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의 관객에게 뮤지컬 하면 떠오르는 영화가 무엇이냐고 묻는다면 아마 대부분이 <사운드 오브 뮤직>(1965)을 꼽을 것이다. 한때 명절의 특선영화나 주말의 영화 프로그램에서 심심찮게 찾아볼 수 있었을 만큼 익숙한 영화다. 그외 <사운드 오브 뮤직>의 로버트 와이즈 감독이 연출한 또 하나의 뮤지컬 <웨스트 사이드 스토리>(1961)나 <왕과 나>(1956) <남태평양>(1958) <마이 페어 레이디>(1964) 같은 영화를 떠올리는 사람도 있겠다.
위에 언급한 영화들은 모두 20세기폭스, 유나이티드 아티스트, 파라마운트, 혹은 워너브러더스 등 할리우드 메이저 영화사들에 의해 만들어졌다. 그러나 전후 할리우드 뮤지컬의 황금기를 대표하는 것은 뭐니뭐니해도 MGM, 혹은 제작자 아서 프리드가 이끌었던 이른바 ‘프리드 사단’의 뮤지컬들이다.
프레드 아스테어, 진저 로저스, 진 켈리 등의 뮤지컬 스타들과 빈센트 미넬리, 스탠리 도넌 등의 감독들이 만들어낸 MGM의 많은 뮤지컬들은 아직까지도 가장 뛰어난 뮤지컬들로 칭송받고 있다. 예컨대 <파리의 아메리카인>(1951), <사랑은 비를 타고>(1952), <밴드 웨건>(1953) 그리고 (1954) 등을 떠올릴 수 있겠다. 뮤지컬의 역사를 종횡무진하는 바즈 루어만의 <물랑루즈>가 이러한 뮤지컬 역사의 보고를 그냥 지나쳤을 리 없으니, 이완 맥그리거와 니콜 키드먼은 <사랑은 비를 타고>에서의 진 켈리와 시드 채리스의 환상적인 춤장면을 빌려 서로간의 사랑을 재확인한다.재미있는 것은 <물랑루즈>가 반드시 뮤지컬 장르의 역사만을 횡단하지는 않는다는 점이다. 감독이 이미 밝힌 바, 조셉 폰 스턴버그의 <푸른 천사>(1931)는 니콜 키드먼이 연기한 댄서 창부 샤틴의 이미지- 여기서 60, 70년대에 만들어진 밥 포스의 뮤지컬 속에 나온 셜리 매클레인과 라이자 미넬리의 영향도 함께 말해야 할 것이다- 를 만드는 데 암시를 주었을 뿐 아니라 ‘지옥으로의 하강’이라는 모티브까지도 <물랑루즈>에 제공해주었다. <물랑루즈>의 마지막 공연장면에서, 무대 위에 있는 여주인공이 극중에서 경험하는 갈등을 무대 밖으로 투사시키는 부분에 대해서는 마이클 파웰과 에머릭 프레스버거 콤비의 ‘발레영화’ <분홍신>(1948)과의 관련을 지적할 수 있겠다.
뮤지컬은 70, 80년대를 거치면서 거의 장르로서의 생명력이 다해가는 듯 보였다. 다분히 쇠퇴 일로에 있던 뮤지컬의 매력을 다시 상기시켜준 것은 90년대 디즈니의 애니메이션들이었다. <물랑루즈>는 인물들의 성격뿐만 아니라 그들의 동작을 묘사하는 데 있어서 군데군데 애니메이션 영화 속 인물들의 그것을 빌려온다. 이런 시도는 이미 <마스크>의 짐 캐리를 통해 접한 바 있다.
또한 <물랑루즈>는 온전히 누아르에 물든 뮤지컬이다( 이 점에서 MGM의 화려하고 밝은 뮤지컬들과 확연히 달라진다). 바즈 루어만은 비록 파리를 영화의 배경으로 삼기는 했지만 <파리의 아메리카인>이나 <지지>(1958)의 빈센트 미넬리의 시선- 우디 앨런이 뮤지컬 <에브리원 세즈 아이 러브 유>에서 차용하고 있는 그 시선- 과는 전혀 다른 방식으로 그 도시를 바라보고 있다. 그래서 이 영화 속의 파리는 거의 <배트맨>의 배경이 되는 고담시를 연상시키기까지 한다.지금까지 언급한 것만으로도 <물랑루즈>가 꽤 많은 영화들의 혼성으로 이루어져 있다는 점을 짐작하기는 어렵지 않을 것이다. 혹자는 이 영화를 두고 ‘포스트모던 뮤지컬’이라고 불렀다. 이처럼 용어가 남발되는 것은 고개를 젓게 만들지만 여하간 이 영화가 뮤지컬에 별 매력을 못 느끼던 관객에게도 호소할 수 있는 영화라는 점은 확실하다. 유운성 [email protected]▶ <물랑루즈>로 돌아온 스펙터클의 흥행사 바즈 루어만 (1)
▶ <물랑루즈>로 돌아온 스펙터클의 흥행사 바즈 루어만 (2)
▶ 포스트모던 혼성 뮤지컬 <물랑루즈>의 족보
▶ 바즈 루어만 인터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