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와이키키 브라더스>의 임순례 감독과 <수취인불명> 김기덕 감독. 언뜻 별 연결고리가 없어 보이는 두 감독은, 사실 꽤 많은 고리를 공유하고 있다. 이들의 시선을 좇다보면, 야간업소를 전전하는 30대의 삼류밴드와 기지촌을 배회하는 혼혈아의 거리가 그리 멀지 않음을 발견하게 되니까. 소박한 리얼리즘과 회화적인 이미지라는 화술은 달랐다해도, 이들이 그려내는 그림은 늘 소외된 인간군상의 초상으로 닮아 있는 것이다. 또한 주류의 틈새를 비집고 카메라를 들이댄 이들의 영화는, 대규모 자본이나 스타시스템과 같은 주류 영화의 공식에서도 같이 한발 비껴나 있다. 작더라도 제 목소리가 담긴 영화, 시장의 질서에 쉽게 갇히기보다는 그들만의 시선을 보여주고자 하는 영화 만들기의 자세가, 이들이 만날 수 있는 또 하나의 지점이다. <와이키키 브라더스>의 개봉이 다가온 10월 네쨋주의 첫날, 성북동의 한 고풍스런 한옥 찻집에서 두 감독을 만났다. 아껴둔 이야기로 2번째 영화를 마친 임순례 감독과 늘 넘쳐난다는 이야기로 벌써 7편째 영화를 끝낸 김기덕 감독. 96년 <세친구>와 <악어>라는 출발의 기억부터 서로의 영화와 영화를 키워가는 토양에 대한 고민을 나누는 동안, 시침은 네 바퀴째 원을 그리고 있었다.
김기덕(이하 김) >>> 만나서 반갑네요. 지난번에 서점 앞에서 우연히 만났었는데…. 임순례(이하 임) >>> 전 명필름 사무실에서도 자주 뵈었어요. 김 감독님 가방 메고 왔다갔다 하실 때. 그러고보니 시간이 진짜 빠르네요. <와이키키 브라더스>는 사실 3월 말에 완성했거든요. 7개월이면 김기덕 감독님이 영화 한편 만드는 시간인데…. 김 >>> 저하고 똑같이 찍었죠. 촬영은 <수취인불명>과 거의 비슷하게 끝났으니까. 임 >>> 그렇죠. 근데 <수취인불명>은 개봉도 이미 했고, 그 다음 영화까지 다 만든 기간이니까…. 사실 엄청난 시간이죠. 그러고보니 데뷔는 제가 김 감독님과 같은 해에 했는데, 개봉도 아마 비슷하게 했을 거예요. 11월 정도였는데. 김 >>> 예, 맞아요. 그때 같이 리뷰가 올라왔으니까.임 >>> 근데 지금 <나쁜 남자>가 7번째 영화니까…. 김 >>> 송구스럽습니다. (웃음)임 >>> 전 <와이키키…>가 두 번째 영화니까 벌써 3배수가 넘는 거네요.
김기덕 영화는 살벌하고,임순례 영화는 따뜻하다?
김 >>> 전 <와이키키…>를 전주영화제에서 봤어요. 굉장히 좋았고, 특히 인상에 남는 게, 제가 벗은 걸 좋아하는 건지는 모르지만 (웃음) 아이들이 발가벗고 해변을 뛰는 장면이 굉장히 인상적이었요. 가장 뭉클하고 고통스럽게 봤던 장면은 룸살롱에서 같이 발가벗고 기타를 쳐야만 하는 부분. 그게 더 나아가지도 못하고 물러서지도 못하고 살아야 하는, 스스로 쓰러져서도 안 되는 우리의 삶이 아니었을까. 앞에 지난한 장면들이 거기서 모여 굉장히 충격을 줬던 거 같아요. 임 감독님이 즐기자고 룸살롱에 가 봤을 리는 만무한데. 임 >>> 한번 가봤어요. 누가 대접하는 자리에 끼어서 갔는데, 제가, 여자가 있어선지 그 자리에 여자들이 있긴 했지만 심하게 놀거나 그러진 않았어요. 그냥 술 마시고 얘기하고 그런 정도. 사실은 밴드를 취재하면서 얘기를 들은 거예요. 대구에서 한 30년간 밴드하던 사람이 밴드를 그만둔 계기가 있었는데, 영화에 묘사된 거에 한 10배 심한 광경을 목격하게 됐나봐요. 그래서 도저히 못해먹겠다며 밴드 생활을 청산했다는데, 그걸 수위를 많이 조절해서 표현했죠.
