 기울였던 것 같다. 어두워지면 촬영을 시작해서 해가 뜰 무렵 카메라와 조명을 접는 드라큘라 생활이었으니 일찍 일어날 필요도 없었고, 숙소인 플라자호텔(이름은 호텔이긴 한데…) 앞은 항구였기 때문에 아침에 들어가봐야 소음 때문에 맨정신으론 잠을 이룰 수도 없었다. 그렇게 술을 많이 마셨는데도 버틸 수 있었던 것은 아마도 긴장감 때문이었던 것 같다. 한 장면 한 장면이 사고를 기다리고 있는 영화였기 때문에 한시라도 정신을 놓을 수 없었다. 그러면서 친하게 지냈던 게 촬영을 맡았던 최영택 형과 조명의 정영민 형, 그리고 경태 형과 데몰리션의 태희 형 등이었다. 이 형들은 늘 과정이 중요하다는 등 좋은 말을 많이 해줬다. 다방이란 곳도 이 형들이랑 처음 가봤다. 도양의 허름한 다방에 앉아서 미스 김이 어쩌고 미스 최가 어떻고 하는 이야기를 나누는 일은 어린(!) 나에게 굉장히 재미있었다. 하여튼 이런 나날이 고되긴 했나보다. TV 연예 프로그램에서 우리를 찍어가 방송했는데, 이를 보신 어머니는 내게 긴급히 한약을 보내주셨다. 여기가 촬영장이 아니라 극기훈련장 같아 보이셨나보다.

이제 와이어에 매달려있는 게 삶이 됐구나

2001년 6월29일

도양중학교 운동장, 경수와 수학의 대결전

촬영이 끝나서 날이 서서히 밝아오는데, 감독님이 나를 부르더니 “혁아, 난 네가 좋다”고 말을 꺼냈다. 그리곤 “그런데 나는 감독이다. 그리고 너는 배우다. 감독의 일에는 네가 잘 모르는 부분도 있는 법이다”, 뭐 이런 뜬금없는 말씀을 하셨다. 그런 말을 듣고 있자니 마음이 뜨뜻해졌다. 생각해보면 감독님을 미워한 적도 많았다. <정글쥬스>건도 그랬고, 다음 작품에 들어가지 못하고 있는 다른 스탭들의 모습을 볼 때도 그런 느낌을 받았다. 그리고 감독님과 이런저런 형태로 부딪친 적도 있었다. 아, 뭐 그렇다고 대단한 충돌은 아니었지만 말이다. 예를 들자면, 영화 속 김수로 형이 맡은 장량의 본명은 장달춘이다. 그래서 막판에 가면, 장량의 힘도 약해지고 볼품없는 모습이 돼가니까, 차라리 “야 달춘아”, 이렇게 부르는 게 훨씬 괜찮을 것 같아서 의견을 냈더니 감독님이 아니란다. 결국 감독님이 원하는 대로 갔지만 기분은 별로였다. 사실 경수의 손에서 만들어내는 기공의 모양도 영화에선 둥그런 모양으로 표현됐는데, 내 생각엔 회오리바람 모양이 좋을 것 같았다. 영화의 최종책임을 지는 것은 결국 감독의 몫이라 할 수 없는 일이지만 좀더 나은 방향이 있을 것 같아 의견을 제시한 것이었다. 그런데 이 감독님에게 이젠 정이 간다. 굉장히 오래 사귄 형 같은 느낌이다. 좀 주제넘은 얘기지만, 학교를 다니면서 얻은 친구들은 모두 싸우고 난 다음에 사귄 경우였다. 감독님과의 관계도 그런 걸까? 아무리 사랑하고 좋아하는 사이라 하더라도 좋은 면만을 보다보면, 어느 순간 나쁜 면을 보게 될 때 싫은 감정이 팍 솟게 마련이다. 양면을 모두 보고 있으면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을 것 같다. 하여튼 이젠 감독님이 자기만의 욕심을 차리려고 이 영화에 이렇게 공과 시간을 많이 들이진 않았을 거란 생각도 든다. 하긴, 나중에 시사회할 때 누군가 <화산고>를 비판하더라도 가볍게 받아칠 수 있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영화에 대한 자신감이 생겼으니까. 그동안 노력의 결과가 제대로 나와야 한다는 생각은 나를 포함한 스탭 모두의 공통적인 것일 게다.

2001년 7월8일

도양중학교 운동장, 경수와 수학의 대결전

운동장을 가로질러 가는데, 갑자기 아찔해지더니 푹 몸이 땅에 꽂혔다. 그동안 기력이 쇠진했던 탓인가 본데, 이런 적은 난생 처음이다. 약간 쪽팔리기도 하고, 스스로에 대한 걱정도 드는 이상야릇한 감정 등등.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즐거운 일은 이젠 정말 촬영이 막바지에 이르렀다는 것이다. 쓰러진 것 또한 힘이 달리는 탓도 있겠지만, 내일 ‘쫑’을 앞두고 긴장이 풀렸다는 이야기이기도 할 것이다. 그래도 좋은 건 숨길 수 없다. 입은 벌어지고 코는 벌름거리고 있으니 말이다.

