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집스럽고 예민한 난니 모레티는 감독, 배우, 시나리오 작가, 배급, 상영까지 혼자서 해내는 1인제작 시스템으로도 이름 높다. 1980년대 후반, 이탈리아영화계가 할리우드영화 개방문제로 흥분해 있을 때, 모레티는 아예 누구에게도 간섭받지 않는 1인제작 시스템을 구축했다. 1987년 친구인 제작자 안젤로 바르바갈로와 함께 자신이 좋아하는 초콜릿 케이크의 이름을 따 사케르필름을 차려 제작자를 겸하기 시작했다.
1991년에는 로마의 관광명소 트라스테베레에 360석 규모의 영화관 ‘누오보 사케르’를 개관했다(그는 영화와 관련있는 사업체는 모두 사케르라는 이름을 붙였다). 영화관 안에는 조그마한 서점, 음료수를 파는 바도 있다. 이탈리아에서는 모든 영화를 더빙하는데, 이 영화관에선 1주일에 한번 자막을 삽입, 원어상영을 한다. 쉽게 예상할 수 있듯이 누오보 사케르에선 할리우드영화를 전혀 상영하지 않는다.
1996년엔 배급업에도 진출한다. 첫 대상이 압바스 키아로스타미의 <클로즈 업>이었다. 고집대로 비상업적인 영화를 고른 것이었는데, 첫날 관객이 10명이었다. 당시의 어려움을 소재삼아 그는 <클로즈 업을 상영한 날>이라는 단편을 만들기도 한다. 갖가지 난관에도 불구하고 곧이어 모레티는 탄뎀(Tandem)이라는 배급회사를 정식으로 차렸다. 탄뎀이 배급한 첫 영화가 레온 가스트 감독의 선댄스영화제 다큐멘터리부문 수상작인 <우리가 왕이었을 때>(When We Were Kings)였다.
그의 영화적 활동은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그는 이탈리아 후배 감독 양성에도 열성이다. 1989년 그는 사케르 영화상을 제정, 후배들의 활동을 적극 지원하고 있다. 최고상인 ‘황금 사케르상’ 수상자에게는 누오보 사케르 극장을 통한 상영뿐 아니라 차기작을 제작지원한다.
이 사케르 영화상 수상자들이 현재 이탈리아영화계의 희망인 신진감독들이다. 이들 가운데 다니엘레 루케티는 이미 중견으로 성장했고, 1989년 <언제나 행복해>로 첫 황금 사케르상 수상자로 결정된 마르코 리지, 1990년 <저녁 무렵>을 발표해 리나 베르트뮬러 이후 주목받는 여성감독으로 떠오른 프란체스카 아르키부지, 1998년에 <사랑이라는 말은 존재하는가>를 발표한 밈모 칼로프레스티 등은 모두 난니 모레티의 후계자로 지목되는 감독들이다. 이들은 한결같이 적은 예산으로 작은 영화를 만들지만 사회적 반향은 만만치 않은 작품을 내놓는다. 또한 그는 영화감독 지망생을 위한 기회도 마련해, 1996년부터 ‘사케르 페스티벌’을 열고 있다. 단편영화제로 신인들의 등용문 기능을 한다. 수많은 이탈리아의 예비감독들이 제2, 제3의 난니 모레티를 꿈꾸며 이 영화제의 문을 두드리고 있다.
이렇게 난니 모레티는 연출 역량 외에 한 사람의 감독이 발휘할 수 있는 능력과 영향력의 최대치를 선보이며, 국민감독으로서의 명망을 쌓아가고 있다. (이 글은 <필름컬처> 2호에 실린 필자의 글 중 1인제작 시스템에 관한 장을 부분 수정해 재수록한 것입니다.)▶ 난니 모레티의 영화일기 (1)
▶ 난니 모레티의 영화일기 (2)
▶ 난니 모레티의 1인제작 시스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