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구리 고헤이는 80년대 이후 일본에서 작가주의적 입장을 견지해온 대표적인 감독으로 꼽힌다. 한편, 한편의 영화에 4∼5년 동안 공을 들이는 그는, 20년간 4편의 작품을 선보인 과작의 감독이기도 하다. 가난한 서민들의 삶과 일본인, 재일한국인의 우정을 담은 <큐포라가 있는 거리>로 잘 알려진 우라야마 기리로 감독 아래서 연출 수업을 한 그의 데뷔작은 81년에 만든 <진흙강>. 2차 세계대전에서 패한 전후 일본 서민들의 삶을 아이의 눈으로 보여주는 흑백영화다. 강가 다리 옆에서 우동집을 하는 부부의 아들 노부오는 새로 강에 정박한 배에서 사는 소년과 친구가 된다. 소년의 가족은 전쟁으로 가장을 잃고 몸을 파는 어머니의 매춘으로 살아가는 처지. 우연히 매춘 현장을 목격한 노부오는 혼란에 빠지고, 친구의 배는 또 어디론가 떠나간다. 전후의 폐허는 끝났다고 공언하던 50년대 중반의 오사카를 배경으로 삼은 이 영화는, 살아남은 부모 세대의 기억과 빈곤한 생활에, 소년들의 우정을 가로막는 환경에 생채기처럼 남은 전쟁의 상흔을 훑어낸다.
역시 50년대가 배경인 84년작 <가야코를 위하여>는, 사할린에서 유년을 보내고 재회한 재일한국인 2세 상준과 일본인 소녀 가야코의 사랑이야기. 한국인 의부와 일본인 계모 슬하에서 자란 가야코와 한국말도 모르는 상준의 사랑에는, 정체성의 혼란과 민족사의 그늘이 드리워져 있다. 재일한국인 이회성의 소설을 영화화한 이 작품은, 일제시대 한국인들의 암울한 삶과 후세들에게 이어지는 비극적인 현실을 투영하고 있다. 90년작 <죽음의 가시>는 불륜으로 균열이 생긴 부부의 관계를 다룬 시마오 도시오의 소설에 바탕한 영화. 작가인 남편의 불륜을 참아오던 아내는, 발작적으로 광기어린 분노를 터뜨린다. 참전과 불륜 등 남편의 과거는 모호한 환상에 가까운 회상으로 드러날 뿐이지만, 부부와 아이들의 단란한 식사나 나들이 같은 현재의 일상에서 표출되는 광기는 황폐한 부부의 내면을 드러낸다. 안성기가 주연한 96년작 <잠자는 남자>는 낙상 사고로 식물인간이 된 남자를 축으로 이웃들의 삶과 그들의 터전인 자연의 표정을 세심하게 포착한 영화. 지극히 정적이면서 시적인 영상의 느린 호흡으로 전후 일본의 생활상과 변두리 삶의 풍경을 담아내는 감독의 진지한 시선이, 그의 전작과 함께 소개된다. 황혜림 ▶ 2001 광주국제영상축제 슬라이드
▶ 상영시간표
▶ 2001 광주국제영상축제- 영 시네마
▶ 2001 광주국제영상축제-- 미조구치 겐지와 이마무라 쇼헤이
▶ 마스터스-영화의 세월을 품은 거장의 현재
▶ 2001 광주국제영상축제-폴리티컬 시네마
▶ 2001 광주국제영상축제- 임권택 회고전
▶ 2001 광주국제영상축제-스포트라이트; 오구리 고헤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