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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몬스터 주식회사>와 픽사 스튜디오 탐방기
2001-11-30

드디어 공개된 5살배기 프로젝트, <몬스터…>와 제작진 인터뷰

드넓은 미국 땅에서 제 나름의 분위기를 지닌 도시가 어디 한둘이랴마는, 샌프란시스코는 유난히 독특한 정취를 품고 있다. 멋스런 유럽풍 집들의 이국적인 느낌이 그렇고, 가파른 고개를 꾸준히 기어오르는 전차가 그렇다. 아니 굽이굽이 언덕을 따라 자리잡은 도시 자체가 그렇다. 차가 없으면 꼼짝없이 발이 묶이는 LA는 물론, 비교적 전철과 택시가 발달한 뉴욕 등 여느 도시보다 대중교통을 많이 이용한다는 것도 미국에서는 보기 드문 풍경이다. 한때 히피들의 터전이었다는 헤이트 애시베리에는 ‘사랑의 여름’(Summer of Love)이나 그레이트풀 데드 같은 히피문화의 상징이 새겨진 티셔츠가 심심찮게 보이고, 게이들의 거리라는 카스트로의 카페에는 다정하게 마주앉은 동성연인들의 모습이 자연스럽다. 시내 중심가에서 벌어진 아프가니스탄 반전시위나 살 집을 요구하는 홈리스들의 시위에 100여명이 몰리는가 하면, 킹 크림슨 같은 60년대산 노장들의 공연에 아직도 수백명이 줄지어 선다. 사랑과 자유의 이상을 추구한 60년대 히피운동의 메카답게, 도시 곳곳에 분방하고 예술적인 공기가 감돌고 있다. 물론 그마저 샌프란시스코를 관광 명소로 만들어주는 하나의 아이템이 된 것이겠지만.

애니메이션 사상 최고의 개봉 성적

LA의 엔터테인먼트 산업이나 뉴욕의 지적 엘리티즘과는 또다른 문화의 표정이 풍부한 이곳에, 컴퓨터그래픽 애니메이션의 명가 픽사도 둥지를 틀고 있다. 정확히 말하면, 샌프란시스코와 첨단산업의 고장 실리콘밸리를 모두 지척에 둔 근교 에머리빌이 현재 픽사의 터전. 역시 샌프란시스코 근교인 리치먼드의 전원에서 지난해 11월 이곳으로 옮겨온 픽사는 디즈니와 함께, 최근 5년간 공들여온 신작 애니메이션 <몬스터 주식회사>를 선보였다. 지난 11월2일, 미국 3237개 극장에 개봉한 <몬스터 주식회사>는 3일 만에 6350만달러 이상을 벌어들이며 애니메이션 사상 최고의 오프닝 성적으로 화려한 개막전을 치렀다. 오프닝에 한해서 보면, 올해 최고의 흥행작 반열에 오른 드림웍스의 <슈렉>의 4230만달러는 물론, 99년 5700만달러 이상을 거둬들이며 애니메이션 사상 최고라는 타이틀을 차지했던 <토이 스토리2>를 능가하는 기록이다. 할리우드의 역대 11월 개봉작 중에서도, 디즈니영화 중에서도 최고의 오프닝이자 실사영화까지 통틀어 6위의 성적. 이로써 <슈렉>의 대성공에 비해 부진했던 <아틀란티스>로 썰렁한 여름을 보낸 디즈니는 기쁘게 한숨 돌렸을 터다. 여세를 몰아가기라도 하듯 디즈니와 픽사는 세계 25개국 기자 120여명을 샌프란시스코의 픽사 애니메이션 스튜디오로 불러모았다.

픽사의 새 스튜디오를 방문한 것은 지난 11월 12일 아침. 갑작스런 뉴욕의 비행기 추락 사고 뉴스로 어수선한 가운데, 언짢은 듯 찌푸린 하늘은 안개비를 뿌려대고 있었지만, 온실처럼 창이 넓은 픽사 스튜디오 내부는 쾌청한 분위기였다. <개미> <슈렉>을 만든 PDI스튜디오와 달리 전체적으로 밝고 따스한 톤의 조명도, 입구에 꾸며놓은 아늑한 거실 분위기의 식당도, 각각 다른 작업팀들의 공간을 이어준다는 구름다리처럼 열린 구조도. “<벅’스 라이프> 때 지저분한 예전 스튜디오를 본 사람도 있겠지만 새 단장한 스튜디오에 온 걸 환영한다”며 살가운 인사를 건넨 존 래세터를 비롯해 <몬스터 주식회사>의 제작공정을 되짚어주는 픽사의 사람들도 어려운 과제를 끝낸 뒤의 여유를 즐기는 눈치였다. 5년간 매달렸던 그들의 과제가, 개봉 9일째인 전날까지 이미 1억2천만달러를 웃도는 수익을 올리며 제작비를 거의 회수하며 호평을 받은 것도 일조했겠지만. 이 성공으로 전년도 대비 수익 감소율이 30%라는 픽사의 위기설과 <토이 스토리3>를 둘러싼 디즈니의 불화설 같은 소문 역시 잦아든 분위기다.

