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멀티플렉스 춘추전국시대 누가 살아 남을 것인가?
2001-10-19

선발 CGV에서 후발 롯데까지 체인망 확산 움직임 치열, 일부업체 투자, 제작, 배급 아우르는 수직적 일원화 포부 밝혀

브레이크 없는 질주인가. 해를 거듭하면서, 극장가를 잠식한 거대 멀티플렉스들의 기세가 드높다. 지난 10월3일, 멀티플렉스 업체인 CGV는 7개 지역, 68개 스크린에서 관객 수 1천만명 돌파라는 대기록을 세웠다. 1998년 4월 서울 광진구 구의동의 CGV강변11을 시작으로 전국 체인망 건설에 나선 지 불과 3년 만의 일이다. 지난해 멀티플렉스의 위용을 한껏 과시했던 메가박스 역시 승승장구의 분위기를 잇고 있다. 올해에만 이미 관객 수 400만명을 돌파한 메가박스는 연말 매출액이 지난해의 2배에 달하는 420억원에 이를 것으로 자체 파악하고 있다. 일대 유동인구의 특성을 감안, 24시간 상영을 내세웠던 중구의 MMC 역시 영화 수급이 원활해지면서 지난 8월 26만명의 관객을 동원하는 등 고전했던 초기와 달리 가파른 상승세를 보이고 있고, 개관 당시 그다지 알려지지 않았던 강남의 센트럴6 역시 백화점 등 대형상가 입점과 동시에 근처 유동인구까지 흡수, 평일에도 40% 이상의 높은 좌석점유율을 기록하고 있다.

“입지만 좋다면 어느 곳이든”

멀티플렉스 열풍이 극장가를 주도하면서 스크린 수 역시 비약적으로 증가하고 있다. 전국극장연합회 자료에 따르면, 1999년 전국의 스크린 수는 588개였지만, 지난해에는 무려 720개로 늘어 22%의 증가세를 보였으며, 올해말까지 전국의 스크린 수는 840개 안팎에 이를 전망이다. CGV, 롯데, 메가박스 등 멀티플렉스 선두 업체들이 경쟁적으로 전국 체인망 건설에 나서고 있다는 것이 가장 큰 이유다. 현재 서울, 인천, 부산, 대전 등에 체인망을 확보한 CGV의 경우, 2004년까지 200개 스크린 확보를 목표로 하고 있다. 기존 백화점 유통망을 활용, 발빠르게 움직이고 있는 롯데 역시 2002년까지 전국 14개 지역에 130여개 스크린을 세울 예정이며, 굳이 “롯데백화점과 연계하지 않더라도 입지만 좋다면 어느 곳이든 사이트 개발이 가능하다”는 공세적인 자세를 취하고 있다. 메가박스 역시 2004년까지 대도시를 중심으로 120개 스크린을 확보한다는 내부 목표를 세워놓고 있다. 앞으로 3년 내에 전국의 스크린 수가 1200개를 상회하리라는 한 업체 관계자의 예상은 지금 분위기로 봐서는 크게 틀리릴 것 같지 않다.

금리 인하와 맞물려 부동산 투자 시장이 활성화 움직임을 보이는 것도 멀티플렉스의 증가 추이를 측면 지원하고 있다. 단적으로, 관객몰이에 성공한 멀티플렉스 업체에 신규 신규 대형 상가들의 러브콜이 잇따르고 있다. 메가박스의 서동욱 기획팀장은 “지난해부터 전국적으로 입점 제의가 물밀듯이 쏟아져 들어오고 있다”며, “예전과 달리 멀티플렉스가 상권 형성에 핵심적인 요소로 인식되고 있는 상황이다”라고 말한다. 현재 2호선 강남역, 3호선 신사역, 4호선 동대문운동장 등 역세권을 포함, 서울 동북부와 영등포 지역 등 새로운 유통 격전지로 떠오른 상권에서도 멀티플렉스를 유치하려는 움직임이 분주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지방도 서울과 상황은 마찬가지. 올해 분당에 씨네플라자라는 이름의 복합관을 세운 센트럴6의 오미선 기획팀장은 “신규 상가들이 적극적인 유치 제안을 해오는 만큼, 큰 규모는 아니지만 앞으로 체인 형식으로 관 수를 늘릴 계획”이라고 밝혔다. 높은 보증금 등이 걸림돌이긴 하지만, 리츠(REITs) 즉 부동산투자회사 시장을 선점하기 위한 금융업체들간의 경쟁이 불붙을 경우, 이들 사이에서 복합상가 투자가 주력 상품 중 하나로 떠오르는 만큼 멀티플렉스에 대한 관심 또한 높아질 전망이다.

