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때 충무로에 ‘이명세교’라는 종파가 있었다. 이명세 감독의 데뷔작 <개그맨>을 보고 매료된 젊은 영화인들이 그를 받들며 뿌리내린 이명세교는 궁핍한 살림살이를 면치 못했지만 새로운 영화에 대한 열정과 신념이 넘치던 사람들에게 영혼의 피로를 풀 수 있는 샘물과도 같았다. 이명세 감독의 영화세계를 사랑하고 영화에 대한 이명세 감독의 태도를 존경하던 그들 가운데 김태균 감독과 싸이더스 대표 차승재씨는 널리 알려진 인물들이다. 90년대 초반 영화아카데미를 나온 젊은 감독지망생들과 영화공장이라는 영화사를 차렸던 김태균 감독은 <나의 사랑 나의 신부> <첫사랑> <남자는 괴로워> 등 이명세 감독의 영화 3편의 프로듀서였고 당시 차승재씨는 단순히 옷장사를 하는 김태균 감독의 친구로서 이명세교에 가입했다. 지금은 감독과 제작자로 엇갈린 행보를 걷고 있지만 이명세 감독과 그들의 인연은 어릴 적 친구에 대한 추억처럼 애틋한 것이다.
<인정사정 볼 것 없다> 이후 미국에서 작품을 준비중인 이명세 감독이 <화산고>를 준비중인 김태균 감독을 만난 것도 그래서이다. 11월 초 귀국해 오랜만에 김태균 감독을 만난 이명세 감독은 후반작업 마무리 단계에 있는 <화산고>를 미리 보고 오랜 동료이자 후배인 김태균 감독와 영화에 대한 다양한 이야기를 나누었다. 서로에 대한 비판까지 애정어린 농담으로 들리는 그들의 대화는 영화로 맺어진 오랜 벗들이 나누는 우정이 어떤 것인지 보여준다. 편집자
김태균(이하 김) >>> 잘 봤어?
이명세(이하 이) >>> 봤다고 말하기 좀 그런데. 러시잖아. 사운드나 음악이 안 들어가서 리듬을 모르겠다.
김 >>> 그래도 한마디한다면.
이 >>> 음…, 이야기는 새로워. 근데 (관객에게) 어떻게 받아들여질지는.
김 >>> 말 돌리지 말고…. 아까 보니까 감동은 못 먹은 것 같은 눈치던데. 형이 늙어서 그래. 노인네가 요즘 유머나 개그에 약하니 곤혹스러울 법도 하지.
이 >>> 흐흐흐, 곤혹스러운 건 아니고. 개봉하기 직전이라 뭐라고 말하기가…. (웃음)
김 >>> 이번 영화에선 평소 안 해본 짓을 많이 해서 나도 잘 모르겠어. 장르적인 컨벤션만으로 가는 영화라고 보기도 어렵고. 일본 배급관계자들이 러시 보면서 장혁이 나오는 장면마다 웃긴 하던데, 극장 반응은 또 다른 거니까.
이 >>> 찍을 때 이게 맞다고 찍었으면, (감독이 할 일은) 그걸로 끝이야.
김 >>> 사실 이번 영화 자유롭게 찍고 싶었어. 그런데 하다보니 무지막지하게 자기 검열 같은 게 있는 거야. 이건 너무 튄다 싶은 장면은 스스로 누르거나 망설인 부분도 있고.
이 >>> 정답이 어디 있냐. 누가 오케이해주는 것도 아니고, 그건 네 판단이 정답이야. 다만 얼마나 끝까지 밀어붙일 수 있느냐가 중요하지. 주춤거리면 안 돼. 에잇 모르겠다, 하고 미친놈처럼 깽판치고 저질러야지. 그래야 나중에 후회 안 해. 안 그러면 애초 잡아놓은 설정까지도 흔들려.