김 >>> 그 장면이 영화에서는 가장 뭔가를 많이 잃어버린 이미지로서 상당히 중요한 장면 아니었을까, 전 그렇게 봤어요. 저도 관찰자로 갔고, 뭐 그 안에서 즐기는 이중성을 갖기도 하는데, 정말 그보다 더 심하고 모욕적인 한국사회의 단면들이 사실 많아요. 근데 <세친구>나 이 영화나 배우들이 굉장히 다큐멘터리적인 인물 연기를 하고 있다는 게 좋았어요. 그런 걸 연기로 끌어내는 데 뛰어나신 것 같아요. 진짜 인물 같은 사람들.
임 >>> 배우는 사실, <세친구>나 <우중산책> 할 때는 제가 고집한 거였거든요. 특히 우리나라는 스타가 가진 스펙트럼이 굉장히 좁잖아요. 변형이 안 되거든요. 우리나라 스타들은 자기 이미지의 스펙트럼이 좁아서, 알려진 이미지말고 다른 것을 뽑아내기 상당히 어려울 것이라는 선입견이 있었어요. 그래서 <우중산책>이나 <세친구>에서는, 정말 우리가 탁 문 열고 나가면 골목에서 만날 것 같은 얼굴이었으면 좋겠다는 컨셉에 따라 아마추어 연기자들을 고집했던 거고. 근데 <세친구> 끝나고 그 생각을 버렸어요. 다 장단점이 있더라고요. 아마추어 연기자들도 단점이 있고, 스타에게도 관객과의 친화력이라는 장점이 있고. 그래서 <와이키키…> 때는 스타를 굳이 배제할 필요는 없다고 생각했어요. 명필름에서 시나리오를 누구누구 줘보자고 했을 때도 반대하지 않았는데, 알다시피 스타층이 굉장히 좁잖아요. 스타들이 작품을 고르는 것도 그렇죠. 대박이 터질 영화, 이슈가 될 만한 영화 아니면 하지 않고. 감독이 다른 컬러를 원했을 때, 예를 들어 한석규가 김기덕 감독의 영화에 나온다고 하면 다른 면이 분명히 보여진다고 생각하거든요. 그렇게 되면 배우의 스펙트럼도 넓힐 수 있는 거고, 관객도 한석규의 다른 면을 볼 수 있는데, 우리나라 배우들은 그런 모험을 잘 안 해요.
김 >>> 전에 한석규가 어느 인터뷰에선가 정말 지독한 악역을 해보고 싶다고 했어요. 몇몇 배우들이 계속 그런 인터뷰를 했거든요? <나쁜 남자>는 정말 지독한 악역인데도 뭐, 안 하던 걸요? (일동 폭소) 제 경우에는 그게 고집이라기보단 안 되는 거죠. 유지태가 <리베라 메> 찍을 때도 <수취인불명> 시나리오를 직접 갖다 줬는데, 연락도 없고, 기다리는 것도 자존심 상하고 그래서 신인으로 가자, 그랬죠. 예산도 스타들이 한다, 안 한다 하면 복잡하잖아요. 임 >>> 김 감독님하고 저하고, 다른 감독과 다른 건, 현실적인 조건에 연연하지 않는 거겠죠. 스타가 아니면 투자 안 해, 그건 제작자의 압력일 수도 있고, 많은 관객하고 만나고 싶은 감독 자신의 불안일 수도 있는데, 이런저런 이유 때문에 스타랑 만나게 되는 지점까지 기다리고 연연하지 않는다는 거요.
