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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오스의 꽃이 피어나다
2001-11-16

장인의 세기와 영화청년의 패기가 뒤엉킨 <흑수선>을 말한다

배창호 감독이 시네마서비스와 손잡고 대작영화 <흑수선>을 만든다는 소식은 듣는 이들에게 일종의 설렘을 불러일으켰었다. 90년대부터 급격한 세대 단절을 겪고 있는 현실에서 80년대 한국영화 중흥의 기수였던 감독과 오늘날 영화산업의 견인차 역할을 하는 조직이 의기투합했다는 사실이 의미있게 여겨졌기 때문이었다.

한동안 주류 영화계와 적조한 관계에 있었음에도 최근작 <>을 통해 무뎌지기는커녕 한결 농익은 연출력의 묘미와 함께 독립영화 정신에 가까운 근성마저 보여주었던 감독이, 풍부한 물적 조건과 시스템까지 얻게 된다면 어떤 결과가 나올까? “작품성과 오락성을 겸비한 제대로 된 블록버스터”라는 홍보 문구나 부산영화제가 개막작으로 초청했다는 사실은 이 영화에 대한 기대감이 어떤 종류의 것이었는지를 반영한다.

<흑수선>이 첫 뚜껑을 연 부산 현장의 반응은 상당히 미묘하다. 그것은 ‘배창호의 모든 것이 여기에 있다’는 말로 요약됨직하다. 배창호적인 것의 실체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80년대 초반부터 시작되는 그의 영화적 궤적을 거슬러올라가야 할 것이다.

배창호 감독이 이장호 감독의 <바람불어 좋은 날>의 조감독으로 영화계에 입문한 1980년은 한국영화가 오랜 빈사상태에 놓여 있을 때였다. 1961년 5·16으로 조짐이 비롯되어 1979년 유신시대가 막을 내릴 때까지 질기게도 계속되었던 정치적 검열과 산업적 강제조치 때문이었다. 이런 상황에서 이장호가 재기하고 배창호가 등장한 것은 “그야말로 예언적인 그 무엇”(이효인, <한국의 영화감독 13인>)이었다.

데뷔작 <꼬방동네 사람들>(1982)은 ‘꼬방동네’라고 불리던 산비탈 달동네 살이의 고달픔과 인간적인 숨결을 신인답지 않은 솜씨로 구축함으로써, 배창호를 단숨에 예술과 흥행의 두 마리 토끼를 쫓는 야심찬 젊은 감독으로 위치시켰다. “한국영화에 대한 관객의 철저한 불신을 허물어뜨리려 했다”는 감독의 의도는 멋지게 적중했다. 이어서 발표한 <적도의 꽃>(1983)에서는 아파트에서 망원경으로 여자를 훔쳐보는 남자를 통해 현대 도시인의 구겨진 내면과 일상을 표현했다.

배창호의 흥행 신화를 결정적으로 만들어준 <고래사냥>(1984)은 기이한 걸인과 소심한 대학생, 창녀촌에 추락한 천사 같은 여성이 고통과 위선으로 가득 찬 도시를 떠나 낭만과 힘의 상징인 고래를 찾아가는 호쾌한 로드무비였다. 같은 해에 나온 <깊고 푸른 밤>은 미국 대사관 앞에 아침부터 줄지어 서 있는 한국인들이 미국에 대해 갖고 있는 꿈의 실체가 무엇인지에 대해 할리우드풍의 드라마 기교와 스타일로써 질문했다. 한꺼번에 세 작품을 발표하면서 동시에 연속적인 흥행 경신을 이룩한 1984년은 배창호 스스로 “성취욕과 오만으로 들떠 있었다”고 회고할 만큼 눈부신 해였다.

이 시기 동안 배창호는 내러티브의 개연성, 현대적인 스타일, 소재의 동시대성과 도시 감각 등을 통해 정체되어 있던 한국영화를 일신시켰다. “흥행에 성공해서 시장을 활성화하는 데 일조를 했고, 나의 개인적인 이력이 영화를 꿈꾸는 젊은이들에게 용기를 주었을 것”이라는 자평은 결코 과장이 아니다. 특히 이같은 성과가 오늘날과 같은 산업 시스템의 정비를 바탕으로 한 것이 아니라 한 작가의 위력으로부터 비롯되었다는 사실은 기념비적이라고 해도 좋을 것이다.