흥행은 몰라, 귀신도 몰라
김 >>> 다른 영화 같으면 시나리오만 끝나면 음악이나 사운드까지 머릿속에 들어오는데. <화산고>는 끝까지 정답이 안 찾아져. 내겐 2주 정도의 시간밖에 안 남았는데. 감독이 지금도 고민하고 있으니 사운드 만지는 애들도 골치 아플 거야.
이 >>> 마지막 승부장면은 정극에 가까우니 사운드를 넣을 때 신경을 써야 할 거야. 전반부가 만화에 가깝다면 후반부 대결장면에선 극대화를 시켜야지. 예를 들면 준호가 죽는 장면에서 빗소리 대신 뼈 부러지는 소리를 넣겠다고 했는데 좀더 세게 가야 해. 총탄소리 같은. ‘두두두두’ 쏟아지는. <인정사정…> 때 마지막 장면에서 나도 빗소리 대신 바람소리를 쓰면서 고민 많이 했어.
김 >>> 15억원짜리 영화였으면 좀더 씩씩한 영화가 됐을지도 몰라. 내 하고 싶은 것 다 해가면서. 근데 이게 제작비로 50억원이나 들어가니까 감독으로서도 흥행에 대한 책임감을 느낄 수밖에.
이 >>> 흥행은 귀신도 몰라. 어차피 모르는 것이라면 감독은 내 걸 찍겠다고 밀고 나가야지.
김 >>> 자기 영화에서는 절대 안 그러면서 왜 나보고 하라고 그래.
이 >>> 그게 들어맞으면 내 영화에서 써먹으려고 그런다. (웃음) 꼭 그게 아니라도 네 영화 잘되면 나야 돈 빌릴 수 있는 곳이 늘어나서 좋잖아. 하긴, <화산고>는 너무 실험적인 영화라 좀 기다려봐야겠지만.
김 >>> 이게 무슨 실험영화야. 대중영화지.
이 >>> 대중적인 코드가 없다는 말이 아니고. <화산고>는 전체가 상상력으로 채워진 영화잖아. 언젠가 만화 같은 영화 찍는다고 했을 때 난 네가 장르영화 공식으로 아주 쉽게 찍을 거라 생각했는데, 보니까 아닌 것 같아서.
김 >>>처음부터 만화를 그대로 옮겨내겠다는 의도는 없었어. 원작만화가 있는 것도 아니고. 대신 좀더 재밌는 표현방법을 만화에서 차용하겠다는 것 정도였지. 만화엔 상상력을 극대화해서 표현할 수 있는 자유로움 같은 게 있잖아. 그래서 장면구성에서 화면을 분할하거나, 논리보다는 코믹한 과장을 내세운 거지. 거기에 무협의 요소도 덧붙이고.
이 >>> 단순히 과장된 상황이나 비약만을 보여주려고 해서는 안 되고 그 이상을 보여줘야 하지 않을까. 백자 구울 때도 쉽게 떠올릴 수 있는 흰눈의 이미지 같은 건 모두 지운다잖아. 영화도 마찬가지일 거야.
김 >>> 그래서 <화산고>가 좋다는 거야, 안 좋다는 거야?
이 >>> <화산고>가 쉬운 영화는 분명 아니지. 장르영화의 컨벤션을 따르지 않으니까. 컨벤션이란 게 대중의 반응을 정확하게 예측한 뒤 집어넣은 다음 비트는 것인데…, <화산고>는 그 수준을 넘어 물구나무선다고나 할까.
김 >>> 하긴 영화적인 논리를 무시한 부분도 많은데다 내러티브만 해도 전반부에 다른 이야기를 하면서 그 많은 인물들을 소개하고 있으니 그럴 만도 해. 어쨌든 언제나 끝날지…. 3편 몰아서 찍는 것 같다니까.
