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는 슈퍼 히어로다. 하지만 저녁이면 여전히 숙제를 해야 한다.” <스파이더맨>의 샘 레이미 감독은 그가 마침내 스크린에 불러낸 날씬하고 민첩한 영웅을 그렇게 묘사한다. 스파이더맨이라는 캐릭터가 처음 세상에 나온 것은 1962년 발간된 <어메이징 판타지>의 마지막 호를 통해서. 마흔살이 된 2002년에야 할리우드에 입성하는 <스파이더맨>은, <슈퍼맨>과 <배트맨> 프랜차이즈를 배출한 DC코믹스에 비해 영화 커리어가 열세였던 마블코믹스가 <엑스맨>에 이어 꾀하는 반격이기도 하다.
피터 파커는 학생잡지의 사진기자로 활동하고 메리 제인 왓슨이라는 여학생을 사모하며 평범한 10대를 보내는 뉴욕의 고등학생. 일찍 부모를 잃고 숙부 내외와 사는 파커에게 이웃의 친구 해리와 과학자인 해리의 아버지 노먼은 소중한 사람들이다. 파커의 운명을 비범하게 변질시키는 것은 돌연변이 거미 한 마리. 거미에게 물린 뒤 얻은 초능력을 가볍게 다루던 파커는, 자기가 잡지 않은 강도한테 숙부가 살해되는 사건 이후 힘의 ‘정의로운’ 용도를 고민한다. 한편 영웅의 길에 발을 들여놓은 파커는 실험중 사고로 인해 그린 고블린으로 변신한 노먼 오스본과 숙명적으로 대결한다.
힘을 다루는 법을 터득하고 그에 따르는 책임과 갈등을 받아들이는 과정을 보여준다는 면에서 성장의 은유로도 읽히는 <스파이더맨>의 드라마에서 그물을 더욱 복잡하게 짜는 것은 두개의 삼각관계. 파커와 해리, 그리고 메리 제인 왓슨 사이를 표류하는 로맨틱한 감정과 아버지의 애정을 얻고자 노력하는 해리와 파커, 그리고 파커에게 친아들보다 더 애착하는 노먼을 잇는 트라이앵글은, 액션영화 <스파이더맨>이 리얼한 심리 표현에 빼어난 배우들을 포진시킨 이유를 수긍하게 만든다. 그러나 <스파이더맨>의 예고편이 최우선으로 약속하는 것은 역시 거미인간의 현란한 곡예. 아예 제 몸에서 와이어를 자유자재로 뽑아내는 액션 히어로인 만큼 <매트릭스>의 벽타기 액션쯤은 우스울 법도 하다. 하지만 시각적 스토리텔링의 달인 샘 레이미 감독이 꿈꾸는 ‘거미인간의 키스’는 한층 깊은 듯. 180도로 펼쳐진 거미인간의 시야와 예민한 감각을 관객에게 그대로 전하기 위해 카메라워크, 특수효과, 촬영속도의 표현력을 극대화했다는 소문이다.
글 김혜리·사진제공 마노 커뮤니케이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