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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울영화 74편 올가이드 [7]
김혜리 2001-11-30

바닐라 스카이

오픈 유어 아이즈! 현실과 환상의 경계에서 길을 잃고서 추락을 택했던 세자르가 뉴욕에 떨어졌다. <바닐라 스카이>는 알레한드로 아메나바르의 <오픈 유어 아이즈>(1997)를 리메이크한 작품. 매끈한 외모에 재력을 지닌데다 천하의 바람둥이인 데이비드 에임스(톰 크루즈)는 원작에서 세자르가 당했던 고통 역시 그대로 물려받는다. 자신의 단짝친구의 애인인 소피아(페넬로페 크루즈)에게 한눈에 반하지만, 이튿날 하룻밤 상대였던 줄리(카메론 디아즈)의 복수극에 얼굴이 심하게 일그러지는 교통사고를 당하는 것이나, 어렵사리 소피아로부터 사랑 고백을 끌어내지만 이후 자신도 알 수 없는 극한적인 분열증세에 시달리는 것까지 닮았다. 직접 판권을 사들인 것으로 알려진 톰 크루즈는 <클럽 싱글즈><제리 맥과이어>의 카메론 크로에게 메가폰을 맡겼다. 아직 공개되지는 않았지만, 아무래도 관객을 악몽의 크레바스 속으로 내몰았던 아메나바르보다는 강도가 덜 할듯. 촬영 내내 제작진이 페넬로페 크루즈가 맡게 될 역할에 대해선 함구, 그녀가 전작의 매혹적인 소피아인지 아니면 되살아나는(?) 줄리인지에 대해서는 의견이 분분했지만, <바닐라 스카이>가 톰 크루즈와 페넬로페 크루즈를 실제 연인으로 맺어줄 것이라는 점은 누구나 예측한 결과.

리빙 하바나

HBO 채널이 제작한 수작 <리빙 하바나>는 피델 카스트로 정권의 압박 아래서 자유로운 공기를 희구하던 탁월한 트럼펫 주자 아르투로 샌도발의 망명기를, 때로는 서글프게 때로는 흥겹게 재현한다. 디지 길레스피와 찰리 파커의 세계를 동경하며 마음속에 예술혼을 키우는 쿠바의 청년 아르투로는 버스 정류장에서 만난 아름다운 처녀 마리아넬라에게 구애해 결혼에 이른다. 그러나 투철한 신념을 가진 공무원인 마리아넬라와 아르투로는 정권과 사회를 바라보는 시선의 차이로 갈등을 겪기도 한다. 주인공으로 호연한 앤디 가르시아와 <탱고>의 미아 마에스트로 외에 <리빙 하바나>의 주역은 쿠바 재즈음악. 콘서트장면은 스토리를 멈추기보다 액션을 완성하는 역할을 수행하며 영화 간간이 화려한 악센트를 넣는다.

붉은 다리 아래 따뜻한 물

일흔 넘은 노인이지만 이마무라 쇼헤이의 상상력은 영화악동들의 장난기를 훌쩍 넘어선다. 외설적이게도 그는 이번 영화에서 섹스를 할 때 분수처럼 물을 뿜는 여인을 등장시킨다. 여인의 몸에서 흘러나온 물은 하수구를 따라 개천으로 흘러들고 냇물에 물고기가 모여든다. 몸에 물이 차올라 주체 못하는 여인을 영화는 ‘숨겨둔 보물’이라 칭한다. 실직하고 가정에서도 내몰리던 남자는 우연히 알게 된 부랑자 노인의 말을 따라 그녀를 만나고 삶의 에너지를 회복한다. 생명이 싹트고 회복되는 과정을 유머와 에로티시즘에 담은 이 영화를 보면 누구나 이마무라의 충고에 고개를 끄덕일 것이다.

피아니스트

올해 칸영화제에서 심사위원대상, 여우주연상, 남우주연상 등 3개 부문을 휩쓴 <피아노 티처>는 한마디로 ‘충격적인’ 영화다. 이 영화의 엔딩장면을 보고도 웃는 낯으로 극장을 나서는 것은 불가능하다. 아무 생각없이 지내다가도 가끔씩 그 장면이 기습하는 순간을 맛볼 것이다. 영화의 주인공은 제목 그대로 피아노 선생님이다. 학생들에게 엄하고 몸가짐과 태도가 정갈한 그녀는, 그러나 아무도 보지 않는 곳에서 기괴한 성적 취향을 드러낸다. 어린 남학생이 그녀를 좋아하게 되면서 비극은 시작된다. 남자는 그녀의 행동을 이해할 수 없어 괴로워하다 폭력을 행사한다. 광기에 휩싸인 사랑은 출구를 찾지 못하고 가슴을 찌르는 아픔을 남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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