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여자로 살았다”라는 찬사로 입을 열자, 그녀는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여자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그냥 여성으로 살았을 뿐이다. 그리고 배우로, 감독으로”라고 분명한 어조로 자신의 생각을 밝혔다. <사형대의 엘리베이터> <쥴 앤 짐> 등을 통해 누벨바그의 아이콘이 된 배우 잔 모로는 올해 부산영화제가 모셔온 귀한 손님이다. 11월15일 오전 11시30분, 파라다이스 호텔 18층. 해운대 바다가 창문 가득 펼쳐진 카페에 청바지에 하늘색 블라우스, 파란 니트 카디건 차림으로 나타난 잔 모로는 파리 시내에서 흔히 볼 수 있는 할머니처럼 소탈했지만, 말을 걸면서 똑바로 상대를 쳐다보는 눈동자는 여전히 빨려들고 싶게 아름다웠다. <쥴 앤 짐> 시절의 고혹적인 목소리는 많이 거칠어졌지만, 거침없고 확신에 찬 목소리로 ‘위’ 또는 ‘농’ 하고 말할 때 카트린의 그림자가 겹쳐지는 건 어쩌면 자연스러운 일. 일흔이 넘은 나이에도 여전히 스크린의 초대를 받고 있으며, 감독으로까지 영역을 넓히고 있는 잔 모로는 파리로 돌아가면 준비중인 신작의 촬영장소를 헌팅하고, 2002년 5월에는 영화촬영을 시작할 예정이라며 “지나간 날들보다는 현재를 이야기하고 싶다”는 말로 자신이 “여전히 살아 있음”을 알렸다.
엄격한 집에서 자랐다고 들었는데, 어떻게 연극, 영화 등 예술계에 입문할 수 있었나.
연극으로 시작했다. 원래는 전통 무용수가 되고 싶었다. 어머니는 영국, 아버지는 프랑스 사람이었고, 검소한 집이었다. 아버지가 엄격하셨다. 그냥 현모양처가 되거나 공부를 열심히 해서 교수 등이 되길 바랐다. 연극학교 시험을 봤는데 돈이 없어 장학금을 받기 위해 공부를 열심히 했다. 아버지가 예술인이 되는 걸 별로 원치 않아 학비지원을 해주지 않았기 때문이다. 연극을 하기 위해 아버지 몰래 코미디 프랑세즈에 시험을 봐서 합격했다. 하지만 공연했던 연극이 성공해 언론에 기사화되어 아버지가 알게 되었다. 아버지는 격노해서 나를 쫓아내셨고, 몰래 나를 도와주던 어머니도 영국으로 돌아가야 했다. 나는 작은 호텔방에 묵으면서 살아야 했지만, 그 시련이 오히려 살아가는 데 도움이 되었다.
가장 호흡에 맞는 남자배우가 있다면.
나에게 중요한 건 배우가 아니라 감독이다. 배우는 일정 정도의 소양만 갖고 있다면 누구든 상관없다. 감독과의 호흡이 중요하다.
<사형대의 엘리베이터>를 통해 루이 말을 처음 만나고, 스타덤에 올랐다.
그와는 공적으로, 사적으로 특별한 관계였다. <사형대의 엘리베이터> 다음에 <연인들>도 함께 찍었고, 5년 동안 연인이기도 했으니까. <연인들>은 당시 프랑스를 비롯해 캐나다, 벨기에, 이탈리아 등 몇몇 나라에서 상영금지되었지만 세계적으로 유명해진 화제작이었다.
분방하고 열정적인 캐릭터가 많다. 본래의 성격도 그러한가.
신여성의 배역이었다. 나에게 맞고 안 맞고는 중요하지 않다. 나를 위해 쓴 배역이었다. <사형대의 엘리베이터>와 <연인들> 등에 나타난 신여성이란 저항하는 여성, 즉 반항하는 이미지다. 반항하는 여성이란 어떤 경우에도 자신의 열정을 포기하지 않으려는 여성이란 의미다. 이런 여성에게 결혼 여부는 문제가 아니다. <줄 앤 짐>의 카트린의 경우도 사실 남자에겐 흔한 일이다. 주체가 여자였기 때문에 그렇게 큰 반향을 불러온 것뿐이다.
트뤼포는 어떤 사람이었나.