1986년 작 <황진이>는 배창호의 제2기를 선언하는 작품이었다. 자신의 영화 이력을 자성하면서 영화와 삶의 본성이 무엇인지에 대해 고통스럽게 질문한 배창호는 자신의 맥박과 호흡이 이끄는 대로의 영화, 형식과 내용이 서로 조응하는 것으로서의 영화, 우리의 참모습을 비추는 거울로서의 영화가 되어야 한다는 답을 내렸다. <황진이>는 형식에 대한 감독의 자의식이 눈길을 끌었다. 그뒤 배창호는 여성을 삶의 목적으로 삼는 남자의 지순한 고백과 사랑의 환희를 낭만적인 스타일로 그린 <기쁜 우리 젊은 날>(1987), 뇌성마비 장애인의 꿈같은 외출을 다정다감하게 그린 <안녕하세요 하나님>(1987) 등 사랑스럽고 착한 영화를 연달아 발표했다.

깊은 인간애 지닌 테크니션

그뒤로 배창호의 필모그래피는 조금씩 간격이 넓어진다. 아름다움의 이데아와 삶의 허무적인 본질을 신화적으로 엮은 <꿈>(1990), 지상의 천국을 질문하는 <천국의 계단>(1992), 90년대의 젊은 감성에 접근하려는 <젊은 남자>(1994), 자전적이고 현실적이면서도 배창호의 순정한 여성관이 그대로 드러나는 <러브 스토리>(1996), 점점 희미해져가는 한국적인 감성과 정조를 예민하게 포착한 <>(2000)이 배창호 연출 경력의 두 번째 10년을 이룬다.

이러한 여정을 통해 배창호는 자신만의 몇 가지 지표를 드러냈다. 우선 그는 우직할 정도로 인간을 사랑하고 또 그 사랑을 신뢰한다. 80년대에 12편의 작품을 함께했고 이번 <흑수선>에서 다시 감동적으로 재회한 배우 안성기는 배창호의 가장 큰 특징을 “사람에 대한 사랑, 설혹 악인일지라도 따뜻한 시선을 보내는 것”이라고 꼽으면서, “영화를 사랑하고 함께 만들고 함께 죽어갈 친구로서 그런 시각이 변치 않고 유지되기를 바란다”며 지극한 애정을 피력했다.

배창호는 또한 그와 같이 낙관적인 인생관을 스타일화할 수 있는 테크닉을 가지고 있다. 양자가 행복하게 조우하는 경우도 있고, 작위적인 조형성이 튀어나오거나 곰삭지 못한 여린 인생관이 두드러져 보이는 경우도 있었지만, 카메라만을 가지고 인간과 공간과 사물의 감성을 그려낼 수 있는 장인적 솜씨는 오늘날의 한국영화계에서 흔치 않은 연출력이다.

배창호의 세 번째 10년을 여는 작품 <흑수선>이 여러 가지 의미에서 앞 시대의 배창호가 보여준 것들을 고스란히 지니고 있다는 사실은 흥미롭기도 하고 깊은 생각을 요하는 대목이기도 하다. 결론을 미리 당겨 말한다면 배창호는 온 길보다 갈 길이 많은 ‘젊은’ 감독인 것 같다.

이 영화의 역사적인 배경을 설명하는 두 단락의 감상적인 자막이 다소 의아한 느낌을 불러일으키지만 이내 두 종류의 서로 다른 이미지가 주는 임팩트가 이어진다. 화려하지만 부서질 듯한 느낌을 주는 이미지와 어둡고 감정이 풍부한 이미지들이 교대하는 가운데, 아찔하도록 현란한 순간들이 간헐적으로 등장한다.

예컨대 의문의 킬러로부터 형사가 살해당하는 밤바다의 해안선은 에드바르트 뭉크의 그림 <절규>를 연상시킬 만큼 밀도 높은 긴장감을 전달한다. 4배속의 슬로모션을 사용하고 필름의 은입자로 채도를 조절한 포로들의 탈출장면의 경우에는 한 공간, 한 순간 안에 삶과 죽음의 경계선이 공존하던 거제도 포로수용소의 의미를 화려하게 전달한다. 오 형사가 눈에 보이지 않는 킬러와 대립하는 대숲의 결투 역시 360도 스테디 캠이 인간을 에워싼 정체불명의 불안을 표현한다는 것을 예증한 회심의 장면이다.