김 >>> 하나 여쭤볼게요. 아주 가느다란 여지만 남겨놓고 영화가 항상 끝나잖아요. 전 추상적이지만 넓은 여지를 남겨놓는 편이거든요? 세상에서 육체적, 물리적 행복은 찾아낼 수 없을지 모르지만 살아가는 태도에 따라서 정신적, 의식적 행복은 찾아질 수 있다고.임 >>> 전에 어떤 관객이 그런 얘기를 했어요. 김 감독님의 영화를 보면 뭐랄까, 잔인하게 느껴지고, 제 영화를 보면 좀 따뜻하게 느껴진다고, 그게 무슨 차이냐고. 그건 감독의 세계관이 반영된 걸 거라고 얘기했거든요. 김 감독님은 저보다 훨씬 생에 대해 적극적이고, 더 많은 희망을 가지고 계신 것 같아요. 일반인들이 생각하는 그런 희망과 조금 종류가 다를지 모르지만요. 전 굉장히 염세적이에요. 사람들은 의외로, 김 감독님 영화를 보고 어, 세상이 왜 이렇게 살벌해, 그러면서 자기하고 굉장히 멀다고 생각하죠. 사실 사람들은 눈감고 싶어하지만 그 이면에 감춰진 폭력성이나 잔인함을 누구나 갖고 있다는 걸 통해서 더 강하게 생에 대한 의지를 얘기하고 있는 것 같은데. 또 제 영화를 본 사람들이 따뜻해진다고 하지만, 그건 연민같은 거죠. 그 안에는 어쩔 수 없는 포기와 절망 같은 것이 있는 것 같아요.
비주류의 사람들,작은 우주 안의 희로애락
김 >>> 전 그것이 주인공 밴드 네 사람의 문제에 의한 것이 아니라, 그들을 짓누르는 거대한 힘을 통해 계속 느꼈거든요? 그들만 그 공간에 있다면 결코 불행할 일도 없는데, 그들이 살아가는 공간 안에 보이지 않는 거대한 장벽들이 끊임없이 엄습하는 것 같은. 임 >>> 우리가 어쩔 수 없고 알지 못하는 힘, 인물들이 저항할 수 없는 그런 게 있기도 하죠. 하지만 어떻게 보면 행복이나 불행에는 남들이 쉽사리 재단할 수 없는 게 있어요. <와이키키…>에서 그 친구들이 작은 지하 카바레, 야간업소라는 한정된 공간과 만나는 반복된 일상도, 우리가 생각할 때는 아, 지지리 궁상스럽게도 산다고 생각하지만, 그 작은 우주 안에 희로애락이 있다고 봐요. 외형적으로 성공했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의 재미라는 게 오히려 더 단순하다는 생각이 들어요. 돈을 벌면 행복한 거고, 승진하면 행복한 거지만, 우리가 비주류라고 하는 사람들, 농민일 수도 있고, 야간업소에서 일하는 사람들일 수도 있는 이들이 오히려 더 삶에 밀착돼 있고, 그런 의미에서 행복할 수도 있어요. 작은 단초에 아주 행복할 수도 있고, 불행할 수도 있고, 또 행복과 불행이 공존하는, 그런 게 다 혼합된 삶들이 결국 제가 하고 싶은 얘기였던 것 같아요.