그는 불가사의한 사람이었다. <카이에 뒤 시네마>의 저널리스트였는데 감독으로 온 1959년 칸영화제에서 처음 만났다. 그뒤 파리에 돌아와 1주일에 두세번 정기적으로 만나 점심을 함께하곤 했다. 말이 별로 없는 사람이었고, 편지로 이야기하는 것을 좋아했다. 그러다 2년 뒤 <쥴 앤 짐> 출연을 제안하더라. 그리곤 그가 죽을 때까지 우리의 우정은 지속되었다. 인간 트뤼포는 여자를 사랑했고, 존경했고, 여자에 매혹되었다. 여자는 그의 영감의 근원이었다. 그리고 영화를 사랑했다. 영화를 찍기 전 철저히 준비를 해서 매우 짧은 시간에 집중적으로 일을 해냈다.
이후에 루이스 브뉘엘, 오슨 웰스 등 많은 거장과 함께 일했는데.
그렇다. 루이스 브뉘엘은 나에게 이상적인 아버지였다. 그는 “당신이 내 딸이었으면 큰일났을 거요. 난 소유욕 때문에 정신이 나가 당신을 옷장에 가둬두고 아무도 당신을 보지 못하게 했을 테니” 하고 농담을 하곤 했다. 오슨 웰스는 판타스틱했다. 프랑수아 트뤼포 감독도 마찬가지였다.
누벨바그의 아이콘으로 기억된다. 누벨바그와 당신의 관계는.
완전히 우연이었다. 당시 유럽엔 누벨바그 외에도 여러 운동들이 많았다. 예를 들어 1962년부터 63년까지 영국에서는 토니 리처드슨 등의 감독이 주도했던 앵그리 영맨 운동이 있었다. 개인적으로 나와 누벨바그의 관계는 완전히 우연이었다고 생각한다.
누군가 브리지트 바르도가 섹시함을, 카트린 드뉘브가 우아함을, 잔 모로는 지적인 여성성을 갖춘 여배우라고 평했다. 브리지트 바르도와 카트린 드뇌브, 그리고 당신을 비교해본다면.
프랑스를 대표하는 여배우 대열에서 난 빼달라. 대신 줄리엣 비노쉬가 있지 않은가? 그녀는 세계적인 스타가 될 것이다. 그리고 상드린 보네르가 있다. 아주 훌륭한 배우다. 그녀와 엘자 실베스타인을 기용해서 연극연출을 할 생각이다. 브리지트 바르도는 지적이고 아름다운 배우였다. 그녀는 절대 백치 미인이 아니다. 그녀는 우연히 배우가 되었고 그 삶을 그다지 즐기지 못했기 때문에 은퇴한 것뿐이다. 카트린 드뇌브는 지금 막 성숙미를 풍기기 시작했다. 영화는 세상의 거울이다. 드골과 미테랑을 비교할 수 있나? 그것과 마찬가지다.
당신의 대표작은 무엇이라고 생각하나. 어느 인터뷰에서 토니 리처드슨의 <마드모와젤>을 지목했던데.
<마드모와젤>이 대표작은 아니다. 그저 비평가들의 찬사를 받지는 못했지만 예외적인 작품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언급한 것이다. <마드모와젤>은 특별한 작품이라기보다 감정적이고 격정적인 작품이었다. 시인이자 게이인 장 주네가 각본을 썼고 나는 미천한 나무꾼과 사랑에 빠지는 가정교사 역할을 했다. 내 대표작이 무엇인지 아직도 모르겠다.
여전히 바쁘게 살고 있는 것 같다.
뉴욕에서 열린 나의 회고전에 참석했다가 곧바로 이곳으로 날아왔다. 그전에는 바스티유 극장에서 상연한 베르디의 오페라 <아틸라>를 <마그리트 뒤라스의 사랑>의 감독이기도 한 조세 다이얀과 공동연출하기도 했다. 물론 나는 과거에 많은 영화를 했고, 과거에 했던 영화를 사랑한다. 하지만 현재 나는 은퇴한 사람이 아니다. 나는 현재를 살고 있는 사람이고 지금의 나에겐 현재의 영화들이 더 중요하다.
배우에서 출발해서 감독으로 활동하고 있는데.
내가 감독을 하고 싶어서 제작자를 설득했다. 지금 준비하고 있는 신작은 몇년 전 만난 한 여성에게서 비롯된 프로젝트다. 배경은 아우슈비츠 수용소 바로 옆에 있는 베르크나우 수용소다. 나치 치하였던 당시 16살이 채 안 된 소녀였던 그 여성이 50년 뒤 수용소를 방문하는 것으로 시작한다. 그녀가 시나리오를 같이 쓰자고 제의했고, 자신이 배역을 맡겠다고 했다. 부산에서 파리로 돌아가는 대로 촬영장소를 헌팅해야 하고 2002년 5월엔 영화를 시작할 예정이다. 그 영화를 택한 건 저항과 용기, 생존에의 의지, 독재에의 저항에 대한 증언을 표출하고 싶었기 때문이다.
