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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혁명을 생각하면 섹스가 하고 싶다”
2001-11-16

70살에 한국 찾은 전설적 괴감독 두샨 마카베예프 (2)

최고작 <WR: 유기체의 신비>, 그리고 급강하

마카베예프적 세계의 와해의 조짐은 대략 그의 최고작이랄 수 있는 <WR…> 발표 이후에 나타나기 시작했다고 보면 될 것 같다. 빌헬름 라이히를 빌려 세계 혁명(World Revolution)을 꿈꾸는 이 영화는 섹스와 관련된 노골적이고 선정적인 장면도 장면이지만 무엇보다도 사회주의 사회를 보는 ‘불순한’ 시각 때문에 더 유고 정부로부터 미움을 산 것으로 보인다. 라이히에 대한 기록 필름과 미국의 대담한 성문화를 그린 단면들 사이로 유고사회를 배경으로 벌어지는 허구적 멜로드라마가 단편적(斷片的)으로 전개된다. “프리섹스 없는 공산주의는 무덤”이라고 부르짖는 유고 여성 밀레나는 잘생긴 소련인 스케이트 선수인 블라디미르 일리치를 유혹하려 한다. 그러나 라이히식으로 말하면 ‘성적으로 질병을 앓고 있는’(자신의 욕망에 대해 두려워하는) 보수적인 인물인 블라디미르는 밀레나의 유혹을 자꾸 거부한다. 결국 두 사람은 성적인 합일에 이르고 그뒤 자신에 대한 모멸감에 사로잡혀 광분한 블라디미르는 스케이트로 밀레나의 목을 잘라버린다. 영화의 마지막 장면, 시체 검시소에서 머리가 잘린 밀레나는 갑자기 눈을 뜨고서 소리친다. “블라디미르는 고상하게 충동적이고 야심이 크고 굉장한 에너지를 가진 남자다. 그는 낭만주의자요, 금욕주의자이며, 말 그대로 빨갱이 파시스트다… 동지들이여! 지금도 나는 공산주의자로서의 내 과거가 부끄럽지 않다!”

많은 평자들에 의해 <WR…>은 성적으로 해방된 진정한 공산주의자 밀레나가 성적으로 미숙하고 억압적인 레드 파시스트 블라디미르에 의해 짓밟힌다는 이야기로 해석되었다. 유고 정부의 시각도 별반 다르지 않았을 것이다. 정부는 이데올로기적으로 해로운 영화라며 이 영화의 자국 상영 금지 처분을 내렸고 마카베예프는 공산당에서 축출당했다. 이후 마카베예프는 타국을 떠돌면서 영화를 만드는 유랑자 신세가 되었다. <WR…>이 전체주의적 의식에 대한 시험과 같은 영화인 것은 분명하지만 사실 밀레나와 블라디미르 사이의 관계가 해방과 억압, 그러니까 일방적인 선과 악의 대결 구도로 설정되어 있지는 않다. 예컨대 만인을 위한 프리섹스를 부르짖는 밀레나는 어떤 면에서는 정치적 슬로건으로 인민들을 열뜨게 만들었던 선동가와 닮은 면이 있다. 그리고 그녀의 죽음은 그녀가 성적 에너지를 너무 과하게 발산했기 때문에 자초한 것으로도 볼 수 있다. 한편 레닌의 본명인 블라디미르 일리치 울리야노프로부터 이름을 따온 블라디미르는 단순히 미숙한 공산주의 사회의 대표자 격만은 아닌 인물이다. 그에게는 레닌의 긍정적인 측면과 스탈린의 부정적인 측면이 공존하고 있다. 그래서 스탈린적인 측면이 밖으로 드러나면서 그는 밀레나를 살해하지만 그뒤엔 레닌적 측면이 그를 지배하면서 사랑과 평화, 만족을 표현하는 노래를 부른다).

<WR…> 이후 고향을 떠나 캐나다와 유럽에서 촬영한 <스위트 무비>는 마카베예프적 도발성과 음란성의 정점을 보여준다고 할 만한 영화다. 영화는 서로 다른 사회체제 출신인 두 여성의 성적 오디세이를 병행해서 보여준다. ‘미스 버지니티(Virginity) 월드 콘테스트’에서 영광의 대상(?)을 수상한 캐롤은 그 대가로 텍사스의 억만장자와 결혼을 하게 되는 행운을 얻는다. 그러나 신랑의 황금을 입힌 성기에 아연실색한 캐롤은 그로부터 벗어나 성적인 착취와 잠깐 동안의 희열을 동반하는 이상한 여행에 몸을 싣는다. 한편 또다른 주인공인 안나는 칼 마르크스의 얼굴이 크게 그려진, ‘서바이벌’이란 이름을 가진 배를 타고 암스테르담 운하를 따라 여행한다. 그렇게 방랑하는 유혹적인 여인 안나와의 애정에 동참하는 이들은 어김없이 그녀에게 죽임을 감수해야만 한다.

