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양이를 부탁해>의 숨은 연기자를 꼽으라면 당연히 다섯 아이들의 손을 거쳐 성장해나가는 고양이 ‘티티’다. 새로운 주인에게 옮겨질 때마다 그 조그만 생명이 보여준 아쉬움 가득 찬 눈망울과 떨어져지기 싫어하는 발동작, 장례식장의 우울한 지영의 얼굴을 근심스런 눈길로 올려다보던 표정까지…. 티티는 온전히 일인분의 연기자의 몫을 해냈다. 그러나 하나의 티티를 연기하기 위해 스쳐지나간 고양이만 12마리. 결국 티티로 명명된 4마리의 고양이들이 스크린을 어슬렁거리기까지 ‘줄무늬 고양이를 구하라’는 미션을 받은 스탭들의 심정은 충무로 하늘에 뿌려댄 ‘찌라시’만큼이나 절박한 것이었다. 편집자
크랭크인 날짜가 다가오면서 나의 스트레스는 거의 극에 다달았다. 누군가가 웃으면서 “고양이는 캐스팅 했어?”라고 묻기만 해도 눈물이 날 것 같았다. 얼굴에 줄이라도 긋고 고양이로 출연하고 싶은 심정이었다.
11월 초 제작부 지영 언니와 처음 고양이를 찾기 시작했을 땐 우리가 원하는 꼭닮은 줄무늬 아기고양이를 다섯 마리쯤 구하는 것은 아무 일도 아닌 것 같았다. 고양이에 관한 그 많은 자료조사를 하면서도 나는 한 가지를 빼먹고 생각하고 있었던 것이다. 고양이는 겨울엔 새끼를 낳지 않는다. 2000년 겨울은 무척 추웠고, 난 태어나서 그렇게 눈이 많이 오는 것을 처음 보았다. 고양이는 나의 무식함을 비웃는 것처럼 어디에도 없었다.
4자와 9자가 들어가는 날은 모란장이 서는 날이다. 그러니까 4일, 9일, 14일, 19일…. 내가 만났던 모든 사람들은 고양이를 찾고 있다고 하면 모란시장을 권했다. 충무로 애완동물 가게에서도, 고양이 동호회에서도, 수의사 선생님도 그곳이 우리가 원하는 집고양이를 구할 수 있는 곳이라고 말했다.
처음 모란시장에 가던 날. 서지영 역을 맡은 옥지영과 함께 갔다. 주연배우 리허설을 진행하고 있었던 나는 적어도 지영과 함께 출연할 고양이를 함께 고르고 싶었던 것이다. 그날 아침 난 커다란 철창에 갇혀 있는 얼굴이 사람만한 식용 고양이를 제외하고는 한 마리도 만나지 못했다. 그 고양이들의 망연자실한 얼굴은 아마도 그날의 내 표정과 닮아 있었을 것이다. 그 이후로 나는 크리스마스 이브도, 설날 연휴도 모란시장에서 보냈다. 하지만 우리가 찾는 고양이는 없었다.
1월 어느날, 눈이 굉장히 많이 내리고 있었다. 사무실이 있는 성북동 일대의 교통은 거의 마비상태였다. 그날 아침부터 나와 지영 언니???서지영인지 확인, 동명이인이면 직함확인????는 이 눈보라를 뚫고 모란시장에 갈 것인가 말 것인가 의논하고 이었다. 날짜를 하루라도 놓치고 싶지는 않았지만 고양이는커녕 사람도 다니지 못할 정도로 눈이 내리고 있었기 때문이다. 이때 전화 한통이 걸려왔다. “저 <씨네21> 보고 전화드렸는데요…” 혜화여고 앞 쌀집에 우리가 그렇게 찾는 아기고양이 형제가 세 마리나 있다는 연락이었다. 그 여자분께 고맙다는 인사를 한 백번쯤 한 것 같다. 눈보라를 뚫고 쌀집을 찾아냈다. 주인 아주머니는 “우리 아가들… 예쁘지!!” 하면서 반갑게 맞아주었다. 어디서도 받아보지 못했던 환영. 들뜬 마음으로 쌀집에 가득 쌓인 사과 상자와 쌀 가마니들 틈으로 가게 안으로 들어갔다. “저, 고양이는…?” 아주머니는 마루바닥 깊숙이 담요로 덮어놓은 곳을 열어서 보여주었다. 그 안에는 30cm나 될 것 같은 줄무늬 고양이가 네 마리 들어 있었다. “저기, 아기 고양이는?” 아주머니는 그 커다란 고양이를 번쩍 들어 안아올려 내 팔에 안겨주었다. 그 녀석은 날카로운 발톱으로 내 손등을 확 그었다. “우리 아가가 낮을 좀 가려서….” 그 커다란 녀석들의 이름이 바로 ‘아가’였던 것이다.
나의 고양이 찾아 삼만리는 크랭크업을 하는 날까지도 계속되었다. 첫 번째 주연 후보였지만 얼룩얼룩하다는 이유로 조연으로도 출연을 못한 ‘뽀뽀’는 지금 우리집에서 호의호식하면서 지내고 있다. 영화에 출연 한 적은 없지만 늘씬한 팔, 다리로 가장 미모를 자랑했던 ‘전구’, 전구는 그래도 리허설 배우로 주연배우들과 호흡을 같이했다. 뛰어난 연기력을 선보인 나의 자랑, 주연배우 ‘조로’, 지금은 의상팀장님 집에 입양된 얼굴이 유난히 까만 녀석 ‘연탄’, 조로의 어린 시절을 연기했던 쌍둥이 남매 ‘흑미’와 ‘백미’, 줄무늬라는 말에 속아서 얼굴도 안 보고 데려오긴 했지만 알고 보니 젖소 무늬였던 ‘엉클 탐’ 그리고 마지막까지 허약한 몸으로 나를 애태웠던 ‘박카스’. 지금 내 소원은 이 녀석들을 업고, 안고 개봉날 극장에 들어가는 것이다. 녀석들은 서로의 연기를 어떻게 평가할까? 손현희/ <고양이를 부탁해> 스크립터▶ 배두나, 이요원, 옥지영, 이은주, 이은실의 영화 뒤 비밀 이야기 (1)
▶ 배두나, 이요원, 옥지영, 이은주, 이은실의 영화 뒤 비밀 이야기 (2)
▶ 배두나, 이요원, 옥지영, 이은주, 이은실의 영화 뒤 비밀 이야기 (3)
▶ 여섯번째 주인공 ‘티티’ 찾아 삼만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