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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이너리그 없으면 한국영화 미래없다”
2001-11-16

비주류 영화만의 배급 시스템 마련 위한 제작 · 배급업자 3인의 난상토론 (2)

씨네21: 김소영 교수와 김혜준 실장이 <씨네21>에 기고한 글에서 최소상영일수 보장 등 몇 가지 제안을 했다. 그들의 제안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는가.

⇒ 이: <와이키키…> 하면서 핵심적으로 생각했던 문제가 최소상영일수 보장이다. <고양이…>도 같을 거다. 관객이 좋아하는데 보여주고 싶은 거다. 극장에 부탁하면서 3, 4주를 간신히 끌고 가는데 이 극장, 저 극장 끌고 다니는 것도 미안한 일이다. 할 수 없이 우리는 극장을 대관하는 생각까지 했지만, 어떤 영화든 상영일수를 보장해 영화만드는 사람에게 기회를 주고 관객에게도 선택권을 줘야 한다는 김소영 교수 주장에 공감한다. 그러나 더욱 중요한 것은 지역별로 내가 기다린 영화를 어디에 가면 볼 수 있는지 정보가 있다면 일주일만 최소상영이 보장되어도 그 안에 정보를 전달하고 나름의 시장 경쟁력을 검증받을 기회를 갖게 된다.

⇒ 최: 최소상영일수가 법제화되면 극장에서도 스크린쿼터처럼 지키긴 할 것이다. 그러나 조금 안일한 발상 같은 생각이 든다. 김소영 교수나 김혜준 실장의 주장의 전제는 모두 공감한다. 다만 대안의 현실성, 가능성은 또다른 고민의 과제다.

⇒ 이: <섬> <와이키키…>를 하고 나서는 솔직히 포기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이건 나라가 할 일이지 내가 왜 했나 하면서. (웃음) 오늘 대화를 나누면서 기분 좋은 것은 이야기해보니까 장(場)만 마련되면 시장의 규칙 안에서 얼마간의 지원과 함께 변화의 첫발을 뗄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예컨대 <고양이…> 같은 영화가 스무편 있고 오기민PD 같은 제작자가 스무명 있어서 영화가 만들어지고 메이저영화만 받던 극장들이 점유율이 떨어져 씨네큐브 같은 극장들로 엮인 체인에 들어오는 상황을 상상할 수 있는 것이다. 문제는 초기에 누가 고양이 목에 방울을 달 것인가다. 방울을 다는 법에 대해 연구한다면 그리 오래지 않아 스크린쿼터 운동에 이어, 스크린쿼터 운동에서 우리가 추구했던 가치로 다시 돌아가는 움직임을 만들 수 있지 않을까.

⇒ 오: 지금 패배를 맛본 네편의 영화를 제작한 회사와 감독들부터 시작해야 할 의무가 있다. 거기에 배급개선위원회, 영진위 정책실 등이 더해지면 개선을 위한 모임이 이뤄질 수 있다. ‘고양이 살리기 운동’은 관객을 얼마 더 동원하자는 게 아니라 결국 그런 일을 하자는 것이다. 어떤 이름과 형태로든- 가령 영화인회의에서 특위를 만들던가- 바로 이 시점부터 실천이 있어야 할 것 같다.

⇒ 이: <고양이…> <와이키키…>를 사랑하는 관객 모임도 동참할 수 있겠다.

⇒ 최: 영진위가 ‘판돈’을 걸어 판을 키운 것이 투자조합이 많아진 배경이다. 이제는 판이 커졌으니 적당히 돈을 패서 다른 판 차리기를 촉발하는 기능을 할 수 있을 것이다. 나름대로 업계 내에서 해결책을 생각하면서.

⇒ 이: 김혜준 실장의 제언에도 있듯 영진위도 이제는 지원의 방향성을 설정하고 그냥 투자조합이 아니라 다양한 영화의 동기를 유발해야 한다는 의견들이다. 가장 좋은 것은 관객이 요구하고 업계가 능동적으로 어떤 변화를 모색할 때 약간의 힘을 실어주는 것이다. 만약 업계의 자구 노력없이 그냥 손을 놓아버린다면, 그러니까 나는 <후아유>, 오 대표는 <내 생에 꼭 하루뿐일 특별한 날>에 전념하고 최 이사도 메이저영화만 한다면, 평론가들은 한국영화 죽었다 정부는 뭐 하냐 예술영화 만들고 전용관 잡아라 성토할 것이고 감독들은 나랏돈 받아 영화를 찍기 시작하겠지. 그러면 시장은 시장대로 가고, ‘새마을영화’ 같은 영화들은 따로 가다가 일본처럼 덜컥 시장이 망가질 수도 있다. 지금 우리는 그렇게 가지 않는 길을 상의하고 있는 셈이다.

