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 보통 그 시간까지 집에 없니?’
‘그렇진 않지만….
나도 내가 언제 집에 있는지 잘 몰라.’
-강경옥, <현재진행형>-
내가 가진 것은 생활이 아니라 인생뿐인데도, 이 일상이 미치게 한다. 제보에 따르면 써클k 앞의 그 공중전화박스는 국내에 수입된 역사가 없다고 한다- 더구나 요즘은 휴대폰 전성시대라 공중전화부터 찾기가 별따기다. 초승달이 된 달님은 아무 대답이 없다. 누워 있느라 찾지도 못했지만, 졸타 기계인 척하고 있는 것은 사주팔자 기계라든가 마귀할멈 기계밖에 없고 모두 착실히 플러그가 꽂혀 있었다. 한국에서 뭐 되는 게 있더냐는 말을 들었으나- 그래도 고국인데, 나라 탓은 말아야지. 어쨌거나 그 사이에 이미 바닥에 얼마간밖에 남지 않았던 희망의 눈금도 증발해간다. 목걸이, 목걸이를 찾자.
하우프트만 왕국의 그 목걸이 말이다.
<마네킨2>, 생각해보니 그 목걸이는 천진하고 사랑스러운 금발 처녀에게나 어울리는 목걸이로구나. 내 목에 걸어서 마네킹이 되었다간 돼지목에 금목걸이 어쩌고 하는 속담이 절묘하게 들어맞아 희한하게 생긴 실패작 마네킹이 되어 폐기처분되거나 2001년 당시 인간들은 이러했다를 알려주는 표본이 되어 인류사 박물관에 우두커니 앉아 있을지도 모르지만, 지금 당장은 그 목걸이가 갖고 싶다. 나를, 동결시켜줘.
이 청춘을, 이 슬픔을 일시에 동결시켜 천년 뒤에나 깨어나게 하소서, 한때는 전부인 양 하던 마음도 눈과 귀를 꼭 닫고 돌아서면 잊혀지는 모양이던데, 하물며 나 역시 인간인 바에야 설령 천년 뒤에는 잊혀지지 않겠습니까? 눈을 감고 귀를 막고 입을 닫고 침묵하여도 사무치는 이 모든 것이 세월의 한파에 잊혀지면, 드디어 껍질만 남은 육신을 아무 미련도 없이 팽개치련만- 염려하는 것은, 혹시 굳어진 껍질에 의식만 남아 있다면 어쩌면 좋을까. 귀를 열고 눈을 뜬 채로 천년의 해빙과 천년의 낙엽을 목도할 텐데. 상관없어, 지금 살아 있는 것 자체가 고문이다. 인생을 드래그해서 어디 좋은 데다 붙여넣기 할 수 없는 이상―.
목걸이를 찾자.
이제 인생의 신록에 갓 발을 들여놓은 주제에 느껴지는 것은 낙조뿐이니. 어디에 길을 물으면 좋을까. 세인에게 묻노니, 정이란 무엇이관데 천지를 가늠하느뇨- 라 되뇌던 이막수는 아무 대답도 듣지 못한 채 불길에 스러져가고, 거짓 약속인지도 모르고 세상에 없는 남해신니에 희망을 걸며 십육년 동안 천하를 유람한 신조협은 비록 한팔을 잃었어도 끝내 글씨를 달고 나는 꿀벌을 보며 웃었건만, ‘정이 깊으니 약속을 잊지 마세요’라 석벽에 쓸 공력 하나 없고, 가파른 희망 하나 잡을 것이 없는 미약한- 하루가 갈수록 사그라드는 젊음밖에는 가진 것이 없는 자는 어디에 읍소하면 좋으리이까.
<백발마녀전>이었던가- 만년이라도 기다릴 수는 있지만, 내일조차 먼 미래인 나는 일백년도 채 못 살 인간이로군요. 인간이기에, 인간이기 때문에. 인간을 사랑하고, 인간에 울지 않습니까.
아, 수만번 버려도 그대로인 가난한 마음이여.
김현진/ 한국예술종합학교에 서식중. 정확한 거처 불명. 키워드는 와일드터키, 에반윌리엄스. <누가 뭐래도 버번은 007이라는 메리트가 있는 것이다!> [email protected](하트브레이커는 <하트브레이커스>가 아니라 하트브레이커 ‘더 키드’ 숀마이클님이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