<몬스터 주식회사>는 95년 <토이 스토리> 이래 동업체제를 유지해온 픽사와 디즈니의 4번째 장편애니메이션이다. 살아 있는 장난감들의 이야기, 자연과 곤충들의 소우주를 거쳐온 픽사의 상상력이 눈을 돌린 곳은 몬스터, 곧 괴물들의 도시. 몬스터 주식회사는 몬스터 세계의 에너지원인 아이들의 비명을 채집하는 곳이다. 그곳의 회사원 몬스터들은 아이들 방의 벽장으로 통하는 수십만개의 문을 열고 들어가 능력껏 아이들을 겁주고 비명을 모은다. 그중에서도 북실북실한 청록빛 털에 보라, 파랑의 점을 지닌 제임스 P.설리반, 일명 ‘설리’는 늘 ‘이달의 겁주기 왕’(Scarer of the Month)에 꼽히는 유능한 몬스터. 남부러울 것 없던 설리와 친구인 초록색 외눈박이 괴물 마이크의 일상은, 설리가 자신도 모르는 새 데리고 온 꼬마 소녀의 출현으로 뒤죽박죽된다. 문제는 아이들을 겁주곤 하는 몬스터들이, 사실 아이들과의 접촉을 무서워한다는 것이다. 아이들의 방에서 양말 한짝이라도 달고 돌아오는 날엔 당장 ‘맨 인 블랙’ 뺨치는 CDA 요원들이 나타나 인간의 흔적에 감염된 몬스터와 그 주변을 살벌하게 소독한다. 사정이 이렇고보니, 아이를 떠맡게 된 설리도 패닉상태에 빠지지 않을 수 없다. 설리는 마이크까지 동원해 아이를 돌려보내고자 애쓰지만, 이들을 전혀 두려워하지 않는 아이는 신기하고 낯선 세계를 종횡무진 누빈다. ‘부’라고 이름붙인 아이와의 접촉이 위험하지 않다는 사실을 깨달은 뒤에도 설리와 마이크는 고전을 면치 못한다. 부를 몬스터로 위장해 회사로 들어가는 데 성공하지만, 이번에는 라이벌 랜달의 음모에 맞닥뜨린다. 랜달과 회사의 사장인 워터누즈는, 아이들을 괴롭히더라도 비명을 좀더 확실하게 모을 계략을 꾸미고 있다.

픽사가 빚어낸 정교한 이미지의 향연

이들의 음모에 맞서 부와 아이들을 지키려는 설리와 마이크의 모험이 <몬스터 주식회사>가 제공하는 판타지. 작품마다 본 적 없는 세계를 지어내는 데 필요한 소프트웨어와 프로그램을 개발해가며 표현영역을 넓혀온 픽사인 만큼, 이번에도 일진보한 기술이 제공하는 이미지의 향연은 매혹적이다. 300만개에 이른다는 설리의 털은 주요 머리카락과 털 한올 한올에 그림자를 주는 딥섀도잉 프로그램을 거쳐 한결 사실적인 질감이고, 시뮬레이션 소프트웨어를 개발하는 데만 2년이 걸렸다는 부의 의상은 몸에 붙어 있는 게 아니라 움직임에 따라 자연스럽게 주름진다. 좀더 섬세한 움직임 연출을 위해 개발한 새 애니메이션 컨트롤 아바스로 빚어낸 캐릭터들은, <토이 스토리2>에서 가장 정교하다는 장난감 쇼핑몰 주인 알보다 30∼40% 이상의 컨트롤을 가지고 다양한 감정을 드러낸다. 특히 설리와 마이크가 랜달에게 속아 히말라야로 쫓겨났을 때 휘날리는 눈보라와 눈밭에 넘어진 설리의 털 사이로 쌓이는 눈송이까지 테크놀로지의 정교함은 흠잡을 데가 없다. 괴물 세계와 인간 세계를 연결하는 570만개의 벽장문이나 60년대 모더니스트 빌딩과 철강산업이 쇠락해가는 시카고의 이미지에서 어딘지 시대 착오적이고 에너지 위기에 봉착한 몬스터들의 도시를 구상했다는 디자인도 마찬가지. 잘 눈에 띄지 않는 원경의 비상구까지 신경쓴 세심함이나 한두개가 아니라 여러 개의 빛을 섞는 새로운 조명효과도 <몬스터 주식회사>의 세계에 실감과 깊이를 더한다. 무엇보다 기술적으로 가장 큰 도전이었다는 클라이맥스, 설리가 부를 구하기 위해 컨베이어 벨트에 연결된 채 롤러코스터처럼 돌아가는 수백만개의 벽장문 사이를 건너뛰는 장면은 테크놀로지와 상상력의 환상적인 조합이 선사하는 장관이다. 기술감독인 토머스 포터는 이 시퀀스와 히말라야 시퀀스야말로, “픽사가 6년 전 <토이 스토리>에 비교할 때 어디까지 와 있나를 보여주는 훌륭한 예”라고 말한다. 이제 픽사는 그때의 50배에 이르는 컴퓨팅 파워를 갖고 있으며, 이를 바탕으로 디지털 자료로 쌓아올린 이미지의 신천지를 소화해낸다는 것이다.