날개 꺾인 날개극장

이같은 공급 증가가 격렬한 경쟁을 불러오리라는 건 자명한 일이다. 이미 부산을 비롯한 지방 대도시의 경우, 업체들이 앞다투어 입성하면서 이미 혈투가 시작됐다. 2002년부터는 서울 또한 업체간 경쟁 급류에 휘말릴 것으로 보인다. 첫 번째 희생자는 변두리 지역의 속칭 날개극장들. 도심 한가운데에 비해 수익률이 떨어지는 점을 감안해서 그동안 투자를 머뭇거려온 것이 사실이지만, 대형 멀티플렉스들이 2002년부터 강북, 신촌, 영등포 등 새로운 상권과 주택지로의 진입을 결정하면서 이 지역 기존 극장들은 잔뜩 긴장한 눈치다. CGV의 경우, 2001년 12월에 구로에 10개관, 명동에 5개관을 들이는 것을 시작으로 목동에 7개관, 청량리에 10개관을 오픈할 예정이다. 롯데 역시 서울에 미아리, 영등포의 백화점 자리에 멀티플렉스를 얹는 것을 확정한 상황에서 동대문, 창동, 노원, 상계 등 지하철 4호선 라인을 중심으로 사이트를 개발중이다. 메가박스 역시 신촌뿐 아니라 삼성역 근처 2호선 라인을 기준으로 새로운 부지를 물색중이다. 그동안 단관 또는 2개관을 운영해온 기존 극장들은 지난 2년 동안 2∼3개관을 증설, 5개관 이하의 복합관 변신을 꾀하긴 했지만, 멀티플렉스의 파상공세를 견뎌내긴 힘들 것이 예상된다. AFDF의 김선호 배급팀장은 “이들 거대 멀티플렉스가 입점하면, 변두리 지역의 극장들은 매물 처지가 될 것이 불을 보듯 뻔하다”며, “속칭 ‘날개극장’으로 분류되던 극장들은 사라질 것”이라는 전망을 내놓는다.

멀티플렉스 자장의 영향권엔 전통의 종로·중구에 위치한 극장가도 포함된다. 지난해 메가박스, 센트럴6 등 강남지역에 멀티플렉스가 속속 등장하면서 권역별 관객점유율이 예년에 비해 20% 이상 떨어지는 등 이미 한 차례 매운 강풍 맛을 본 터라 경계를 늦추지 않고 있는 것. 서울극장이 내년 여름 개관을 목표로 5∼6개 규모의 스크린을 늘리는 것이나 3년 전 5개관 규모의 복합관을 계획하던 단성사가 이를 수정, 11개관 규모의 멀티플렉스 사업을 추진하고 있는 것은 ‘텃밭’처럼 인식되던 강북지역의 관객들을 더이상 뺏기지 않으려는 수성 의지로 읽힌다. 물론 서울극장의 권미정 이사는 다른 의견을 제시한다. “강북에 CGV와 롯데, 신촌에 신영극장 등이 들어선다고 해서 종로가 메인 극장가의 위치를 빼앗길 것이라고는 생각치 않는다. 2003년 이후면 피카디리, 단성사 등이 대형 멀티플렉스로 거듭나고, 이보다 앞서 인근 충무로의 대한극장이 7개관을 갖출 것으로 예상되는 만큼 이 지역이 제2의 전성기를 맞을 것으로 예상한다”고 말한다. 멀티플렉스로 무장하는 종로가 여전히 극장가의 중심을 차지할 것이라는 말이다. 극장 관계자들 역시 당분간은 서울극장을 중심으로 한 종로 일대의 극장가가 여전히 힘을 발휘할 것으로 보고 있다. 서울 전역에 세워지는 멀티플렉스 때문에 예전같은 독점적 위상을 유지하지는 못하겠지만.

이미 극장가에는 한기가…

그러나, 멀티플렉스 업체들에게도 고민은 있다. 공급은 늘었지만, 그만큼 수요가 따라줄 것 같지 않다는 것. 실제로 스크린 수는 1999년 588개에서 지난해 720개로 늘어 22%의 증가율을 보였지만, 전국관객은 5472만명에서 6169만명으로 겨우 13%의 증가세를 보이는 데 그쳤다. 서울지역의 경우, 스크린 수는 34%가 늘어 218개가 됐지만, 관객 수의 증감은 없었다. 물론 이같은 통계만으로 미래를 의심하기엔 너무 빠른 감이 없지 않다. 한국의 인구당 좌석비율은 1998년 기준으로 0.4%였는데 지난해에도 이 비율엔 변화가 없었다. 스크린 수가 급증했다지만 아직 포화를 걱정할 단계는 아니라는 반론이 설득력을 얻을 만한 상황이다. 사이트 개발을 맡고 있는 메가박스의 소승언 부장은 “서울의 경우 1인당 연간 관람편수가 이미 2.5편에 이르는데 신림, 사당, 영등포 같은 부도심 지역까지 멀티플렉스가 밀고 들어가면 포화상태를 우려해야겠지만, 지방의 경우 멀티플렉스의 잠재력은 아직도 충분하다”고 말한다.

