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주영화제에서 소개하는 ‘일본의 두 거장’, 미조구치 겐지와 이마무라 쇼헤이는 각기 다른 시대에 활동한 만큼 둘 사이의 공통점보다는 차이점이 더 두드러져 보이는 감독들이다. 예컨대, 다소 단순화해서 비교하자면 미조구치의 세계가 ‘우미(優美)의 미학’에 집중한 것이라면 이마무라의 세계는 ‘혼돈의 미학’을 보여주는 것이다. 두 감독은 공교롭게도 여성 캐릭터에 특히 치중한다는 점에서는 어느 정도 일치를 보이기도 하지만 자세히 따져보면 두 감독의 영화들 속에서 여성들은 상이한 존재감을 갖고 있는 것으로 드러날 것이다. 여하튼 이처럼 판이한 두 일본 감독들의 세계를 조망하는 자리는 일본영화사의 다른 두 양상들을 직접 관찰하고 비교해볼 수 있는 기회가 될 것으로 보인다.
미조구치 겐지:영화게의 셰익스피어
1889년 도쿄의 가난한 집에서 태어난 미조구치는 서양화를 공부하기도 했고 신문 광고 일러스트레이트 일을 하기도 했다고 한다. 1922년 영화계에 입문하게 된 그는 와카야마 오사무의 조감독으로 일하다가 1년 뒤에 <사랑이 되살아나는 날>(1923)을 만들어 정식으로 감독 데뷔를 하게 되었다.
미조구치의 영화라면 우리는 우선 잔혹한 세상과 대면한 여성 캐릭터부터 떠올리게 된다. 감독 활동을 막 시작하던 초창기에 미조구치는 신파 멜로드라마를 비롯해 형사영화, 전쟁영화, 코미디, 귀신영화 등 이런저런 장르들을 두루 섭렵했다. 미조구치의 영화들이 그처럼 폭넓은 스펙트럼에 위치함에도 불구하고 박해받는 여성이란 관심사는 그의 영화인생을 관통한다고 해도 좋을 만큼 지속된 테마였다. 물론 그의 영화 속 여성들은 세월을 거치면서 조금씩 변화해갔다. 예컨대, 미조구치가 초기에 만든 신파 멜로드라마의 여성들은 남성 본위 사회에서 파멸을 겪는 희생자였는데, 30년대 이후 영화들에서 그녀들은 대개 억압적인 사회 속에서 어떻게든 생존하고자 고투하는 인물들로 바뀌어갔다.
형식적인 측면에서 전형적인 미조구치적 세계와 연상되는 것은 유연하게 움직이는 카메라와 롱 테이크, 그리고 거리를 유지하고서 축조되는 정밀한 구도다. 사실 미조구치의 이런 특징들도 여러 변화를 거치면서 도달한 지점이었다. 20년대에 그는 표현주의적 기법을 차용했는가 하면, 급격한 편집, 잦은 디졸브, 독특한 플래시백의 이용 등과 같은 테크닉들을 대담하게 실험해보기도 했다. 그러던 것이 대략 30년대 중반부터 미조구치는 현재 우리가 ‘미조구치 스타일’이라고 알고 있는 대단히 유미적인 스타일을 안정적으로 만들어나가기 시작했던 것이다. 미학적인 세계를 축조해낸 그 스타일로 인해 미조구치는 “영화계의 셰익스피어”란 소리를 들을 정도가 되었다.
한 궁녀의 전락 과정을 탐미적으로 그린 <오하루의 일생>(1952)이 베니스영화제에서 수상을 하면서 미조구치는 국제적으로 주목을 끄는 영화감독의 반열에 오르게 된다. 특히 미조구치에 대한 <카이에 뒤 시네마> 필진들의 열광은 대단한 것이어서 자크 리베트는 뒤에 <수녀>(1966)라는 영화를 만들면서 그것이 <오하루의 일생>의 의도적인 모방임을 자랑스럽게 이야기하기도 했다. 장 뤽 고다르의 경우도 예외는 아니어서, 그는 언젠가 이렇게 말했다. “미조구치는 가장 위대한 일본 영화감독이다. 아니, 간단히 말해서 가장 위대한 영화감독들 가운데 한 사람이다.” 광주영화제는 이 위대한 시네아스트의 50년대 작품들 여섯편을 상영한다. <우게츠 이야기>(1953), <기온바야시>(1953), <산쇼다유>(1954), <치카마츠 이야기>(1954), <양귀비>(1955), <적선지대>(1955)는 어느 것 하나 놓칠 수 없는 필견(必見)의 걸작들이다.