“테크놀로지는 케이크 위의 당의”

하지만 “우리 중 누구를 만나도 듣는 말이겠지만, 가장 중요한 것은 스토리와 캐릭터이고 모든 그래픽과 비주얼은 케이크 위의 당의”라는 공동감독 리 언크리치의 말대로, 픽사의 제작진은 이야기의 중요성에 입을 모은다. 이를테면 <파이널 환타지> 같은 영화는 기술적으로 놀라운 성취임에 분명하지만 부진한 박스오피스 성적은 이야기의 중요성을 입증하는 증거라는 것이다. 제작기간이 5년씩 걸리는 것도 스토리에 충분히 뜸을 들이기 때문이라는 게 이번에 제작총지휘를 맡은 존 래세터의 말. 과연 <몬스터 주식회사>를 보는 즐거움은 비단 테크놀로지의 경이로움만이 아니다. 공동감독인 피트 닥터의 원안에서 출발해 댄 거손 등 여러 명의 작가팀이 세공한 이 벽장 속 괴물들의 이야기는, 오래 전 닫아둔 기억의 벽장을 열어젖히고 처박아둔 상상력의 먼지를 털어낸다. 문화권에 따라 약간의 변주는 있겠지만, 벽장이든 장롱이든 내 방 어딘가의 괴물에 대한 회상은 잊었던 장난감에 대한 추억만큼이나 보편적인 공감을 자극하고, 비명보다 웃음이 더 좋은 에너지원이라는 선량한 판타지와 함께 아이들을 넘어 폭넓은 관객에게 다가설 만하다. “<몬스터 주식회사>의 개봉 주말 관객의 40%도 어른들과 십대들이었다”는 존 래세터는, “대학생들도 우리 작품의 최고 관객에 속한다. 이제 픽사의 영화는 10대나 젊은 관객이 보기에도 쿨하다는 명성을 얻기 시작했다고 자부한다”고 말한다.

<토이 스토리>의 시작부터 지금까지 픽사의 지향은, 래세터의 말을 빌리자면 “무엇보다도 관객을 즐겁게 하는 것”이었다. 그리고 가장 까다로운 관객이자 비평가인 자신들이 즐거울 수 있는, 보고 싶은 것을 만드는 것. “항상 모두를 관객으로 삼고자 노력하는데 사실 그게 더 어렵다. 보통 전체관람가인 G등급을 ‘죽음의 키스’라고들 하지만 우린 자부심을 갖는다. 물론 가족영화지만 십대와 젊은 관객도 가족의 일원 아닌가. 아이들에게 적합하지 않은 언어나 소재로 아이들과 부모들을 소외시키지 않고도 그 모든 사람들을 정말로 즐겁게 하는 영화를 만들 수 있다고 믿는다.” 현재 픽사에서 제작 준비중인 열대어 부자의 모험 <니모를 찾아서> 역시, 그러한 존 래세터와 픽사가 꾸는 꿈의 연장선상에 있을 것이다. 과연 그대로일지 어떨지는 개봉예정인 2003년이 되어야 알겠지만, 어떤 형태든 이들이 빚어낼 3차원의 애니메이션 판타지아에 대한 궁금증은 남겨둘 만하다. 샌프란시스코=황혜림▶ <몬스터 주식회사>와 픽사 스튜디오 탐방기

▶ 제작 총지휘 존 래세터, 감독 피트 닥터 인터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