이 >>> 1년 넘게 찍었으니까 당연하지. (웃음)
김 >>> 술 먹고 싶어 촬영장 와서 형이 ‘겐세이’ 놓아서 그렇지. 테이크 몇번 더 간다고 감독도 아니면서 현장에서 ‘컷’ 불렀잖아. (웃음) 자기도 <첫사랑> 때 유영길 감독님 치떨리게 했으면서. 난 그래도 형처럼 영화를 지루하게는 안 찍잖아.
이 >>> 얘가 말을 막가파로 하네.
김 >>> 하긴 오래 찍는다고 좋은 작품이 나오는 건 아니야. 사실 캐스팅이 안 돼서 지연되고 그러면 감독이 갖고 있는 에너지가 그동안 다른 데로 새어나가. 리듬이 없어지지. 이번에는 작업기간이 너무 길어 금방 리듬이 깨지더라고. 사나흘마다 조울증이 오고. 시나리오만 되면 프로덕션까지 딱 한 호흡으로 가는 게 가장 좋은데.
이 >>> 시나리오 쓰는 것도 똑같아. 어떤 작품은 쉽게 될 것 같은데. 정작 해보면 그렇게 안 돼. 어떤 건 금방 끝나고…. 쉽게 풀릴 것 같은데 막혀서 고생할 때면, 아이고 다시는 쓰지 말아야지 그런다.
김 >>> 그래도 쓰잖아.
이 >>> 돈 몇푼 벌겠다고 다시 쓰는 거지. 연출료에 시나리오 값 더 쳐서 받으려고. (웃음)
김 >>> 근데 난 대중영화는 감독이 시나리오를 안 쓰는 게 낫다고 봐. 작품마다 동어반복의 함정에 빠지는 경우가 많잖아. 조금이라도 새로운 시각을 얻으려면 남들하고 같이 쓰는 게 낫지.
이 >>> 그게 어떻게 동어반복이냐? 그렇다면 매일 인물사진 찍거나 그림 그리는 사람들은 함정에서 허우적대는 건가. 아니잖아. 빛이 다르고 각도가 다르고 인물이 다르고 연출방법이 다른데. 오히려 우물을 깊게 파야 고기가 몰려드는 법인데.
김 >>> 그런가. 스타일의 차이겠지만, 옆에서 태클을 걸어줘야 자기 생각도 깊어진다고 생각해. 제작자와도 마찬가지야. 긴장관계에서 세게 걸고 들어오면, 스스로 복기를 해볼 수 있거든. 그러면서 아니다 싶으면 자기 억제를 하는 거고, 그래도 가야겠다면 확신대로 자기 발산하는 거고. 스스로에게 냉정해야 하는데 그게 쉽지 않으니까.
이 >>> 승재(싸이더스 대표 차승재)가 자주 촬영장에 왔냐.
김 >>> 나도 제작자 얼굴 보는 것 별로 안 좋아하고, 승재도 감독들 괴롭히는 스타일도 아니고. 두번 정도 봤나.
이 >>> 그러고보면 옛날과는 많이 변했어. 예전에는 제작자하고 일대일로 싸움을 벌일 때도 많았는데.
김 >>> 제작자하고 붙다가 혼자 분에 못 이겨서 억 하고 뒤로 넘어지더니 혼자 분해서 너희들이 영화를 알아, 하고 울부짖으며 옷까지 찢던 감독도 있었잖아. 영화제목이 <남자는 괴로워>였나.
이 >>> 자기도 <박봉곤 가출사건> 때 혈압 올라서 119에 실려가서 제작자 겁먹게 해놓고선.
김 >>> 승재하고 기용(박기용 감독)이도 <모텔선인장> 때 비오는 날 여름에 웃통 벗고 한판 붙고선, 언제 그랬냐는 듯이 다시 술집으로 들어와 건배하는 걸 보고서 도일(촬영감독이었던 크리스토퍼 도일)이 쫄았다잖아. 요즘 그런 이벤트는 없는 것 같아.(웃음)
이 >>> 하긴 예전에 극장에서 종영하려고 하면 극장 앞에서 필름으로 목을 감고 분신자살하겠다는 이들도 있었다니까…. 제작자와 대립하면서 중심잡는 영화가 있고, 힘을 합쳐 시너지를 내는 영화도 있고, 감독따라 영화따라 다 다르지.
