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 감독님의 영화는 뚜렷한 기승전결이 주어지지 않습니다. 사건은 이미 영화 이전에 시작되었고 영화가 끝나고도 해결되지 않는 식입니다. 현실적인 해결이란 존재하지 않는다고 생각하는 건가요? 아니면 <원더풀 라이프>처럼 그저 판타지로서 가능한 일일까요?
고레에다 가능할까? 가능하지 않을까? 하는 것이야말로 제가 영화를 만들면서 늘 고민하는 부분입니다. 영화를 만드는 사람으로서 무책임한 말처럼 들릴는지 몰라도, 답은 영화 속에 있는 것이 아니라 보는 사람이 직접 그걸 찾아야 합니다. 그것을 생각하는 것 자체가 의미있는 것이고 중요한 일이니까요.
김 이건 아주 개인적인 의문입니다. <환상의 빛>에서 이쿠오는 왜 자살한 것일까요? 아이가 태어난 지 3개월이 되었고, 가정에도 아무런 문제가 없습니다. 물론 세상엔 불가해한 것이, 논리적으로 설명되지 않는 것이 있다고 생각하지만…. 그냥 감독님에게 묻고 싶었습니다. 왜 자살했다고 생각하는지.
고레에다 저도 모르겠습니다. 자살이란 게 그런 거 아닐까요. 본인도 모르는 거, 그렇기 때문에 남아 있는 사람들은 더더욱 괴로운 거죠. 이유를 알면 차라리 나을 텐데…, 만약 이 영화가 남편의 의문의 죽음을 따라갔다면 서스펜스영화가 됐겠죠. 하지만 그런 유의 영화를 만들고자 한 건 아니었습니다.
김 <디스턴스>는 ‘옴진리교’라는 전세계적으로 시끄러웠던 사건을 다루었습니다. 감독님의 전작이 다소 사적인 고민을 담았다면 <디스턴스>는 사회로 눈을 돌리고 있습니다. 무라카미 하루키는 옴진리교 가스살포사건의 피해자들을 인터뷰하다가 글쓰기에 대한 생각을 다시 한번 하게 되었다는 말을 했는데, 감독님은 옴진리교라는 사건을 직접 접했을 때 어떤 생각을 했는지, 그것이 영화만들기라는 작업에 어떤 영향을 끼쳤나요.
고레에다 영향을 분명히 끼쳤습니다. 무관할 수도 없고, 무관해서도 안 된다고 생각합니다. 이를테면 미국 테러사건 이후에 만들어질 영화들이 그전과 똑같은 영화라면, 예전과 다를 바 없는 액션영화가 만들어진다면, 과연 영화란 무엇인가에 대해 다시 생각해봐야겠죠. 물론 영화가 사회적 사건을 그대로 담을 필요는 없지만, 나는 고베대지진이나 옴진리교사건 이후 일본에서 살고 있는 사람이고 그 이후 일본에서 살고 있는 사람들에 대해 그려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김 감독님이 예전에 만든 TV다큐멘터리를 보면 동성애자, 재일한국인, 기억상실증환자 등 사회시스템에 적응을 못하는 사람이라든지 사회약자들을 다룬 적이 많습니다. <디스턴스>를 보면 서서히 그런 이력이 드러나는 느낌이 들기도 하고요. <디스턴스>에서 옴진리교에 빠지는 사람들은 대부분 성실하고, 순수하고, 착한 사람들이더군요. 그들의 잘못인지 아니면 세상이라는 것, 시스템이 그들을 몰아가는 것인지 생각하게 만들었어요.
고레에다 굳이 약자를 찍으려고 한 것이 아니었는데 결과적으로 시스템이 만들어놓은 부작용과 알력에 의해 희생된 사람들을 찍었던 것 같습니다. 그런 시선이 극영화인 <디스턴스>에 반영이 됐고요. 처음에 뉴스에서 나온 옴진리교사건을 보면서 나도 모르게 ‘이따따따따따’하는 소리가 튀어나왔어요. 이 의성어에는 많은 뜻이 포함되어 있는데, 굳이 해석을 하자면 이런 형태로밖에 사회에 대한 안티테제를 제시할 수밖에 없었을까, 하는 겁니다. 옴진리교 교단의 중심에 있던 사람들은 대부분 나와 동시대의 사람인데, 우리는 학생운동을 하면서 어마어마한 실패를 했던 윗세대들에 대한 혐오감을 느끼면서 어떻게 보면 비정치적으로 살아왔던 세대들이란 말이죠. 그런데 사회적인 안티테제를 저렇게 수준낮은 종교를 끌어들이면서 폭력이라는 수단으로 표현할 수밖에 없었는지 안타까웠어요. 하지만 그만큼 궁지에 몰렸다는 점에 대해서는 충분히 공감할 수 있었어요. 물론 말도 안 되는 일이지만 이 사회를 변화시켜야 한다는 점은 나 스스로도 느꼈던 부분이라 미묘한 감정을 동시에 같이 느껴야했죠. 결국 그 범죄에 대한 처벌은 법이 할 부분이고, 제가 관심을 가진 부분은 그런 사람을 탄생시킨 이유가 무엇일까 하는 것과 남아 있는 사람에 대한 거였어요. <디스턴스>에서 사건 자체보다 남겨진 사람을 주인공으로 둔 것도 그런 이유 때문입니다.
▷ 다음 페이지 계속 [영화- 변화를 꿈꾸며, 투쟁하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