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Story
매주 월요일, 연옥엔 새로운 사람들이 도착한다. 이들을 반기는 면접관들은 죽은 이들에게 각자 살아오면서 가장 행복했던 순간 하나를 고르라고 말한다. 그러면 연옥에서 일하는 자들이 그것을 영화로 만들고, 죽은 이들은 영화를 보며 영원의 시간 속으로 떠나는 거다. 면접관 모치즈키(아라타)는 와타나베라는 노인을 담당하게 되는데 와타나베(나이토 다카시)는 행복한 순간을 고르는 데 특히 많은 시간을 소비한다. 그는 자신의 일생을 천천히 되돌아보면서 아내와의 추억을 상기한다. 모치즈키는 우연히 와타나베의 아내가 자신의 한때 애인이었음을 알고 더이상 그를 담당하기 힘들다고 상급자에게 말한다. 모치즈키는 연옥의 후배에게 자신이 오랜 시간 동안 이곳에서 일하고 있는 건 ‘행복의 순간’을 택하지 못했기 때문임을 밝힌다. ■ Review이 마을엔 TV가 없다. 자동차도 없고, 네온사인도 없다. 작은 건물 몇채, 시사실, 그리고 필름 창고만 있을 따름이다. 눈이 내리면 사람들은 우산도 받지 않은 채 걸어다니고 이따금씩 작은 북과 트럼펫으로 연주를 한다. 죽은 이들의 행렬을 이끌면서. 마을 지도가 머릿속에서 그려지는지? 더 자세히 말하면, 여기서 일하는 사람들은 인터뷰를 한다. 죽은 이들이 오면 늘 같은 질문을 던지고, 답변을 일일이 적어놓는다. “당신이 살아 있을 때 가장 행복했던 순간은 언제였나요?” 면접관들은 그들 기억을 바탕으로 짧은 영화를 단시간에 만들어낸다. 사자(死者)들은 이 영상의 기억만 간직한 채, 영원으로 사라질 것이다.
영화를 특정 소설에 빗대는 건 위험한 일이 될지 모른다. 지나치게 주관에 의존한 비평이 될 수 있으니까. 하지만 위험을 무릅쓰고 감히 말하자면, <원더풀 라이프>는 무라카미 하루키의 <세계의 끝과 하드보일드 원더랜드>의 확장 버전처럼 보인다. 마을 면접관들은 일종의 ‘꿈읽기’다. 찾아온 사자와의 면담을 통해, 그들 일생을 담은 필름을 통해 면접관들은 상대방의 꿈을 하나씩 읽어내기 시작한다. 사자들 이야기는 구구절절하고 빛깔도 가지각색이다. 섹스할 때, 전쟁의 와중에 주먹밥을 먹었을 때, 처음 하늘을 날았을 때, 디즈니랜드에 갔을 때 좋았고 행복했노라고 이미 숨이 끊긴 이들은 회한에 잠겨 고백한다. 몇십년 시간을 거슬러올라 지고로 행복한 느낌을 받았음을 되살려낸다.
우리는 약간 선문답 분위기를 풍기는 <원더풀 라이프>의 전반부를 보면서 영화가 많은 여백을 지녔음을 알게 된다. 관객은, 관객의 뇌세포는 인물들 이야기에 심정적으로 동참함으로써가 아니라 자신의 사고 속에서 나 홀로 질문을 주거니 받거니 한다. 그렇다면 난 언제 가장 행복했더라? 이런, 기억이 통 나질 않는군. 언제였지? 다큐멘터리와 픽션의 결합, 그리고 관객에게 의도적인 말걸기. <원더풀 라이프>의 숨겨진 영화적 매력이라고 할 만하다.
<원더풀 라이프>는 인물들의 ‘기억’에 관한 영화다. 연옥에 도착한 이들은 생후 몇 개월이었을 당시 기억까지 끄집어낸다. 당시 들었던 노래가사에서 정황, 그리고 주변 풍경까지 훤하게 꿰고 있다. 그때 노래를 누군가 부르고 있었어, 당시 바람결은치 이런 느낌을 자아내더군. 모두 진실을 말하는 걸까? 그렇진 않다. 영화 어느 지점에서부턴가 영화 속 인물들 이야기는 구체성의 벽이 점차 엷어진다. 명확하지 않거나, 허황한 구석이 조금씩 있다. 사자들은 가공된 진실을 지닌 채 살았고 맥없이 죽어간 셈이다. 하지만 영화에서 별로 중요한 사항은 아니다.