현장은 영화학교가 아냐
김 >>> 현장이 많이 달라지긴 했어. 난 지금까지 촬영하면서 그림콘티 없이 했거든. 반은 러프한 줄콘티로 갔는데. 이번에 스탭들이 불만을 털어놓는 거야. 처음엔 당황했지. <키스할까요> 때도 안 그랬으니까. 그런데 난 한번 그림콘티를 만들어놓으면 정해진 것을 부수기 힘들어서 잘 안 해.
이 >>> 나도 그림을 잘 그리는 것은 아니지만, 그림이 잘 그려지면 현장에서 찍기 수월하다는 증거 아닐까.
김 >>> 사실 형 하는 거 보면 애니메이션 작업하는 것 같다니까. 너무 철저히 준비를 하니까. 배우가 웃을 때도 입이 이 정도까지 찢어져야 한다고 요구하잖아. 현장에서 형이 그러는 걸 보면 갑갑할 때가 있었어.
이 >>> 79년엔가. <달려라 만석이> 연출부 할 때였는데, 튀지는 않는데 연기자의 양말이 바뀐 거야. 그래서 최불암씨한테 가서 바꿔신으라고 했지. 근데 현장이 발칵 뒤집어졌어. 연출부 막내가 연기 지도한다고 험악한 제작부장에다 사장까지 달려왔으니까. 최불암씨는 너무 어이가 없으니까, 어떻게 하지도 못하고 ‘이 사람이 참’ 하면서 별일 없었지만서도. 그때 같진 않지만, 현장이라는 게 무슨 일이 일어날지 모르잖아. 내 작품 하면서는 10년 연출부 생활하면서 생긴 반동 같은 것도 있고, 아무래도 불안하니까 좀더 철저히 하는 거야. 배우에게 리허설을 요구해왔던 것도 그런 이유고. 배우가 어떤 상태인 줄 알아야 촬영할 때 커뮤니케이션이 쉬우니까. 그래야 시간도 더 줄일 수 있고.
김 >>> 형은 연습은 연습대로 하고, 촬영 들어가서도 정작 머릿속이 원하는 이미지와 안 맞아떨어지면 30번씩 테이크 가잖아. (웃음) 난 오히려 현장 갈 땐 그냥 가. 고민은 하되 확정은 안 해. 현장 가면 무엇이 나올까 하는 기대감 같은 게 있어. 나도 처음엔 배우한테 네 걸음 떼고 시선 놓고 대사 하고 시선 꺾고 하는 그런 리듬을 원했는데, 우리 애들이 신인이잖아. 그게 안 되더라고. 박자를 놓치는 것도 일쑤고. 근데 나중에 보니까 이게 오히려 더 신선한 거야. 사실 잔 하나 내려놓으면서도 계산하는 그런 징그러운 리듬 같은 거 있잖아, 그런 게 애들한테는 없으니까.
이 >>> 창작하는 사람에게 훈련이나 연습이 전부가 아니란 건 알면서도 난 요즘 일정한 통과절차 정도는 있어야 하는 게 아닐까 싶어. 그게 시험 같은 건 아니더라도 일종의 축적된 시스템에 의해 선별되어야 한다고 생각하는데, 우린 그런 게 없잖아. 현장이 영화학교여선 안 돼.
김 >>> 하긴 한국영화가 불안한 것도 그런 이유 때문일 거야. 축적된 것 위에서 끊임없이 웰 메이드 영화를 내놓는 장인들이 있어야지, 그걸 뛰어넘는 후배들이 나올 수 있는 건데. 한쪽에서는 집을 막 짓고 있고, 또 한쪽에서는 새 집 짓는다고 부수고 있는 상황이니.
