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Story
2차대전중의 영국. 쾌활하고 당찬 런던 아가씨 릴리(안나 프릴)는 휴가나온 캐나다 군인 찰리(에이든 영)와 클럽에서 눈이 맞는다. 만난 지 며칠 만에 결혼을 해버린 직후 찰리는 또다시 기약없이 전쟁터로 떠나고 혼자 남은 릴리는 딸을 낳는다. 곧 캐나다의 시댁으로 오라는 전갈을 받는 릴리. 그러나 전쟁통인 영국을 벗어나서 찰리가 자랑하던 존 웨인네 옆집, 몇천평 대지의 시댁으로 향한다는 기대에 부푼 릴리를 기다리는 건 황량한 벌판의 초라한 작은 집과 탐탁잖은 눈으로 자신을 바라보는 무뚝뚝한 시어머니와 시누이뿐이다.■ Review 찰리를 처음 만나 사랑에 빠지고 결혼을 해서 아이를 낳고 휴가나온 그를 다시 만나고 또다시 전장으로 떠나보내기까지. 이 많은 사건이 일어날 동안 릴리가 찰리를 직접 만난 건 고작 도합 13일이었다. 결혼이란 ‘결국은 혼자 사는 거’라더니! 모르긴 몰라도 전쟁통에, 순간의 매혹적인 이끌림에 기약없는 기다림을 저당잡힌 처녀들은 꽤 많았을 것이다. 캐나다의 촌구석에 사는 보수적인 시댁 식구들과 좌충우돌하는 도발을 강조하기 위해 제목도 <잉글리쉬 브라이드>가 돼버렸지만- 여기서 영국은 여타 영화들에서 영국인들이 보여주는 보수성과는 달리 발랑 까진 모던의 상징이다- 원제는 다.
인물들간의 대립을 지탱해주는 것이 릴리가 잉글리시라는 점이라면, 모든 사건의 배후에 서 있는 것은 바로 전쟁이라는 상황이다. 전쟁은 직접적으로는 한번도 보여지지 않는다. 이 영화에서 중요한 것은 전쟁터에서 라이언 일병을 찾아나선 사내들의 비탄어린 동지애가 아니라 남겨진 여자들이 나누는 수다이기 때문이다(따라서 후반부에 슬로모션 처리되어 찰리에게 겸허하게 경례하는 부상병이 등장하는 컷은 중대한 실수라고 하지 않을 수 없다).
여기서 전쟁은 특별한 사랑을 단번에 탄생시키는 계기이기는 하되 전쟁을 담보삼아 인생을 뒤흔드는 아련한 사랑 따위가 화두가 되지는 않는다. 영화 속 사랑에서 흔히 굉장한 사건으로 다뤄지는 결혼이 초반부에 성급하게 보여지고 만 뒤에 관객이 대면하는 것은 찰리의 상실이나 다른 사랑의 개입 혹은 침범이 아니라 결혼한 여자로서 릴리가 겪는 여러 가지 난항들이다. 조와의 키스가 외도가 아니라 명백한 실수로 받아들여지는 것도, 전쟁통에 어쩌다 코꿴 여자들이 남편의 부재로 느꼈을 다소 안쓰러운 외로움의 심리가 적절히 표현되었기 때문일 것이다.좀더 주의를 기울여야 했을 부분은 인물들간의 화해를 풀어가는 방식. 대립은 여러 각도에서 그려진 반면 화해의 과정은 많은 부분 생략 혹은 증발돼버려서, 어리둥절해 있는 새에 이미 모두들 화목해진 모습으로 어울리고 있음을 목격하게 된다. 여하튼, 릴리는 특유의 정겨운 영국 사투리로 항상 외친다. 용기를 잃지 말라고. 결혼을 했고 애까지 딸렸을지언정 그녀가 영국의 ‘캔디’임은 적어도 부인하기가 어려워지는 순간이다. 손원평 [email protect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