업체간 경쟁 심화 또한 멀티플렉스의 미래를 어둡게 만드는 요인 중 하나다. 일례로 신규 상가들이 멀티플렉스에 호의적이라고 하지만, 그렇다고 임대료가 낮아지는 것은 아니다. 비단 멀티플렉스 업체가 아니더라도 극장사업에 뛰어드는 영화사, 개인 등이 많은 탓에 분양과정에서 낙찰 가격은 쉽게 떨어지지 않는다. 임대가 아니라 하더라도 단기간에 수익을 기대하기란 무리다. 현재 대략 2천석 규모의 멀티플렉스를 짓는 데 들어가는 돈은 약 100억원. 여기에서 감가상각비, 시설유지비, 인건비 등을 제외한 극장쪽의 최대 당기순이익은 매출액의 약 10% 정도. 관람료를 7천원으로 잡고 통상 극장쪽에 떨어지는 몫을 3천원으로 잡을 때, 100억원짜리 멀티플렉스가 투자액을 5년 안에 회수하기 위해선 매년 매출액이 200억원 이상, 연평균 관객이 130만명 이상은 되어야 한다는 계산이 나온다. CGV가 손익분기점을 넘겼고, 메가박스가 2년이 채 안 됐음에도 투입 자본을 회수했다 하지만, 두 업체는 모두 선점 효과를 톡톡히 봤다. 다자간 경쟁이 격화되면 자본 회수가 그렇게 만만치 않으리라는 걸 예상하기는 어렵지 않다.

모든 산업이 그렇듯 선두업체가 역풍을 가장 먼저 느끼는 법이다. 2004년까지 전국 20개 사이트에 200개 스크린 확보를 목표로 잡고 있는 CGV의 송치용 프로그래밍 팀장은 “올해 관객 증가는 흥행작들이 터져나온 특수한 결과임을 염두에 둘 필요가 있다”고 분석한다. 전통적인 극장 비수기인 3월에 <친구> 등 예상치 못했던 흥행작이 터져나오면서 극장의 전대가 두둑해졌지만, 이같은 호재가 내년까지 이어지리라는 낙관은 근거가 없다는 것이다. 하드웨어 산업의 특성상 고비용을 회수하기도, 지어놓은 극장을 타 용도로 변경하기도 쉽지 않은 상황에서 부담해야 할 리스크는 크다. 메가박스를 보유한 미디어플렉스가 투자, 제작, 배급 등을 아우르겠다는 포부를 밝히고 있는 것도 그같은 이유에서다. 할리우드처럼 수직적인 일원화 시스템을 갖추어 시너지를 발생시키지 못하면, 극장사업에서 전망을 기대할 수 없다는 것이다. 백화점 등 유통사업과의 연결 고리로 극장사업에만 몰두해온 롯데쇼핑 역시 장기적으로는 영화사업에 본격적으로 뛰어들 것으로 보인다. 한 관계자는 현재 롯데는 시네마사업본부를 넘어 그룹 차원에서 이 문제를 신중히 검토중이라고 귀뜸했다.

생존을 위한 군웅할거의 시대

불과 3년 전 <씨네21>은 “멀티플렉스 열풍이 얼마나 빨리 올 것인가”라는 질문을 던졌었다. 기대 반, 의구심 반이었지만, 이제 멀티플렉스는 따라잡을 수 없는 속도로 현실화됐다. ‘긴급진단’이라는 표제를 붙여 시설 투자에 둔감한 노후한 극장가를 자극하던 6년 전에 비하면 놀랄 정도의 변화가 눈앞에 펼쳐졌다. 멀티플렉스가 관객들의 호응을 얻어내면서 새로운 소비문화의 동선을 만들어내기 시작했던 2년 전엔 ‘신(新)극장문화’라는 표현을 아끼지 않았다. 그리고 지난해부터 극장가는 멀티플렉스 전쟁에 돌입했다. 올해에도 할리우드 거대 멀티플렉스의 도산 소식이 끊임없이 들려오고 있는 가운데, 국내 극장가는 ‘확장’과 ‘생존’을 위한 군웅할거의 시대를 관통하고 있는 중이다.

글 이영진 [email protected]▶ 멀티플렉스 춘추전국시대 누가 살아 남을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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