이 >>> 역사라는 게 도전과 응전, 뭐 일종의 바통 터치가 돼야 굴러가는 건데. 일본영화만 하더라도 오즈 야스지로니 이마이 다다시니 다들 있잖아. 지금이야 산업적인 외형은 크지 않지만, 그들은 아버지의 후광 이상의 것을 받았어.
한국영화, 세계시장에선 아직 멀었다
이 >>> 한국영화 위상이 높아진 건 세계가 그만큼 열려서지 자력의 결과라고 보기는 힘들어. 아직 대중적인 확산은 멀었잖아. 그렇다면 아직도 뒤처져 있다는 걸 자각하고 있어야 하는데, 지금 우린 풍요로운 상황이라고 생각하니까 문제야. 그걸 부풀리는 언론도 문제고. 지금까지 한국이 어디에 가입했다, 그러니 선진국 대열에 끼었다는 말에 얼마나 속아왔어. 한국영화 거품, 퇴행이라는 말이 나오는데 잘될 수 있을 때 위기의식을 가져야 돼. 호사다마라고.
김 >>> 이제는 일본쪽 시장을 200만달러 정도로 잡을 만큼 한국영화가 갑작스레 커진 건 사실이야. 상상력만 있으면 한번 해볼 만한 해. 사실 <화산고> 같은 경우도 몇년 전만 하더라도 엄두도 못 낼 영화인데, 지금 이렇게 만든 건 그만큼 상황이 좋아졌다는 거니까. 내년이 중요한 시점이 될 것 같아. 안정화의 길에 들어서느냐, 보따리장수를 면치 못하느냐는. 아시아영화에 대한 세계적인 관심에 부응할 수 있는 상품을 내놓을 수 있어야지. 그리고 끊임없이 연구투자개발비를 쏟아야 할때고.
이 >>> 살아남으려면 새로운 걸 해야 해. 영화는 발명품이야. 비슷하게 나가면 살아남지 못한다고. 평생 그런 자세로 가야 돼. 승재도 그런 생각으로 지금까지 왔을 테고.
김 >>> 처음에 시나리오 갔다줬는데 보는 데서 바로 책상 서랍에 넣더라고. 우정은 우정이고, 일은 일이라고. 영화감독 하겠다는 친구들 내가 감독 시켜준다고 나섰던 때와은 다르지.
이 >>> 무서운 놈이야. (웃음) 나한테도 한번도 같이 영화하자고 안 하잖아. 그런 걸 보면 천상 장사꾼으로서의 소질 같은 게 있어.
김 >>> 그러고보면 인생이 재밌어. 영화공장 시절 내가 하던 걸 이제는 승재가 하니까. 영화 하겠다는 생각도 없던 놈이.
이 >>> 그 시절이 좋긴 했어. 돈은 없지만 뭔가 뜨거운 게 있었잖아.
김 >>> <네 멋대로 해라>는 16mm영화를 블로업해서 극장에 내건 영화였을 거야. 첫날 관객 300명이 거의 대부분이었지만. 그때 이장호 감독이 우리 영화 보고 무뇌아들이 만든 영화라고 했잖아…. (웃음) 처음에는 문외한이 만든 영화라고 했겠지 했는데. 그게 아니라는 걸 알고 나서 이를 악물었지. 물론 그때 필동 시절에 격려해준 사람들도 있었어. 연말이면 와서 술 사주던 기자들도 있었고. 승재도 옷장사 해서 번 돈으로 매번 쌀 한 가마니씩 부쳐주고.
이 >>> 내 요즘 뉴욕 생활이 그래. (웃음) 소주 대병 사다놓고 집에서 술 먹으니까…. 힘들 때 격려가 큰 힘이지. <개그맨> 개봉했는데 그때 아무도 잘 봤다, 아니다 별 반응이 없는 거야. 그런데 최인호 선생이 어디에다 글을 쓴 걸 보고선 큰 힘이 되더라고. 네가 제작실장 하면서 네 친구들이랑 날 도와준 것도 그렇고. 승재도 여러 번 엑스트라로 도와줬지.
