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 지금까지 몇몇 일본감독들을 인터뷰하면서 느낀 것인데, 비단 일본에만 국한된 것은 아니겠지만 대부분 일본이라는 사회에 문제가 많지만 그 시스템을 고치는 것은 불가능하다는 결론이 나오더군요. 그렇다면 영화라는 것이 가지는 힘이 무엇일까요? 영화가 과연 무엇을 할 수 있을까요.
고레에다 제가 요즘 가장 절실하게 생각하는 점이 바로 영화가 변화를 위한 힘을 가질 수 있는지 하는 겁니다. 물론 여전히 만들고 싶은 영화에 대한 구상도 열정도 많지만 과연 영화를 만드는 동안 사회에 무슨 일이 생기고 있는지 간과할 수 없습니다. 제가 영화를 찍기 시작한 지 6년이 지났는데 그 사이에도 고베대지진이 있었고, 일장기와 기미가요가 법제화되었고, 도청법이 성립되었고, 역사교과서를 정당화하는 사람들이 나왔고, 심지어 테러사건을 계기로 자위대가 미군과 함께 파병이 되는 일까지 생겨났습니다. 이런 역사적 사건들이 일어나고 사회는 점점 악화돼가는데 내가 영화를 찍는다는 핑계로 사회에 무관심해도 되는 건지, 막말로 일본에 전쟁이라도 나면 어떡하나, 돌이킬 수 없는 상태가 되면 어떡하나, 그렇다면 내 영화가 무슨 의미가 있나, 하는 동시대를 살아가고 있는 사람으로서 책임감을 느끼고 있습니다.
하지만 그렇다고 정치적 메시지를 영화를 통해 전달하고자 하는 생각은 추호도 없습니다. 항상 생각하는 점은 관객 스스로 느끼라는 겁니다. 감정적으로 강요하는 파시즘은 제 영화에 없습니다. 감정을 유도하는 음악을 제 영화에서 의도적으로 배제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습니다. 내 영화가 관객 스스로 느끼고 인생을 풍요롭게 하는 재료가 될 수 있다면 하는 것이 유일한 바람입니다. 이런 내 스타일은 기존의 낡은 영화시스템에 대한 ‘공격적인 도전’일 수도 있습니다. 스스로 영화시스템에 대한 투쟁은 하고 있다고 생각하지만, 그것을 어떻게 사회적인 부분과 연관시켜 풀어나갈 수 있을지는 고민중입니다. 당신은 어떻게 생각하세요?
김 영화라는 것이 무엇을 할 수 있는가에 대해서는 어떤 사람도 정확한 답을 내릴 수 없을 겁니다. 그저 영화를 만드는 사람들 각자가 내 영화가 어떻게 세상을 이롭게 할 수 있을 것인가를 생각하고 그런 영화를 만드는 것이 유일한 방법이 아닐까요.
<환상의 빛>에서는 카메라가 거의 움직이지 않고, 클로즈업도 없습니다. 인물들의 움직임도 아주 작고요. <원더풀 라이프>에서 <디스턴스>로 오면서 핸드헬드가 많아지고, 인물들을 정면에서 잡는 경우가 많아집니다.
고레에다 솔직히 말해 첫 번째 작품 만들고 나서, ‘아! 실수했다’고 생각했어요. (웃음) <환상의 빛>은 먼저 구도가 있었고 300컷에 대한 완벽한 콘티가 그려져 있었죠. 허우사오시엔 감독이 이 영화를 보고서 “참 좋은 데뷔작”이라는 칭찬 뒤에 “기술과 구도는 완벽하지만 영화라는 건 사람의 감정과 배우의 행위가 먼저 있은 뒤에 그것이 나중에 구도로 만들어지는 거다. 그런데 여기서는 구도가 먼저 고려돼 있다. 이건 거꾸로 된 거다. 다큐멘터리를 찍은 사람인데 왜 그랬느냐”는 말을 해주셨어요. 그때 아뿔싸, 하는 생각을 했죠. 물론 이 영화를 개인적으로 좋아하지만 뭔지 모르게 느껴졌던 이질감의 이유를 그때 발견한 거죠. 그래서 두 번째, 세 번째 영화는 되도록이면 그 작품에서 벗어나 멀리멀리 가려고 노력했어요. <디스턴스>에서는 그런 마음이 극단적으로 나타난 거고요. 콘티도 없었고, 다큐멘터리 카메라처럼 대상을 따라갔어요. 극영화답지 않은 방식으로 찍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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