2001년 7월13일

서울 경희대 실내수영장, 생각에 빠져드는 경수

9일 대부분의 스탭과 배우들이 도양에서 모든 일정을 마쳤지만, 내게는 진짜 마지막 촬영이 남아 있었다. 생각에 깊이 빠져드는 모습을 표현하기 위해 물 속으로 들어가는 모습을 수중에서 찍는 것이 그것이었다. 15kg이나 되는 납덩이를 매달고 별다른 장비없이 5m 가까운 물 속으로 서서히 빠지는 모습을 연기해야 했는데, “적응을 잘하는군”이라는 스쿠버다이빙 강사의 이야기에 으쓱한 게 잘못이었다. 아니면 전날의 <정글쥬스> 고사에서 무리하게 음주가무를 즐긴 게 문제였던가. 지상 5m 높이에서 수면 위로 떨어졌는데, 물표면과 부딪힌 등판이 빨래판에 얻어맞은 것마냥 충격을 받았다. 게다가 바닥으로 내려가는데 공간이 좁은 수조 안이다보니 수압이 강해서 눈이 튀어나오고 고막에서 빡빡 하는 소리가 났다. 순간 들었던 생각은 “죽는구나”였다. 어릴 적 의료사고 때문에 4일 동안 혼수상태를 겪었던 경험이 되살아났다. 만일 그때 다이버가 산소호흡기를 대주지 않았다면 <화산고>는 내 유작이 됐을 것이다. 그 산소호흡기에 달린 노란 버튼이 얼마나 선명하게 보였던지, 그것을 누르자마자 겨우 숨을 쉴 수 있었고 “살았구나” 하는 안도감을 갖게 됐다. 어휴, 얼마나 놀랐던지. 쿵덕쿵덕….

편집실에서 연기를 깨치다

2001년 7월14일

인천공항, 출국장

정말이지 가슴이 공항 로비에 달라붙는 줄 알았다. 전날 죽을 뻔한 위기를 넘기고 가까스로 얻은 1주일간의 휴가를 미국에서 지내기 위해 공항을 들렀는데, 제작부장님과 조감독형의 모습이 보였다. 이런, 뭔가 문제가 생겨 재촬영을 해야 하는구나, 그래서 나를 붙들러 이 사람들이 친히 공항으로 나왔구나, 하는 생각이 드니 가슴이 답답해졌다. 순간적으로 이들을 피해 도망쳐야 하나, 당당히 나서야 하느냐를 고민하는데 그쪽에서 먼저 알아보고 내쪽으로 성큼성큼 걸어오는 것 아닌가. 두근두근…. 그런데… 휴, 천만다행이었다. 그들은 다른 촬영 때문에 이곳을 들렀다는 것이다. 만세! 정말 <화산고> 촬영이 끝난 거구나.

2001년 8월10일

서울 강남 고임표 편집실

26일부터 들어가는 <정글쥬스>의 촬영을 앞두고 편집실을 들렀다, 고 말하면 처음으로 이곳에 간 것 같지만, 사실 난 영화를 찍는 내내 편집실을 들락날락했다. 최소한 한달에 한번은 갔을걸. 그것도 알고 보면 감독님이 권하신 일이었다. 연기를 배우려면 편집실에 자주 들러야 한다고 하셨다. 고 기사님 옆에 앉아 편집을 이렇게 하는 거구나, 캐릭터가 이렇게 표현되는구나, 같은 것을 배웠다. 특히 내 모습이 어떻게 편집되는가를 잘 살펴본 뒤 이런 식으로 연기를 해야 하는구나, 하고 깨쳤다. 하도 자주 가니까 감독님은 한때 “야, 이놈아. 넌 여자친구도 없냐(이 질문에 대해서는 노코멘트다), 지겹다”고 농을 던지기도 하셨다. 촬영을 모두 마친 뒤 편집되는 것을 보고 있으니, 아 드디어 이 영화가 제 모습을 찾아가는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감독님의 끈기도 존경스럽게 느껴졌다. 내가 직접 출연을 해서 그런 건진 모르겠지만 정말 괜찮은 영화가 나올 것 같다. 히히. 만약 <화산고>가 대성공을 거둬 속편을 만들게 된다면…. 그래도 최소한 난 출연하지 않으련다, 고 마음을 다진다. 오래 전 친구들과 함께 찍은 사진처럼 나중에 <화산고>를 보면서 ‘이 영화는 내 스물다섯과 스물여섯을 함께 보낸 친구’라는 소중한 추억을 간직하고 싶기 때문이다. 이젠 <정글쥬스>닷!

2001년 10월17일

에필로그. 정릉 세트장, 제과류 CF 촬영중

김 감독님을 이곳에서 만나리라곤 상상도 못했다. 역시나, 하룻동안 47테이크를 찍었다. 하룻동안 <화산고>의 열두달이 축약된 듯했다. 30테이크가 넘어가니까, 헥헥 하는 가쁜숨과 함께 <화산고>에 대한 생각이 절절했다. 그리고 그 시절이 그렇게 중요하게 여겨졌다. ‘미운 정’으로 얽힌 감독님과의 인연이란 게 이렇게 질기구나, 하는 생각도 들었다. 빨리 <정글쥬스>를 마치고 <화산고>의 개봉날 무대 앞에서 자랑스런 표정으로 관객들과 기쁘게 만나야겠다는 생각 때문인지 가슴이 차올랐다. 정리=문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