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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레에다 히로카즈vs김봉석 (1)
2001-12-07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 영화평론가 김봉석과 삶과 죽음, 영화를 논하다

더운 여름 버스운전석 옆자리에서 불어오던 상쾌한 바람, 그녀의 가방에서 들려오던 청아한 방울소리, 디즈니랜드에서 먹던 맛난 핫케이크, 비행하던 순간 눈부시게 빛나던 구름, 그리고 무릎에 뉘고 귀를 파주던 엄마의 살냄새. 죽음 이후, 일생을 통틀어 행복했던 하나의 기억만을 간직하고 갈 수 있다면 우리는 과연 어떤 순간을 선택할까? 98년에 만들어져 4년 만에 한국 관객을 만나는 <원더풀 라이프>는 무심코 스쳐지나간 소소한 일상의 소중함을 일깨워주는 영화다. 남편의 갑작스런 죽음으로 삶이 뒤흔들려버린 한 여자의 이야기를 명상적인 화면에 담아냈던 데뷔작 <환상의 빛>으로 1995년 베니스영화제 황금오셀리오니상을 받으며 데뷔한 고레에다 히로카즈(39)는 99년작 <원더풀 라이프>를 거쳐 2001 칸영화제 경쟁부문 후보에 오른 세 번째 작품 <디스턴스>로 명실공히 필름으로 말하는 젊은 철학자의 풍모를 갖추었다. 목 주위로 빨간색이 덧대어진 남색니트, 무라카미 하루키를 연상시키는 쿨한 용모의 이 젊지도 늙지도 않은 감독은 짧은 일정과 빡빡한 인터뷰 스케줄에도 불구하고 어떤 질문에나 오래 고민한 흔적이 역력한 길고 묵직한 답변을 보내왔다. 영화평론가 김봉석과 고레에다 히로카즈가 나눈 두 시간의 지칠 줄 몰랐던 대담. 행복한 죽음과 멋진 삶에 대한 철학강좌 101.

편집자

김봉석(이하 김) TV다큐멘터리를 찍다가 극영화 연출을 시작했다고 들었습니다. 그 계기가 허우샤오시엔과의 만남이었다구요.

고레에다 히로카즈(이하 고레에다) 극영화를 찍고 싶다는 생각은 TV다큐멘터리일을 하면서도 꾸준히 해왔고 시나리오도 틈틈이 쓰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기회가 잘 닿질 않더군요. 그러던 중 허우샤오시엔의 <희몽인생>의 일본배급을 제가 당시 일하던 후지TV가 맡게 되었고 회사에서는 저에게 “대만영화에 관한 프로그램을 하나 만들지 않겠느냐”는 제안을 해왔습니다. 그전부터 좋아하던 허우샤오시엔과 에드워드 양에 대한 다큐멘터리를 만들어야겠다고 생각했고 그것이 허우샤오시엔 감독과 만난 직접적인 계기였죠. 허우샤오시엔 감독은 처음부터 저를 많이 아껴주었고 일본에 들를 때마다 늘 연락을 해주셔서 만나기도 했습니다. 물론 그의 영화도 좋아하지만 그 사람 자체를 인간적으로 좋아하고 존경합니다. 저에겐 아버지 같은 사람이라고 할까요.

김 <원더풀 라이프>는 인터뷰장면이 계속 보이고 카메라가 대상을 정면에서 찍는 등 다큐적인 요소를 많이 포함하고 있습니다. TV다큐 경험이 극영화만들기에 어떠한 영향을 끼쳤다고 생각하십니까.

고레에다 <원더풀 라이프>를 만든 스탭은 카메라, 연출부 조명을 비롯해 거의 대부분이 다큐 출신이었습니다. 그래서 ‘영화니까 이런 조명이어야 한다’는 데 구애받지 않았습니다. 재미있는 상황이 연출되면 조명상태에 상관없이 곧바로 찍기도 했고, 발생하는 모든 해프닝에 대해 각자 스탭들이 즉각적으로 반응했던 것이 살아 있는 영화를 만들 수 있었던 이유였습니다. 이 모든 것이 다큐에 대한 경험 때문에 가능했던 것 같습니다.

김 감독님은 언젠가 “다큐와 픽션이 충돌할 때 불꽃이 튄다”는 말을 하셨다고 들었는데 <원더풀 라이프>를 찍을 때는 어떤 부분에서 그런것을 느끼셨습니까.

고레에다 ‘타타라’라고 어릴 적 오빠 앞에서 <빨간구두>라는 노래에 맞추어 춤을 췄던 기억을 선택한 할머니가 등장하는데 이 할머니는 실제 인물입니다. 이 할머니는 특이하게도 자신이 죽었다는 영화 속 상황을 현실로 받아들이면서 자연스럽게 본인의 이야기를 해주었습니다. 이분이 자기 과거를 재연하는 대역소녀에게 춤동작을 설명하면서 “손수건을 어느 손에 들었더라”하고 고민을 하는 장면이 있는데, 이때 제가 어떤 지시도 하지 않았는데 할머니가 벌떡 일어나서 노래를 부르면서 한 바퀴 빙 돌며 춤을 췄어요. 또 소녀가 사람들 앞에서 <빨간구두> 노래를 부르며 춤을 출 때 두 주인공과 할머니가 흐뭇한 미소를 지으며 노래를 함께 따라 불렀습니다. 이 역시 어떤 사인도 없이 이루어진 즉흥동작이었죠. 우리는 그것을 조용히 카메라에 담았을 뿐입니다. 이 상황은 픽션도 아니고 다큐멘터리도 아닌 그야말고 어떤 ‘충돌’이 일어나지 않으면 불가능한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사실 영화촬영장이라는 지극히 비현실적 공간에서 할머니가 자기 진짜내면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그것에 의해 움직이는 모습이란 다큐와 픽션이라는 틀로 카테고리화 할 수 없는 진짜 ‘충돌’ 아닙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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