<원더풀 라이프>는 사람들의 꿈과 기억, 그리고 마음의 가장 빛나는 부분을 다른 기억으로 치환하는 과정을 보여준다. 다름아닌 ‘영화’다. <원더풀 라이프>에서 영화는 죽은 사람의 기억이자 필름의 내용이다. 때로 찾아온 이의 손길이 가리켜주면 먼지묵은 기억들은 그 조각을 스크린 위에 투사한다. 아름다웠던 순간들, ‘이건 죽을 때까지 꼭 기억해야지’라며 결심을 굳힌 순간들, 아프고 힘든 일이 있을 때마다 우리가 의존했던 기억들. <원더풀 라이프>에선 그것이 곧 영화다. <원더풀 라이프>는 사후 세계라는 익숙지 않은 판타지와 일본적인 생사관(生死觀)을 거치면서 영화의 ‘정체성’이라는 묵직한 질문을 집어든다.
<원더풀 라이프>는 극히 사사로운 판타지를 샘솟게 한다. 혹시 이런 몽상을 접한 적은 없는지? 개인은 자신이 속한 세계의 주인공이라는, 여기에선 세상 모두가 주연배우이자 감독일 수 있다는 몽상 말이다. <원더풀 라이프>에선 실제로 가능하다. 연옥 근무자들이 만든 영화를 통해서 가능하다. <원더풀 라이프>는 다큐멘터리와 픽션의 인공성을 적절하게 조합하면서 영화 매체에 관한 동화적인 언급으로 마무리한다. 궁극적으로, 이 다정한 영화는 개인이라는 ‘우주’가 필연적으로 지닐 수밖에 없는 쓸쓸함을 한장씩 펼쳐보인다. 여기서 우리는 모든 것이다. 또한 아무것도 아니다. 누구나 길을 인도하는 등대불빛을 밤하늘로 열심히 쏘아올리지만 응답신호를 보내오는 이는 그리 흔치 않다. 행복의 시간은 연인과 부부간에도 기억 속에서 서로 엇갈릴 수 있다. 정말로 놀라운 인생 아닌가. 김의찬/ 영화평론가 [email protected]
고레에다 히로카즈의 다큐멘터리
카메라로 그들의 삶에 개입하기
고레에다 히로카즈는 신비로운 구석이 있는 연출자다. 그는 몇년 주기로 세편의 장편영화를 만들었다. <환상의 빛>과 <원더풀 라이프>(이 영화는 <사후>라는 제목으로 부산국제영화제에도 소개됐다), 그리고 최근작 <디스턴스>다. 그런데 이 영화들은 베니스와 칸영화제를 비롯한 행사들에서 빠짐없이 소개되었고 고레에다 감독은 주목받는 일본감독 반열에 올랐다. 그런데 감독이 너무나 손쉽게 세계적인 연출자가 되었다는 오해는 곤란하다. 그는 극영화와 관계없이, 다큐멘터리 작업을 10여년 넘게 해오면서 영상물을 다듬어왔다. TV다큐멘터리에서 고레에다 감독은 자신의 고유한 주제의식을 발전시켰고, 선배 영화인들의 삶에 카메라를 들이댔으며 그들 영화세계를 모방하고 재창조했다. 평소 고레에다 감독이 흠모한다고 밝힌 바 있는 허우샤오시엔과 에드워드 양 같은 대만출신 연출자들이 그들. 감독은 장편 데뷔작 <환상의 빛>이 일본영화의 거장 오즈 야스지로뿐 아니라 허우샤오시엔 등 대만감독들에게 빚지고 있음을 밝힌 바 있다.
1962년생인 고레에다 감독은 명문으로 꼽히는 와세다대학 문학부 출신. 졸업 직후 TV다큐멘터리 프로그램 연출자가 되었다. 교육문제를 다룬 다큐멘터리 등을 만들던 감독은 허우샤오시엔에 관한 다큐를 만들면서 대만감독들과 친분관계를 갖기 시작했고 실제로 대만의 스탭들이 <환상의 빛> 스탭으로 부분적으로 참여하기도 했다. TV다큐인 <그가 없는 8월>(1994)은 AIDS 환자인 어느 게이의 삶을 일기체로 엮어낸 것. 그리고 <기억을 잃어버린 때>(1996)는 고레에다 감독 특유의 화법을 도입한 문제작으로 주목받았다. 이 TV다큐에서 고레에다 감독은 기억장애를 겪는 어느 환자를 화면에 담는다. 그는 ‘전향성 건망증’이라는 희귀한 병을 앓는데 아마도 이 증상은 최근 국내 개봉했던 <메멘토>라는 영화를 떠올리면 이해하기 쉬울 법하다. 환자가 특정 행동을 하지만, 그는 30분 정도 시간이 흐른 뒤 자신의 행동을 전혀 기억하지 못한다. 고레에다 감독은 ‘기억과 실존’이라는 주제의식을 이 다큐를 통해 다시 한번 유려하게 풀어냈다.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은 다큐와 극영화 사이를 오가며 작업하는 것에 대해 “영화감독은 어떤 사람들의 일상을 영화로 찍음으로써 그들의 일상에 어떻게든 참가하게 된다고 생각한다. 난 그 사실이 퍽 재미있고 의미있는 일이라고 본다”라며 독특한 견해를 밝히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