<스위트 무비>는 꼬리에 꼬리를 무는 성적 기행(奇行)들을 통해 진정한 (성적) 혁명을 이루지 못한 사회에 대한 비판과 그로 인한 깊은 좌절감을 이야기하는 영화다. 하지만 표현의 과도함이 그런 정치적 배음들을 묻어버린 ‘실패한 영화’이기도 하다. 많은 사람들은 이 영화가 가리키는 후면에 도사린 정치적 메시지보다 유아 성욕, 배변 행위, 성기에 대한 이상한 집착, 죽음에 이르는 사랑 등을 ‘불필요하게’(!) 적나라하게 드러내는 방식부터 보았고 그것에 대해 비난을 퍼부었다. 결국 영화는 상업적으로도 또 비평적으로도 실패를 맛보았다. 이후의 마카베예프에 대해 이야기한다는 것은 씁쓸한 감회를 동반한다.

힘빠진 조롱, 쇠락 ‘<WR…> 이후’(‘<스위트 무비> 이후’라고 말할 수도 있겠다) 마카베예프의 필모그래피는 더이상의 혁신은커녕 성숙도 보여주지 못하는, 지친 표정이 역력한 범작들로 채워져 있으니까 말이다. <스위트 무비> 이후 거의 7년 만에 스칸디나비아에서 만든 <몬테네그로>는 일종의 무질서한 활력을 상실한 마카베예프 후기 영화의 출발점에 해당할 듯하다. 이 영화에서 마카베예프는 콜라주 형식을 걷어내고 아주 표준적인 선형적 스토리텔링 방식을 빌려 스웨덴에서 풍요로움에 지친 삶을 살고 있는 한 가정주부의 이야기를 들려준다. 영화는 형식적 혁신만 없는 것이 아니라 이야기가 들려주는 신랄한 맛도 없다. 이 영화는 전율을 주지 못하는 가벼운 재미만을 줄 뿐이다. 다른 영화들도 마찬가지이다. 그것들은 어떤 면에서는 꽤 재미있는 영화들이긴 하지만 그 재미란 다른 감독들이 만들어도 될 만한 범용한 재미였다. 그 영화들에도 여전히 시스템, 또는 체제적인 것에 대한 조롱이 섞여 있지만 형식의 급진성을 잃어버린 그것은 다소 힘빠지는 조롱 정도였을 뿐이다.

세계 무대에 등장했을 초창기만 해도 확실히 마카베예프는 새로운 영화를 만들어나갈 것이라는 기대를 한몸에 맞았다. 많은 평론가들은 그를 고다르에 자주 비견했다. 심지어 어떤 평자들은 그를 두고 고다르의 영향을 받았으면서도 그를 뛰어넘은 유일한 감독이라고 격앙된 코멘트를 던지기도 했다. <> 하지만 그뒤 약 30년 넘게 두 감독의 행보를 모두 지켜본 지금, >>둘을 비슷한 반열에 놓는<< 그런 어리석은 평가를 과감하게 내릴 평자는 없을 것이다.

마카베예프는 자신의 고향, 그러니까 지리적인 의미로는 유고슬라비아, 그리고 세대-문화적인 의미로서는 ‘60년대’의 정신으로부터 벗어나서는 안타깝게도 추락의 길을 걷고 말았다(<<미국의 저명한 에세이스트이자 영화평론가이며 또 마카베예프와는 개인적인 친분도 있었다는 필립 로페이트는 ‘60년대’에 속했던 인물, 그리고 그 시대의 에너지를 70년대 초까지 끌고 왔던 인물로 본다>>). 그리고 아직까지 그는 노성(老成)한 시네아스트가 되진 못했다. 홍성남/영화평론가 [email protected]

필모그래피

1965년 <남자는 새가 아니다>(Covek Nije Tica/ Man Is Not a Bird)

1967년 <정사 또는 전화 교환원 실종 사건>(Ljubavni slucaj ili tragedija sluzbenice P. T. T./ Love Affair: or the Case of the Missing Switchboard Operator)

1968년 <보호받지 못한 순수함>(Nevinost bez Zastite/ Innocence Unprotected)

1971년 <WR: 유기체의 신비>(W. R. - Misterije organizma/ WR: Mysteries of the Organism)

1974년 <스위트 무비>(Sweet Movie)

1981년 <몬테네그로>(Montenegro)

1985년 <코카콜라 키드>(Coca-Cola Kid)

1988년 <매니페스토>(Manifesto)

1993년 <정오에 목욕하는 고릴라>(Gorila se kupa u podne/ Gorilla Bathes at Noon)▶ 두샨 마카베예프, 성과 혁명의 게릴라(1)

▶ 두샨 마카베예프, 성과 혁명의 게릴라(2)

▶ 마카베예프가 말하는 마카베예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