김 >>> 충무로에서 처음 만난 감독인데다 내 사부나 다름없었으니까. 프로듀서 일을 하긴 했는데, 뭐 내가 연출부나 제작부를 한 적도 없고. 헌팅, 소품 준비, 엑스트라 관리, 콘티 짜는 것까지 다 어깨 너머로 배웠지.
이 >>> 그래놓고 <첫사랑> 할 때는 개겼잖아.
김 >>> 안 그래도 훌륭한데, 갑자기 쌈마이 같은 시를 집어넣겠다고 하니까 그렇지. 그것도 꽃색깔로. 결국 몰래 자기 맘대로 해놓고선. 녹음할 때 그거 보는데 뒤로 넘어가는 줄 알았어. 그러니 흥행성적이 형편없지.
이 >>> 무슨 소리야. 2만명은 들었어.
김 >>> 내가 극장 갔을 때 얼마나 썰렁했는데. 연감 뒤져보면, 아마 5천명이 안 될걸.
이 >>> 마니아 5천명 있다는 건 대단한 거 아니야? (웃음) 그래도 <인정사정 볼 것 없다> 개봉 때도 그런 마니아들 도움 많이 받았어.
김 >>> 미국에선, 잘됐어?
이 >>> 아트극장에서 전국적으로 풀었고, 대도시 아닌 곳은 대학극장에서 상영했지. 시네마 빌리지에서 추진을 했는데, 연말이라 시기도 안 좋고 해서 뭐 별로 재미는 못 봤고. 그래도 광고도 안 했는데 300석 규모의 상영관이 반은 항상 찼어. 끝까지 갈 생각을 했으면 다른 복안이나 그런 걸 생각했을 텐데.
김 >>> 상대적으로 작은 영화가 시장에서 살아남으려면 다른 방법을 찾아야 할 거야. <패왕별희> 같은 영화가 유럽에서 그랬던 것처럼 순회상영을 하거나 소규모 관을 장기 대관하는 식의 배급방식이 필요할 것 같아. 국내도 마찬가지야. 무조건 스크린 넓히고 프린트 많이 뜬다고 되는 게 아니거든. 다른 방법을 찾아야 블록버스터나 아트영화나 장르영화나 다 살아남지.
이 >>> <화산고>도 아트영화니까 그래야겠네. (웃음)
김 >>> 그런 말 하지마. 승재 괜히 겁먹어. 흥행이 돼야 형한테 장학금도 보내줄 것 아니야. 지금 하는 건 없어?
이 >>> 초고는 끝냈긴 했는데…, 아직 뭐라고 말할 단계는 아니고. 들어가서 마무리한 뒤 넘겨줘봐야 알 것 같아. <미리엄>이라는 공포영화인데 트루만 코프틴의 단편소설에서 제목을 따온 거야. 들어왔던 시나리오 중 맘에 든 게 없어, 내가 직접 쓰기로 한 거지.
김 >>> 형이 잘 나가야 나도 뉴욕 한번 가보지.
이 >>> 너 오면 다른 데로 갈 거야. <화산고> 잘되면 와서 자랑하려고 그러지. 내가 한국에서 이명세보다 잘 나갔다 하고.
김 >>> 살아 있으면 다 경쟁자지, 뭐. 원래 선배란 게 밟으라고 있는 거야.
이 >>> 원래 오만방자한 게 네 스타일이니까. 10년 뒤에 후배들한테 어떤 이야기를 하는지 보자. (웃음)
김 >>> 그때까지 살아남을지 몰라. 겁나는 세상인데. 영화청년들이 그때까지 살아남아 있으면 보기좋을 거야.
이 >>> 당연하지.
정리 남동철 [email protected]·이영진 [email protect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