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치 않은 일복이 터져 토요일 오후까지 사무실에 나가 컴퓨터 자판을 두드리고 있는데(신문사는 대체로 토요일이 쉬는 날이다), 시인 S가 전화를 했다. 집에 전화를 했더니 아무도 안 받아 혹시나 하고 해봤다, 그 신문사에는 휴일도 없느냐고 너스레를 떨더니, 또다른 시인 Y와 <와이키키 브라더스>를 보러 가기로 했는데 끼겠느냐는 것이었다. 그날 해치우기로 마음먹은 일이 마무리되지는 않았지만 <와이키키 브라더스>를 보는 것도 미룰 수 없는 숙제인 듯해(영화는 훌륭한데 관객이 들지 않아 <고양이를 부탁해>처럼 곧 간판을 내릴 거라는 걱정스러운 얘기를 여러 차례 들었다), 거충거충 일을 작파하고 시네코아로 갔다.
영화를 보면서 나는 조마조마했다. 이 영화에 대한 찬사를 자주 드러내 기대지평이 한껏 높아져 있던 터라, 혹시라도 그만큼이 아니면 어쩌나 하는 조바심이었다. 그리고 순간순간 그 걱정이 아슬아슬하게 현실화하는 느낌도 받았다. 특히 몇몇 배우들의 대사 연기가 문득문득 위태롭게 보일 때 그랬다. 그러나 마침내 객석이 밝아졌을 때, 나는 안도했다. 나는 임순례라는 여성을 알게 된 것이 기뻤고, 이 영화의 유료 관객이 된 것이 자랑스러웠다. 자리에서 일어서며 슬며시 훔쳐보니 두 시인의 눈에 액체가 비쳤다.
너무 호들갑을 떨지는 않는 것이 좋겠다. 그러니까 <와이키키 브라더스>가 올해 한국에서 나온 최고의 영화랄지, 국제적 수준을 웃도는 영화랄지 하는 호들갑 말이다. 그러나 영화에 문외한인 내 눈에 <와이키키 브라더스>는 수십년 전 이탈리아의 어떤 네오리얼리즘영화처럼 보였다. 정치의식을 다소 깎아낸 네오리얼리즘영화. 아니, 이 영화는 에밀 쿠스투리차의 어떤 영화를 닮은 것 같기도 했다. 이렇게 말하는 것은 임순례 감독을 깎아내리기 위해서가 아니다. 그러니까 나는 지금 임 감독이 이탈리아의 뛰어난 영화작가들이나 쿠스투리차를 흉내냈다고, 남들이 닦아놓은 길을 그녀가 편안하게 걷고 있다고 말하는 것이 아니다. 나는 차라리, 이탈리아의 뛰어난 네오리얼리스트들이나 쿠스투리차가 지닌 시선의 깊숙함을, ‘차가운 따스함’을 임 감독에게서 느꼈다고 말하는 것이다. 그 시선의 깊숙함, 그 시선의 ‘차가운 따스함’은 대상들의 심층에 닿아서, 그 표층이 1940∼50년대 이탈리아든, 1980∼90년대 유고슬라비아든, 1980∼2000년대 한국이든, 서로 비슷한 느낌의 아름다움을 빚어내는 것 같다. 지나는 김에 얘기하자면, 나는 한(恨)이라는 것을 우리 민족 고유의 정서로 내세우는 데 선뜻 동의할 수 없다. 나는 포르투갈의 파두나 동유럽의 집시음악 그리고 서남아시아나 러시아의 어떤 음악에서도, 심지어 서유럽이나 미국의 어떤 민요들에서도, 우리 판소리나 잡가 못지않게 짙은 한을 듣는다. 한은 민족적 감수성이라기보다 계급적 감수성인 것 같다.
극장 나들이가 워낙 뜸해서 내 선호의 순위를 매기는 것이 별 뜻은 없겠지만, 올해에 본 영화 가운데 <와이키키 브라더스> 이상으로 내게 깊은 인상을 심은 작품은, 어디 보자, <파이란>뿐인 것 같다. <고양이를 부탁해>를 보지 못한 것이 크게 유감스럽기는 하지만, ‘잔잔한 문예물’ 분위기가 너무 짙은 작품들은 내 감수성과 다소 거리가 있어서, 그 영화를 봤다고 하더라도 <파이란>이나 <와이키키 브라더스>의 순위가 변할 것 같지는 않다.
이 글을 읽는 분들 가운데 <와이키키 브라더스>를 아직 안 본 이들도 <씨네21>의 기사를 통해 영화의 스토리는 얼추 알고 있을 것이다. 그러니 내가 스크린 속 변두리 인생들의 안쓰러운 역정을 다시 이야기할 필요는 없겠다. 그러나 <와이키키 브라더스>가 스토리 이상의 영화라는 얘기는 하고 싶다. 그것은 스크린에서 참참이 튀어나와 역동적 애상을 자아내는 대중음악 가락 때문만은 아니다. 이 영화에는 좀처럼 잊기 힘든 장면들이 있다. 그 가운데 대뜸 떠오르는 것은 술에 취한 손님들의 강요로 성우(이얼)가 옷을 완전히 벗고 알몸뚱이 상태로 연주하는 장면이다. 그때 성우의 표정에는 삶에 대한 어떤 달관 같은 것이 흘끗 비쳤다. 야채장사를 걷고 성우를 따라 밤무대 가수로 나선 인희(오지혜)의 노래로 영화를 마무리한 것도, 비록 상투적이긴 하지만(영화를 따라가다 보면 예측할 만한 일이라는 뜻이다), 인상적이다.
충주 수안보 언저리를 오가던 스크린 속 배경은 마지막 장면에서 여수로 바뀐다. 와이키키는 하와이주의 해변 휴양지라고 한다. 젊은 독자들의 귀에는 익지 않을지 모르지만, 한때 전라도나 전라도 사람을 타지 사람들이 ‘하와이’라고 부르던 관습이 있었다. 물론 경멸적 함축이 매우 짙은 말이다. 전라도와 하와이를 등치시킨 상상력의 회로를 독자들도 어렴풋이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하와이라는 한국어에 담긴 부정적 함축을 진짜 하와이언들이 안다면 그들은 불같이 화를 낼 것이다. 어쨌든 <와이키키 브라더스>가 전라도의 항구 도시에서 끝난 것은, 감독이 의도하지는 않았겠지만, 그럴듯하다. 중요한 얘기는 아니지만 참고로, 이 글을 쓰는 아저씨도 하와이다.
고종석/ 소설가.<한국일보> 편집위원 [email protect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