당신이 감독을 하겠다고 했을 때 유일하게 지지한 남자가 오슨 웰스였다고 들었다. 사실인가.
그렇지 않다. 트루포 역시 내가 감독하는 것에 흥미로워 했다. 그러나 그는 여자는 여자라고 생각하는 것 같았다. 여자가 어떻게 감독을 할 수 있는지 좀 미심쩍어하는 것 같았다. 반면 오슨 웰스는 나의 감독 일을 적극적으로 도와주었다. 감독에 관한 여러 지식을 내게 가르쳐준 사람이 바로 오슨 웰스이다.
당신처럼 되기를 꿈꾸는 여성들에게 한마디.
아주 어렸을 때부터 어른들이 너무 관습적 틀에 매여 있다는 생각은 했지만 사실 나는 저항적인 여성은 아니다. 나는 나 자신의 내면의 진리에 따라 움직인다. 나는 체질적으로 집단에 속하지 못하는 사람이다. 페미니스트였던 적도 없다. 각자 개인이 자신의 삶에 책임을 지고 성실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인간은 고독한 존재이기도 하고, 나는 고독을 받아들이는 편이다. 다만, 나는 운좋게 자유가 보장된 나라에서 태어나 자랐지만, 아직도 여성들이 고통받는 나라가 많은 것도 사실이다. 모든 인간은 능력이 다르기 때문에 평등할 수는 없다. 내가 원하는 건 그러므로 평등이 아니라, 각자의 차이를 인정할 수 있는 가능성이다.
인터뷰 이후에도 잔 모로의 일정은 빡빡했다. 여러 매체들과 인터뷰가줄줄이 이어졌고, 이날 오후 4시부터 잔 모로 특별전으로 <연인들> <쥴 앤 짐> <마그리트 뒤라스의 사랑>이 상영된 BEXCO에서 무대인사를 했다. 밤 9시 조금 넘어 시작된 관객과의 대화에서도 잔 모로는 재치있고 격의없는 태도로 관객을 사로잡았다. 맨 먼저 손을 번쩍 든 한 관객이 “질문을 하기 위해 손을 든 게 아니다. 개인적으로 좋아하는데 직접 뵙게 되어 영광이다. 이런 기회를 준 부산영화제에 감사를 표하기 위해 영화제 티셔츠를 샀다. 이걸 꼭 선물로 드리고 싶다”고 말하자, 잔 모로는 갑자기 무대에서 성큼 걸어내려와 티셔츠를 받으며 “메르시 보쿠(정말 고맙다)”라고 인사했다. 그녀가 계단을 내려오는 순간 환호와 박수가 터져나왔고, 잔 모로는 이후 질문자들에게도 일일이 가까이 다가가 대화를 나누었다. “사랑에 관한 영화에 많이 출연했는데, 사랑이란 무엇이라 생각하는가?” 한 여자 관객의 묻자, “사랑은 생각이 아니라 상태다. 사랑은 남녀간에만 있는 것이 아니라 여러분과 내가 만난 지금 이 자리에도 있다”고 답한 잔 모로는 질문한 관객을 포옹하고 볼에 키스까지 선사했다. 이 깜짝선물에 관객은 다시 한번 부러움 섞인 환호와 뜨거운 박수로 화답했다. 뒤쪽에 앉아 있어 질문에서 소외된 일부 관객이 앞으로 슬금 몰려들었다가 자원봉사자들의 철벽수비로 자리로 돌아가기도 했다. 잔 모로는 “자신을 실존주의자라 생각하는가”라는 좀 뜬금없는 질문에도 “아니, 나는 다만 존재할 뿐이다”라고 재치있게 받아넘겨 관객의 열띤 박수를 받는 등 좌중을 완전히 사로잡았다. 잔 모로는 다음날인 16일 오후 열린 허우샤오시엔 감독, 신상옥, 최은희씨와 함께 핸드프린팅 행사에 참여했고, 부산은 누벨바그의 여신을 영원한 추억으로 간직할 수 있게 됐다. 부산= 인터뷰 심영섭/ 영화평론가·정리 위정훈·사진 손홍주▶ 누벨바그의 여신, 배우 잔 모로 인터뷰
▶ 잔 모로의 연기인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