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omm, susser Tod(오라, 달콤한 죽음이여)
유원지에 간 지 참 오래됐다. 예전에는 메리고라운드를 좋아했고 비눗방울총을 사서 공중에 비눗방울을 날려 후후 불며 기뻤고, 롤러코스터의 맨 끝에 타려고 눈치보고 공룡 미끄럼틀을 타기도 하고, 데어리퀸 아이스크림을 몇번이나 거꾸로 해보며 어떻게 했을까 궁금해하며 아껴 빨아먹기도 했는데, 이 모든 것이 어쩌면 이리도 오래 전 일처럼 여겨지는지, 내가 움직이기를 싫어한 이후부터 모든 것이 잘못되었는지도 모른다.
한번 더 홀로 유원지에 가서 (아직도 내게 그런 게 남아 있다면) 마지막 남은 운을 시험해 볼까보다. 지난 한가위 때 아무도 없는 길바닥에 서서 약올리듯 뜬 달을 향해 “나도 소원 있어∼! 인제 쇼부 함 보시지∼!” 하고 외쳤지만 아무 대답이 없었다. no carrier, 거래는 거절되었음. 아, 일상이 미치게 한다. 이제는 마지막으로 졸타 기계를 찾아갈 때이다.
당신은 무엇이 갖고 싶었던가요. 나는 10년 전에는 무엇이 갖고 싶었던가- 트램폴린, 수륙양용차, 레고, 인형의 집, <천사들의 합창>에서 호르케가 타고 다니는 자동차, 건담 모빌슈트.
하나 이제 이 모든 것을 다 준다 해도 그때로는 못 돌아간다. 억만금을 주어도 그 시절로는 못 돌아간다. 플러그가 뽑힌 졸타 기계여, 수년 전에 그대를 찾아왔던 소년과 내가 같은 소원을 빌 것이라 지레 짐작지 마오. 이미 그 시절을 다 지나왔고, 다시 한번 되풀이하고 싶지는 않아, 하고 말하는 엘리자베스 퍼킨스의 목소리는 언제나 가슴을 칠 만큼 강렬하다. 비록 허공에 떠버린 세월 속에, 헐렁한 옷 소매 안에 연인이 사그라지는 것을 보아도 이를 악물고 차를 몰고 돌아설 수밖에 없는 그녀는 내가 졸타 기계에 아이가 되고 싶다고 빌지 않는 이유를 알고 있으리라.
괜히 어린 시절로 돌아가고 싶다고 말하는 것 따윈 질색이야.
학창 시절로 다시 돌아가고 싶다고 해도, 그 지겨운 숙제와 남아서 하는 청소와 사소한 문제들까지는 떠안을 생각없는 비겁한 사람들, 풋풋한 기분과 아직 어리다고 주어지던 특권과 떡볶이 한 접시에 만족할 수 있던 소박한 마음의 엑기스만 뽑아서 다시 누리고 싶다는 얌체 같은 성정이여.
물론 지나치면 어머니의 잔소리도 그리워지겠지만, 어쩌면 지금 이 순간조차 요만큼씩 그리워질지 모르나 여봐, 또 빳다로 오백대만 맞아보시지, 출석부로 머리통 다섯대만 맞아보시지, 그런 말 쏙 들어가고, 대학 들어가면 살 빠진다더라 하는 말을 듣거나 담배 생각나거나 옆집 오빠한테 예뻐 보이고 싶거들랑 바로 ‘어른되고 싶다’라는 말이 목구멍까지 치밀어오를걸. 물론 나도 그립지 않은 것은 아니나, 한번도 도로 돌아가고 싶다고 추억한 적은 없으므로, 적당히 비겁한 본인은 요만큼만 빌고 싶다. 25센트가 아니라 25만원이라도 처넣을 테니, 카드깡해서 이백오십만원이라도 처넣을 테니, 원한다면 이 가치없는 영혼이라도 팔 테니 세월을 반년만 돌려주어요, 졸타씨.
하지만 졸타 기계는 80년대 이후 멸종했는지 어디에도 없어서- 아직 써클K 앞의 공중전화를 찾지 못했듯이- 그렇기에, 오늘도 나는 묵묵히 일상의 강을 건넙니다, 코퀴나스여. 비통의 물결이여.
Komm, susser Tod
김현진/ 한국예술종합학교에 서식중. 정확한 거처 불명. 키워드는 와일드터키, 에반윌리엄스. <누가 뭐래도 버번은 007이라는 메리트가 있는 것이다!> [email protected]
(하트브레이커는 <하트브레이커스>가 아니라 하트브레이커 ‘더 키드’ 숀마이클님이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