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욕영화제는 세계영화제들의 결산 보고서다. 칸, 베니스, 베를린을 거쳐 긴 영화제 순례를 마친 올해의 영화들, 마지막 승자들은 뉴욕에 그 여장을 푼다. 뉴욕에는 칸의 밤을 밝히던 스타들과 사진기자들의 플래시 세례도 없고, 내심 살까말까를 고민하는 배급사들의 곤두선 눈길도 없다. 이미 수많은 뒷이야기와 영광과 배급사를 덤으로 달고 뉴욕에 도착한 ‘최고 중의 최고의 영화’들을 기다리는 건 붉은 카펫과 이브닝 드레스가 아니라, 까다롭기로 이름난 뉴요커들과 평론가들의 날카로운 펜촉이다.
누벨바그에서 누벨바그로
올해 뉴욕영화제는 누벨바그로 문을 열고 누벨바그로 문을 닫았다. 개막작인 자크 리베트의 신작 <알게 되리라>가 인생과 사랑, 예술이 얽히고 설킨 한편의 희극을 사뭇 경쾌하게 선사하면서 영화제의 막을 올렸다면, 폐막작인 장 뤽 고다르의 <사랑의 찬가>는 과거와 현재, 영화사와 자신의 영화 작업에 대한 성찰로 누벨바그를 사랑해온 뉴욕영화제 관객을 만족시켰다. 60년대 예술영화를 소개한다는 명목으로 탄생한 뉴욕영화제의 역사를 고려할 때, 올해 프랑스영화의 풍성한 수확을 바탕으로 한 이번 선정은 당연하다고 받아들일 수 있다. 17일간의 영화제에서 주인공은 단연 프랑스영화였다. 에릭 로메르의 <영국여인과 공작>, 카트린 브레이야의 <뚱보 소녀>, 파트리스 셰로의 <인티머시> 등 총 25편의 상영작 중에서 10편이 프랑스(혹은 프랑스 합작)영화였다. 상대적으로 아시아영화는 예년에 비해 그 수가 줄어서 이마무라 쇼헤이의 <붉은 다리 밑의 따뜻한 물>, 이와이 순지의 <릴리 슈슈에 관한 모든 것>, 차이밍량의 <거기 지금 몇시니?> 등 3편에 그쳤다.
한편 칸과 베니스를 거쳐온 대부분의 영화들이 찬사 일색의 호평을 받은 것에 비해 올해 뉴욕영화제의 유일한 월드 프리미어 작품이자, <러시 모어> 이후 미국의 차세대 주자로 주목받는 웨스 앤더스 감독의 신작 <로얄 테넨바움>은 찬사와 비판이 엇갈렸다. 1950년대 뉴욕의 한 괴짜 가족을 소재로 한 <로얄 테넨바움>은 진 해크먼, 기네스 팰트로, 안젤리카 휴스턴 등 쟁쟁한 배우들과 복고풍의 화려한 의상, 세트로 볼거리를 갖추었음에도 불구하고, 시대착오적인 복고 정서를 보여주는 데 그쳤다는 평이다. 그러나 테러사건 이후로 우울한 뉴요커들은 지난날의 로맨틱한 뉴욕의 만화경을 보며 위안을 받을는지도 모른다.테러에 대한 질문은 금기
영화제 프로그램을 나누는 또다른 축은 세대 구분이다. 누벨바그의 거장들 이외에도 유세프 샤인의 <조용히…우리는 촬영중>, 마뇰 드 올리베이라의 <나는 집으로 간다> 등 노장감독의 작품들은 대체로 영화 만들기와 인생에 대한 나름의 성찰을 담은 완숙미가 돋보인다는 평을 들었지만, 칸영화제 수상작이기도 한 난니 모레티의 <아들의 방>은 그저 현대판 멜로드라마에 불과하다는 비판 또한 만만찮아 아방가르드와 지적인 영화를 선호해온 뉴욕영화제의 한 단면을 보여주었다. 미국이 내세우는 중견 작가인 데이비드 린치 감독은 <멀홀랜드 드라이브>로 뉴욕영화제에 화려하게 뒤늦은 데뷔 신고식을 했는데, 할리우드의 과거에 대한 자기성찰적인 풍자와 꿈꾸기의 경계를 의심케 하는 특유의 상상력으로 비평가들과 관객로부터 만장일치의 지지를 받았다.
그러나 거장과 중견감독들의 ‘우아함’으로 가득한 영화제 분위기에 신선함을 더한 것은 신인감독들의 데뷔 작품과 리처드 링클레이터 감독의 실험적인 애니메이션 <웨이킹 라이프>였다. 특히 영화제의 선정위원회가 결정을 내리는 데 14초밖에 걸리지 않았다는 아르헨티나 출신 루크레시아 마르텔의 <늪>은 한여름, 무기력한 어른들 속에 방치된 10대들의 모습을 뛰어난 사운드 활용과 직설적인 화면으로 그려내 아르헨티나 뉴웨이브 시네마의 파워를 과시했다.
예년과 다름없이 대다수의 상영이 매진되는 등 겉보기에는 큰 변화없이 진행된 뉴욕영화제도 테러사건의 여파를 피하지는 못했다. 이란의 마지드 마지디 감독이 방문을 취소하고, 기자회견에서는 테러에 대한 질문이 금기시되다시피 했다. 반면 영화제가 마련한 ‘의미있는 영화 만들기: 국가적 논쟁의 시점에서 영화의 역할’이라는 주제의 특별 포럼에서는 1천명 가까운 뉴욕 관객과 올리버 스톤, 뉴라인 시네마의 사장 등 뉴욕영화계의 주요인사들로 구성된 패널들이 테러사건 이후의 영화계의 미래에 대해 열띤 토론을 벌였다. 과연 미국에서 정치적인 영화가 앞으로 만들어질 수 있을 것인가? 논의는 대체로 비관적이었다. 한 관객이 포럼에서 소리쳤다. 60년대에는 뉴욕에서 모든 영화들을 볼 수 있었다. 그런데 도대체 무슨 일이 생긴 거냐고. 과연 무슨 일이 생긴 걸까? 예술로서의 영화와 오락으로서의 영화라는 오래된 이분법에 정치로서의 영화라는 잊혀졌던 범주가 슬그머니 끼어드는 순간이었다.
뉴욕=옥혜령 통신원▶ “저런 영화가 황금종려상을 받았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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