이마무라 쇼헤이:인간의 생존, 전쟁보다 치열한
이미 두 작품이 개봉되면서 이마무라 쇼헤이는 비교적 알려진 감독이 됐지만, 이번 회고전에선 그의 초기영화들 4편이 선보여 관심을 끈다. 미조구치의 여자들이 온갖 고난을 받아들이며 희생적인 모습을 보여준다면, 이마무라의 여자들은 고통스런 현실에 맞서 싸우기를 두려워하지 않는다. 미조구치와 오즈가 이상화시킨 여성상에 정면으로 반발한 것이다. 이마무라 최초의 걸작으로 불리는 <일본 곤충기>(1963)는 강인한 생존본능을 가진 한 여인을 통해 전후 일본사회의 단면을 들여다본다. 가난한 시골마을에서 태어난 도메에겐 불운이 끊이지 않는다. 남자친구가 죽고 새로 사귄 애인에게도 버림받자 도쿄로 간 그녀는 자신과 마찬가지로 아버지 없는 딸을 낳고 온갖 직업을 전전하다 창녀촌에 이른다. 우울한 시대가 할퀴고 간 여인의 삶을 보여준다는 점에서 미조구치의 영화 <오하루의 일생>이 연상되지만 이마무라가 그리는 여성은 동정심에 호소하는 법이 없다. 미조구치가 비장하고 슬픈 정조에 실어나르는 여인 수난사를 이마무라는 냉정한 유머로 갈파하는 것이다. ‘곤충기’라는 제목이 특이한데 정지 프레임에 날짜가 새겨지고 내레이션이 깔리면 ‘일지’라는 형식이 의미하는 바가 드러난다. 확대경으로 본 곤충의 생존과정처럼 가난한 시대를 맨몸으로 돌파하는 여인의 생존기를 <일본 곤충기>라 이름붙인 것이다. <붉은 살의>(1964)는 강간을 당한 한 주부가 강한 여성으로 변화하는 모습을 그리고 있다. 남편이 집을 비운 밤, 강도가 들어와 혼자 잠자고 있던 사다코를 범한다. 그녀는 죄의식에 사로잡혀 목숨을 끊으려 하지만 마음대로 되지 않는다. 이후로도 계속 사다코를 쫓는 강도에게 그녀는 살의를 품게 된다.
이마무라 영화의 또다른 특징으로 하층민에 대한 관심을 들 수 있다. 매춘부, 소작농, 범죄자 등 가난에 찌든 사람들이 좌충우돌하며 살아가는 모습을 그는 애정어린 시선으로 바라본다. <오빠>(1959)는 1953년 규슈의 탄광지대에서 살아가는 재일한국인 형제의 가난한 삶을 그리고 있다. 작가 야스모토 스에코가 10살 소녀였던 1953년 주위에서 본 재일한국인의 삶을 소재로 쓴 일기가 원작이다. 4남매의 장남 키이치는 규슈의 작은 탄광에서 일하며 동생들을 키운다. 어느날 키이치가 실직하자 먹고살 길이 막막해진다. 키이치는 여동생을 데리고 나가사키로 일하러 떠나며 어린 두 남동생을 이웃에 맡기는데 그가 돌아왔을 때 남동생들은 영양실조에 걸려 있다. 키이치는 어렵지만 힘을 합쳐 살아가자고 형제들을 다독인다. 욕정이 흘러넘치는 이마무라의 다른 영화들과 달리 오즈의 영화를 연상케 하는 착한 영화이다. <돼지와 군함>(1961)의 무대도 가난과 더불어 살아가느라 몸을 팔고 범죄를 저질러야 하는 미군기지촌이다. 유흥가에서 이권을 챙기는 건달 중 한명인 킨타는 미군기지의 음식물 쓰레기를 매입해 돼지를 사육하지만 조직의 배반으로 매입비용을 털린다. 그는 애써 길렀던 돼지들마저 트럭에 실려갈 위기에 처하자 분노를 폭발시킨다. 4편의 상영작 모두 세트에서 찍은 작품이 아니라는 점도 이마무라의 특징인데 다큐멘터리에 가까운 사실적인 배경과 연기 스타일은 60년대 일본영화가 보여주는 새로운 면모이다. <나라야마 부시코> <우나기> <간장선생> 등 80년대 이후 나온 몇몇 작품들만 접했던 관객에겐 이번 상영작들이 ‘이마무라 입문’에 더없는 코스가 될 것 같다.
홍성남/ 영화평론가 [email protected]·남동철 [email protected]▶ 2001 광주국제영상축제 슬라이드
▶ 상영시간표
▶ 2001 광주국제영상축제- 영 시네마
▶ 2001 광주국제영상축제-- 미조구치 겐지와 이마무라 쇼헤이
▶ 마스터스-영화의 세월을 품은 거장의 현재
▶ 2001 광주국제영상축제-폴리티컬 시네마
▶ 2001 광주국제영상축제- 임권택 회고전
▶ 2001 광주국제영상축제-스포트라이트; 오구리 고헤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