⇒ 최: 가능성 있는 배급 대안으로 돌아가서, 극장망을 형성하는 데에는 방법이 몇 가지 있을 거다. 전문 극장 체인을 만드는 방법, 전문 배급사를 만드는 방법, 또 기존 극장들이 존재하는 상태에서 전문 배급사 또는 일반 배급사가 몇개 극장을 묶는 방법이 있을 수 있다. 그중 우선 전용극장, 전문 배급사 설립은 시기적으로 모험이라고 본다. 색깔을 드러내는 것 자체가 현실적으로 시장에서 불리할 수 있다. 전문 배급사를 만드는 것도 겉으로는 멋있을지 몰라도 생존에서 불리하다.

⇒ 오: 나는 좀 반대다. 예컨대 홍상수 감독의 영화는 포복절도할 코미디이거나 하진 않지만 7만에서 10만명 사이의 관객이 특정한 질의 내용을 기대하고 극장을 찾는다. 홍상수 영화라는 브랜드가 어떤 지원도 없이 상업영화 시장 내에서 자기 시장을 구축한 거다. 그런 맥락에서 색깔을 명확히 하는 것은 고유한 시장을 만들어내는 데 도움이 된다고 본다. 이광모 감독의 경우 혼자 희생하며 버거운 짐을 졌지만 모두가 같이하며 색깔을 만드는 일은 다르리라고 본다. 물론 초기에는 매우 힘겨울 테지만.

⇒ 최: 전용관의 경우 1년치 물량이 모자라면 다른 영화를 걸 수밖에 없다. 내 논지는 배급사가 혼용 배급을 하면서 자연스럽게 영화들이 모이고 정체성 있는 부문을 형성할 수 있다는 것이다. 예를 들면 시네마서비스가 지금 하고 있는 영화에 저예산 영화를 포함하거나 배급 대행을 하는 방식을 할 수도 있다. 메이저 영화들을 트는 일반 극장에서도 특정 저예산 영화를 상영할 수 있는 거다. 그런 식으로 배급되는 영화 편수가 늘어나면 영화끼리 묶이고 정체성이 드러날 것이다.

⇒ 오: 그러나 배급사, 극장의 색깔을 공개적으로 표방하는 것은 관객과의 커뮤니케이션이고 대외적 인식의 문제다. 일반적인 배급과 섞어서 간다는 건 수세적인 것 같다.

⇒ 최: (저예산이나 예술영화 전문이라고) 표방을 해야지 지원책의 혜택을 받아도 받을 것이다. 하지만 그럴 경우 비용 부담이 클 것을 예상해야 한다. 1년 물량을 예술영화만 정해놓고 배급했을 때 그 전문 배급사가 유지될 수 있는 조건도 보장해야 하는데 시작부터 너무 과한 부담과 예측 못할 상황을 무릅써야 한다는 뜻이다. 지금 시점의 조건으로는 <고양이…>나 <와이키키…>를 뜻대로, 몇개관에 몇주간 어떤 부율로 풀 것인가의 전략을 관철할 능력을 지닌 것은 역시 직배사나 CJ 같은 메이저 배급사다.

⇒ 오: 멀티플렉스에 대한 강제도 필요하다고 본다. 멀티플렉스가 처음 만들어졌을 때 다양한 영화를 볼 수 있다는 취지를 내세웠다. 적어도 몇개관 이상일 경우 의무적으로 저예산영화 상영관을 마련하고 지원을 하게 해야 한다.

씨네21: 여러 가지 대안이 나왔는데, 강조하고 싶은 얘기를 한마디씩 하는 걸로 끝맺도록 하자.

⇒ 이: 우리는 멀티플렉스의 환상에서 철저하고도 완전하게 탈피해야 한다. 지금 상황이 절망적이라면 그건 멀티플렉스 때문이다. 최 이사 말대로 현실적으로는 여러 형태가 공존할 수밖에 없다. 당장 노선을 표방하기보다 각 극장과 협상해 부율을 조정하고 현실적으로 타진해야 한다. 개인적으로 이번 좌담은 유통, 극장의 형태에 관해 아이디어들을 꺼내 펼쳐보았다는 점에서 유익했다. 공론화의 첫걸음이라는 의미도 있겠다.

⇒ 최: 배급을 하면서 1, 2년 사이 한국영화와 미국영화의 판세가 급격히 역전되는 것을 경험했다. 한국영화 산업의 현실이 미리 진단돼 대안영화나 작가영화가 좀더 효율적으로 배급되고 좋은 결과를 얻지 못한 점에 안타까움을 느낀다. 지금이라도 변화를 일으켜야 한다는 여론이 형성되어 반갑다.

⇒ 오: 다양한 영화, 다양한 영화 보는 방식이 존재하듯 영화를 유통시키는 방식도 그만큼 다양해야 한다는 점을 다시 강조하고 싶다. 파편적으로 제기되던 문제들이 본격적으로 수면 위로 떠오른 만큼 지금은 더이상 논의를 미룰 수 없는 시점이 아닌가 싶다.

정리 남동철 [email protected]·김혜리 [email protected]·사진 정진환 [email protected]▶ 비주류 영화만의 배급 시스템 마련 위한 제작 · 배급업자 3인의 난상토론 (1)

▶ 비주류 영화만의 배급 시스템 마련 위한 제작 · 배급업자 3인의 난상토론 (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