이 영화에서 시공간의 기본 축을 이루는 것은 이념이 사라져버린 메트로폴리스 서울과 이념의 폭발장이었던 1952년의 거제도 포로수용소다. 낡은 사진, 손전등, 목각인형, 일기장과 같은 소도구들이 50년 전의 역사적 시공간과 현재를 교차시키는 존재 전이의 구멍으로 작용한다. 그러나 도구가 너무나 많은 것을 떠맡을 때에는 도구가 무너지고 영화도 무너지는 느낌을 받게 된다. 예컨대 명백히 사후기록적인 톤의 일기장이 드라마 장치로서 적절했는지에 대해서 확신하기 어렵다.

공간적으로는 이색적인 각도에서 바라본 서울역, 담양의 대나무숲, 해남의 두륜산, 화엄사, 서대문 형무소, 구 벨기에 대사관, 일본 미야자키현 등을 종횡무진한다. 그러나 거제도 포로수용소라는 장소가 갖는 역사적 의미에 주의를 기울이도록 유도된 상태에서, 엄밀한 고증에도 불구하고 역사적인 장소들이 그 역사성을 풍요롭게 드러내지 못하고 탐미적인 연출과 사랑의 감정에 소요될 때 그 공간의 의미는 무엇인가라는 회의에 빠지게 될지도 모른다. 미야자키에서의 장면 역시 관광명소처럼 보이는 로케이션 때문에 감정몰입에 도움을 주지 못하는 것 같다. 감독과 배우가 공히 50년의 시차를 빈번하게 교차하는 시간적 특성을 이 영화의 가장 큰 난점으로 꼽았는데, 주요 배역진의 연기가 그 난점을 돌파하는 힘을 전해주지 않는 것도 단순히 분장상의 난점으로 돌리기에는 석연치 않다.

두마리 토끼를 쫓은 <흑수선>

이 영화가 빈번하게 채용하는 전형적인 요소들 때문에 심심해하고 있을 무렵이 되면 “혼자 두는 바둑은 재미없어. 앞 수를 내가 다 아니까”라는 대사가 나온다. 재미있는 대사였다. 이를테면 유능하지만 범죄자보다 더 거친 젊은 형사와 경험 많은 상사가 사사건건 대립하는 가운데 결국 상사가 관용을 베풀고 젊은 형사는 승리인지 패배인지 분간할 수 없는 성취를 거둔다는 구성이 할리우드 경찰영화의 도식이라면, 맹목적인 투쟁성, 강간과 즉결 처형도 서슴지 않는 폭력성, 패배감과 분열, 혼란과 배신 등으로 점철된 좌파 이미지는 <피아골>(1955) 이래 반복되는 반공영화의 도식이다. 젊은 관객에게 보여줄 수 있는 스펙터클과 나이든 세대가 공감할 만한 주제의식을 둘 다 잡겠다는 의지가 강박관념으로 작용한 것은 아닐까.

그렇다면 <흑수선>은 무엇을 남겼을까. 기자회견의 분위기를 종합해보면 이 영화는 시나리오나 연기 톤, 프로덕션 과정에 이르기까지 배창호 감독 자신이 진두지휘하고 최종 결정한 것으로 보인다. 50여년이나 지난 뒤에 의문의 연쇄살인사건을 일으키고, 죽은 연인의 손가락에 금반지를 되돌려주며 울부짖는 우직한 사랑의 힘이야말로 역사의 생지옥조차도 넘어서는 원동력이었다고 말하는 주제는 두말할 나위도 없이 배창호 감독의 선택이었을 것이다. 누룽지를 나눠먹는 장면이나 포도즙을 짜서 연인에게 주는 장면 등은 지극히 배창호적인 에피소드로 보인다. 또한 카메라를 가지고 어떤 정서적 효과를 만들어낼 수 있는지를 정확히 알고 있는 달인의 경지도 배창호의 것이다.

그러나 배창호의 애정관과 인간관이 이토록 길고도 복잡한 역사로까지 고스란히 확장된 상태에서 ‘배창호적인 모든 것’들은 이질적인 채로 한데 엉겨 웅성거린다. 드라마 구성의 난항이 그대로 방치된 이유는 프로듀서에게 질문해야 할지도 모른다. 배창호 감독이 유능한 흥행사, 재능있는 테크니션, 따뜻한 인간이라는 개별 요소들을 진정한 거장의 숨결과 솜씨로 통합해가는 모습은 미래의 기대와 즐거움으로 남겨둬야 할 것 같다. 그런 기대를 아무한테나 걸 수 있진 않을 것이다. 배창호 감독에게는 그러고 싶다.

김소희/ 영화평론가 [email protected]▶ 장인의 세기와 영화청년의 패기가 뒤엉킨 <흑수선>을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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