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독 류승완, 배우 류승범을 말하다.
류승범은 기이한 배우다. 아직도 길거리 사람들은 잘 모르는데 청춘영화 시나리오가 나오면 업계에선 회자된다. 이상하지 않나. 어쨌든 메인 스트림에 진입하는 단계인 것 같은데 대신 함몰되지 않았으면 한다. 작품마다 항상 가능성을 남겨놓는, 보여주는 그런 배우였으면 좋겠다. 그게 모든 것을 소진하는 배우보다 훨씬 위력적이다.
요즘 가끔 집에서 승범일 보면 연기에 부담을 느끼는 때도 있는 것 같다. 1년 전에 같이 작업할 때와 달라진 모습이다. 시나리오에 밑줄 긋는 모습을 보면 그렇다. 가장 릴렉스한 연기는 고도로 치밀한 준비가 되어야 한다는 승범이 말에 동의하지만, 다른 삶의 체험들에 항상 자신을 열어두었으면 좋겠다. 그게 나중에 소중한 자양분이 되니까. 언젠가 승범이나 나나 한번쯤은 처절한 실패를 맛볼 텐데, 굴복하지 않고 넘어서려면 그런 훈련을 해둬야 한다. 물론 아직 시간은 많고, 지금까지는 잘하고 있다.
순발력도 뛰어나고 머리도 좋다. 스탭들과도 잘 어울리고, 현장 적응력도 상당하다. 다만 영화 몇편 한 친구들이 갖곤 하는 변신에 대한 강박은 없었으면 좋겠다. 그건 어차피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변해가는 것이니까. 힘이 축적되면 그건 자연스럽게 이동하는 것이니까. 말론 브랜도도 평생 말론 브랜도였고, 로버트 드 니로도 평생 로버트 드 니로였다. 자기 안의 다른 것을 끄집어내는 지혜를 갖고 있으면 된다. 그 지혜는, 반복하자면, 다른 경험들에 대해 자신의 가슴과 머리를 열어두는 거다.
신하균, 정재형, 임원희 등 같은 소속사 배우들이 직접 연기를 다듬어주고, 본인이 최민식, 송강호 같은 좋은 배우들을 보면서 깨우쳐 가는 것도 중요하고 도움이 되겠지만, 다른 삶에 대한 두려움 없이, 기회가 있을 때마다 자신의 것으로 만드는 노력을 계속했으면 좋겠다. 잘할 거라 믿는다. 나처럼 재지 않고 항상 저돌적이었으니까.
배우 류승범, 감독 류승완을 말하다.
인간적으로 존경한다. 가족이라서가 아니다. 어떤 상황에도 휘둘리지 않고 자기 꿈을 실현해왔으니까. <죽거나 혹은 나쁘거나>부터 <다찌마와 리> 그리고 지금 만들고 있는 <피도 눈물도 없이>까지, 모두 자연인 류승완이 감독 류승완에게 “나 이런 영화 보고 싶어. 그러니까 만들어줘”라고 하는 것처럼, 자기가 좋아하는 영화를 만들기 위해 형은 준비해왔고, 또 그걸 만들어왔다. 그런 모습들이 보기 좋다. 다만 스탭들 배려하는 마음에, 상황이 이러저러하니까 어떻게든 줄여서 가자라는 식으로 타협하지는 않았으면 좋겠다. 사람이 여리니까 그럴 위험이 전혀 없는 게 아니다. 그런 맘이 있어도 상황에 굴하지 않고 자기가 만족하는 영화를 만들었으면 좋겠다. 자기가 박수칠 만한 그런 영화 말이다. <피도 눈물도 없이>가 그랬으면 좋겠다. 영화 하면서 손쉬운 유혹들이야 많겠지만, 자기가 세웠던 심지대로 갔으면 하는 마음이다. 사실 오늘 스케줄은 이만큼만, 컷 수는 요만큼만 가잔다고 해서 그대로 따라가면 안 된다. 남이 뭐라 해도 자신이 만족하는 영화를 만들었으면 좋겠다. 그럴 것이다. 그게 행복한 삶인 줄 형도 알 테니까. 배우 입장에서 본다면 류승완 감독에 만족한다. 항상 배우에게 귀가 열려 있다. 디테일한 부분을 논의할 때도 잘 수용해준다. 물론 내가 형보다 영화라는 매체에 대한 이해도 짧고 그러니까 더이상 이렇다 저렇다 말할 계제는 아닌 것 같다. 배우는 디테일한 것 보는 것이고, 감독은 큰 숲을 보는 것이니까. 디테일한 걸 안 받아줄 때 서운한 건 사실이지만, 근데 금방 후회한다. 내가 혹시 우겨서 그걸 받아들였다면 영화가 어떻게 됐을까 하고. 형은 전체적인 톤을 볼 줄 아는 능력이 있으니까 앞으로 잘할 거다.
류승완 약력
<피도 눈물도 없이> 현장 지휘
어느날 갑자기, 정말 갑자기 그는 홍두깨처럼 나타났다. 1973년생 소띠, 그러니까 아직 서른을 넘기지 않은 그는 릴레이 무비 <죽거나 혹은 나쁘거나>로 ‘삐까뻔쩍’하게 등장했다. 고구마 장사, 공사장 인부로 생계를 유지하면서 영화를 찍던 이 게릴라, 데뷔 여세를 몰아 <다찌마와 리>로 인터넷 영화에 영광을 안겼다. 충무로 메이저가 눈독을 들일 수 밖에. 풍찬노숙하던 저예산 16㎜ 감독은 이제 액션영화선물세트 <피도 눈물도 없이> 현장을 지휘하고 있다.
류승범 약력
<피도 눈물도 없이> 촬영중
일찌감치 학교의 울타리를 벗어나 최고의 DJ를 꿈꿨던, 스물두살 80년생. 꿈은 꿈으로 남겨두고 형의 권유로 출연한 <죽거나 혹은 나쁘거나>에서, 깡패가 되고 싶은 고교생 양아치로 대종상 신인남우상을 수상하며 인생궤도를 대폭 수정했다. <다찌마와 리>와 <와이키키 브라더스>의 신세대 웨이터, 애니메이션 <아치와 씨팍>의 목소리연기를 거쳐, <피도 눈물도 없이>에서 돈가방을 노리다가 얻어터지는 또다른 양아치로 연기에 한창 맛들이는 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