김 >>> 절대적으로 공감해요. 어떤 행복의 수위도, 사실은 빈부를 떠나서 자신의 삶 안에서 추구되는 거죠. 크게는 임 감독님하고 저하고 정서적으로 그리 다르지 않다는 생각도 들어요. 표현에서는 제가 좀 굉장히 과격하고 끔찍하지만, <와이키키…>가 단순히 뮤지션들의 로드를 그린 것 같아도 결국은 한국사회에서 고민하고 있는 정체성을 분명히 내포하고 있고, 저 역시도 <수취인불명>에서 그런 정체성을 고민한 거고. 근데 <와이키키…> 보면 카메라를 창 밖으로 빼내서 찍은 것 같은 느낌이 들고 앵글이나 이야기나 어떤 강박관념 없이 서서히 파고드는 것 같거든요. 그래서 마치 룸살롱에서 발가벗고 기타를 칠 수밖에 없는 그 상황이 유일한 사건인 것처럼 굉장히 강하게 각인되고. 하나둘 도랑물이 모여서 하나의 정점을 팍 찍어주는 게 그 장면에 있다고 강렬하게 느껴졌는데…. 제 영화에서는 그런 장면들이 하나가 아니기 때문에 희석돼서 작게 느껴질 수 있는데, 임 감독님은 그게 아니거든요. 정말 단 한번, 사실 장면 자체로 보면 그렇게 충격적인 게 아닌데도 거기로 모아지는 걸 보면, 굉장히 기다릴 줄 아는 작가 같아요. 전 상당히 부러워요. 저는 지나친 강박관념을 갖고 있거든요. <씨네21> 남동철 기자가 언젠가 얘기했지만 다이너마이트 구성이라고 그래요. 하나가 불이 붙어서 터지면 그 옆에 것이 연속작용으로 불이 붙고, 제 에피소드 구성을 보면 항상 그런 구조를 가지고 있어요. 이야기 끝나나 싶으면 그 전에 약간 복선을 깔아놓은 것들이 툭툭 연결이 돼서 뭘 봤는지도 모르게 끝까지 보게끔 만들고….(웃음) 뭐 그런 구성을 하고 있는 걸 제가 너무나 잘 알고 있는데, 그게 단점인 거예요.
임 >>> 김 감독님 영화는 <섬>까지는 너무 비주얼적인 측면이 강하다, 그런 평도 들었지만 <수취인불명>에서는 많이 보완됐고, 양쪽을 다 할 수 있는 작가라는 인정을 받지 않았나 싶은데요. 전 <섬>을 봐도 비주얼적인 구도 같은 게 단순히 시각에서만 그치는 게 아니라 내용이 담보된 비주얼이라고 생각해요. 그게 김 감독님 영화의 강점이라고 생각하고. 제일 부러워하는 건 에너지예요. 저는 모든 것에 담담한 기질이라 영화적인 꾸밈이나 장식을 싫어해요. 제일 싫어하는 게 인공성인데, 사실 영화의 기본 전제는 인공성에서 출발을 하잖아요? 그러니까 제 기질이 상당히 영화랑 안 맞는 구석이 있어요.
김 >>> 언젠가 어느 잡지에서 <수취인불명>을 보셨다고, 인상깊은 영화라고 해서 되게 고마웠어요. 전주에서도….임 >>> 예. 기회 되면 얘기하고 그랬죠. 전주에서 감독과의 대화 할 때도 좋아하는 영화가 뭐냐고 그래서…. 전 김 감독님 영화, <야생동물보호구역> <실제상황> 빼고 다 봤어요. 특히 <수취인불명>을 굉장히 좋게 봤고, 김 감독님의 영화 중에도 최고 같아요. 그래서 저한테도 <수취인불명>의 흥행 참패가, 김 감독님보다야 못하겠지만 굉장히 안타까웠어요. 국내 관객보다 외국 관객이 더 많이 <수취인불명>을 봤다고 할 수도 있잖아요. 보편적인 이야기를 하지만 결국 우리의 문화와 우리의 사람, 우리의 역사를 이야기하는 건데, 그게 어떻게 안에서 더 외면받을까, 슬펐어요.김 >>> 저도 착각을 좀 했어요. <섬> 개봉하고 베니스 갔다오고, 그것이 <수취인불명>에 영향을 주지 않을까 하고 은근히 기대했어요. 저도 자본에 대한 이익을 내줘야 하고 그거 못 낸 자괴감과 죄책감을 사실 많이 갖고 있어요. 정말 이 영화가, 영진위의 3억원도, LJ의 투자도 갚았으면, 이런 생각을 많이 해요. 그게 안 되는 걸 보면 기가 많이 꺾여요. 그런 영화를 볼 수 있는 관객이 꼭 1만명밖에 없는 건 아닐까란 생각도 해요. 어쩌면 나머지 사람들은 봐도 저게 뭐야, 라고 말하는 건 아닐까. 그렇다면 1만명도 무지하게 많은 거죠. ▶ 김기덕 감독, <와이키키 브라더스>의 임순례 감독을 만나다 (1)
▶ 김기덕 감독, <와이키키 브라더스>의 임순례 감독을 만나다 (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