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우 문성근이 민주당의 대선후보 경쟁을 벌이고 있는 노무현 지지운동에 본격적으로 나섰다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화제가 되고 있다. 일찌감치 ‘안티 조선일보’와 노무현 지지운동에 열을 올리고 있던 명계남도 마찬가지이며, 이들의 친구인 이창동 감독도 뜻을 같이하고 있다. 이들의 행보가 흥미로운 것은 이런저런 후원행사의 사회를 맡거나 강연에 나서 아주 ‘대놓고’ 노무현 지지를 표방하고 있다는 것이다. 게다가 단순한 바람잡이가 아니라 분명한 정치적 명분과 철학을 천명하고 있다는 점도 신선하고 인상적이다(그 명분과 철학을 소개하는 것은 사전 선거운동이 될 수 있기 때문에 생략한다).
우리나라 사람들은 정치적 견해처럼 선택적인 주장에 대한 자신의 성향을 잘 드러내지 않는다. 특히 연예인이나 운동선수처럼 대중적 지명도가 높은 사람들은 더욱 그렇고, 영화감독이나 배우들도 마찬가지다. 사정이야 다르지만 미국의 유명 배우들이 적극적으로 자신의 정치 성향을 피력하는 것과는 너무 다르다. 스티븐 스필버그, 올리버 스톤, 우디 앨런, 로버트 드 니로, 마틴 신 등이 소문난 민주당 지지자들이고 공화당 지지자들도 적지 않다는 사실은 이미 알려진 바다. 반면 우리나라의 유명인들이 이런 활동에 소극적인 것은, 서로의 차이나 다른 주장을 인정하고 존중하기보다는 배타적으로 대응하는 사회·문화적인 현실 탓이 가장 크다. 정치성향이 드러나면 입장이 다른 사람들로부터 배척당할 수 있고, 그런 상황이 당사자들에겐 아주 피곤한 일이 되기도 한다. 따라서 지레 겁을 먹고 대개는 무색무취하거나 초연한 척하면서 자신의 정치색을 드러내지 않는 것이 상책이라고 보호막을 치게 되는 것이다.
보아온 바에 따르면, 유명인들 중에서 자신의 정치적 성향을 드러내고 싶어하지 않는 사람들은 몇 가지 부류가 있다. 개인적인 성향은 뚜렷하지만 굳이 공개하고 싶지 않다거나 자신의 세계관을 제대로 대변해줄 정파가 없기 때문에 소극적이라는 등의 의견은 마땅히 존중해야 한다. 하지만 ‘공인’은 ‘중립’을 지켜야 한다는 거지 발싸개 같은 궤변을 늘어놓는 사람들의 주장은 영 밥맛이 없다. 뭐가 뭔지 모르거나 귀찮아서 모른 척하겠다는 것이 이들이 말하는 중립의 속내이기 때문이다. 선거철이면 일부 연예인들이 어제는 여당 유세장에서 목소리를 높이고, 오늘은 야당 유세장에서 똑같은 소리를 하는 해프닝을 중립이라고 말하는 것과 같은 맥락이다. 차라리 돈을 받고 출연한다면 몰라도, 무슨 친목회도 아니고 선거판에서 중립을 지키기 위해 적대적 전선을 형성하고 있는 여당과 야당에 공정하게 얼굴을 내비친다는 식의 논리도 어이없기는 마찬가지다.
영화계에서도 쟁점이 되는 사안이 있을 때마다 자신의 주장을 공개하는 것을 꺼리는 사람들이 많다. 튄다거나 신중하지 못하다고 비판받기 십상이고, 영화 만드는 일이 혼자 하는 일이 아닌 다음에야 두루 눈치를 살피게 되는 것은 인지상정이다. 하지만 영화 만드는 일이 시대성과 역사성을 아우르는 복합적인 문화상품을 생산하는 일이라면 당파성을 갖는 것이 논리적으로도 맞는 일이다. 부디, 영화인들의 공개적인 노무현 지지운동이 돌출적인 이벤트 정도로 폄하되지 않기 바라고, 부디 이회창을 지지하는 영화인들도 ‘커밍아웃’해서 저급한 비방이나 모함이 아닌 수준 높고 폼 나는 한판 공방이 벌어지길 기대한다. 그렇다고 모든 영화인들이 지지자 이름 새긴 머리띠를 동여매고 편갈라서 한판 붙으라는 이야기는 아니다. 적어도 옳고 그름에 대해, 좋고 나쁨에 대해 분명한 자신의 입장과 주장을 드러내 합의를 모색하는 것이 민주적이고, 다양성을 확장하는 길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조종국/ 조우필름 대표 [email protect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