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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직 못 본 사람이 많은데…
2001-10-26

개봉 그뒤

<나비>가 개봉하는 날. 드디어 개봉일이 왔다. 큰일났군.

“안 끼던 반지는 왜 끼고 그래?” 아내가 묻는다. ‘좀 어른스럽게 보이려구 그런다, 왜?’ 속으로 대답해 본다. 거울을 보며 웃음을 지어본다. 거울 속에서 얼굴이 어색하게 웃다 일그러진다. 이러면 안 되는데…. 하루 먼저 개봉한 메가박스의 관객 수가 자꾸 마음에 걸린다. ‘아니지. 정식 개봉일은 오늘인데, 뭐.’ 이리저리 변명거리를 찾다 좀 우습다는 생각이 들어 그만둔다.

주상영관인 서울극장. 어라? 매표소 앞에서 웬 사내가 목이 터져라 외치고 있다. “<나비> 보세요, <나비>. 올해 가장 아름다운 영화입니다. 빨리들 오세요.” 누구지? “배급사에서 나온 사람인데요.” 옆에 서 있던 김??(이름채워주세요) 이사(제작실장)가 가르쳐 준다. 뭔가 일이 잘 안 풀린다는 표정. 돌아보니 <나비> 제작팀이 삼삼오오 모여 앉아 있다. 익숙한 얼굴들.

<나비>는 유난히 제목 때문에 말이 많았다. 부산에서도 그랬다. “이거 혹시 에로영화 아냐?” 로케이션 현장에서 캡슐방 주인 아줌마가 물었다. “절대 아닙니다.” 엄숙하게 대답한다. 우리가 35mm 카메라를 들고 왔더라면 이런 소릴 들었을까? 주인 아줌마가 소파에 앉아 시나리오를 꼼꼼히 읽고 있다. 검열이군. 이곳에서 우리는 잠도 안 자고 30시간을 풀로 찍었다. 스탭들의 여유있는 표정에서 프로덕션 때의 고생이 추억이 되었음을 읽는다. “축하해요. 정 PD님.” “시사회 표 고마웠어요.” 스탭들 중 몇몇이 인사를 건넨다. 힘차게 악수를 해보지만, 이내 손에 힘이 빠진다. 나만 안절부절. <미카>(디프로덕션의 두 번째 프로젝트)의 송인선 감독도 와서 악수를 청한다. <미카>는 시나리오가 완성된 지 벌써 2개월짼데…. <나비> 마케팅 때문에 돌볼 틈이 없다. 정성껏 미안하다는 웃음을 지어본다. “그만하면 됐어. 첫 작품이잖아.” 사람 좋은 오명수 PD(라인 프로듀서)가 위로해준다. 아니 이제 오 감독이지….오 감독은 지금 <베리 굿>(가제)를 준비중이다.

극장 옆 카페에 들어서자 박?? 대표(제작자)와 브에나비스타(배급사)의 박?? 상무님이 앉아 있다. 역시 무거운 표정. 서로 할말이 있을 리 없다. “그런데 여기 <나비> 포스터는 왜 없어?” 박 대표가 침묵을 깬다. 대답 대신 <고양이를 부탁해>의 포스터에 원망스런 눈빛을 던져본다. 순간 내 맘을 읽은 듯 오기민 PD(<고양이를 부탁해>)가 들어와 박 대표에게 악수를 청한다. “축하합니다.” 민첩한 손놀림이다. 그의 안정감있는 태도에 약간 질투가 났다. “이럴 때가 아니지. 각자 할 일들 합시다.” 박 상무가 일어나 극장으로 들어간다. “전 이만 들어갈게요.” 박 대표의 처진 어깨가 애처롭다. 그녀는 할 만큼 했다.

문 감독도 그랬다. “작게 가자고 그랬잖아.” 문 감독의 질책이 귓가에 들려온다. 날은 어둡고 사람들은 돌아간다. 극장 한 귀퉁이에서 <나비> 포스터 배너가 애써 버티고 서 있다. 포스터 안의 호정씨 눈매가 아름답게 빛나고 있다. 20년 전 이곳에서 <대부>를 봤다. 미성년자 관람불가. 로비에 앉아 상영시간이 오길 불안하게 기다리고 있는데, 덩치 큰 사내가 다 알고 있다는 웃음을 보내왔다. 그때의 즐거움이란… 난 영화보다 극장을 더 사랑했다. 극장은 내게 정서적으로 가장 중요한 공간이었다. 이제 나도 크고 극장도 커졌다. “이게 현실이야, 친구.” 극장이 내게 말한다. 그렇다. 시간이 지나면 우정의 색깔도 변하는 법. <나비>는 메인극장인 서울극장에서 상영 이틀 만인 월요일에 떨어진다. 어떡하지? 아직 못 본 사람이 많은데… 내일까지 대책을 마련해야만 한다.(<나비>는 메가박스와 시네큐브에서 장기상영에 들어갔다. ―편집자) 정래영/ <나비> 프로듀서 ▶ 디지털에 `미쳐 날뛰` 1년, 그 고통과 흥분의 여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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