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무살의 고개를 넘어가는 다섯 아이들의 세밀한 감정과 소소한 재미들을 스킬처럼 촘촘히 박아넣은 <고양이를 부탁해>는 어느 하나 빠지면 심심해져버리고 마는 한 그릇의 잘 배합된 요리다. 배우로 탤런트로 패션모델로 CF모델로 저마다 다른 환경에서 분양되어온 서먹하고 낯선 고양이들, 배두나, 이요원, 옥지영, 이은주, 이은실. 이들이 태희로 혜주로 지영이로 비류로 온조로 빚어지기까지, 큰언니 같은 정재은 감독은 아이들의 웃음과 한숨이 뿌려질 인천을 함께 걸으며 각기 다른 그 공간의 느낌을 담아오게 만들었고, 이미 세상의 것이 되어버린 비디오 속 인물들을 슬쩍 훔쳐보게도 해주었으며, 각 인물의 전사(前史)를 상상하게 하고, 신마다 내레이션을 쓰면서 자신의 배역을 이해하고, 친구의 내레이션을 대신 써내려감으로써 서로를 이해하게 만들었다. 그렇게 세번의 계절이 지나가는 동안 아이들은 하룻밤 빚어낸 뽀얀 인형이 아니라, 20년간의 흔적을 고스란히 안은, 그 작은 가슴 안에 희로애락을 동시에 품은 사람냄새나는 연기를 필름 위로 꼭꼭 밟아넣을 수 있었다.
“딴 사람이 보면 일기가 아니잖아요.” 정재은 감독의 단편 <도형일기>의 소녀가 일기검사를 하는 선생님에게 말했듯이, 처음엔 “딴 사람 보여주면 절대 안 돼욧!” 하며 새침하게 고개를 젓던 다섯 고양이들은 결국 쑥스러울 수 있는 고민의 흔적들이 공개되는 것을 허락해주었다. 지나간 것들은 모두 부끄럽다. 하지만 부끄럽다는 것은 오로지 성장한 사람만이 알게 되는 고마운 감정이 아니던가. 편집자
인천을 닮은 소녀들, 인천으로 떠나다
배두나가 본 인천
내가 그동안 생각했던 인천은…, 좀 지저분하고 조그만 도시일 거라고 생각했는데, 깨끗하고 생각보다 컸다. 그렇지만 어딘가 우울해보이는 느낌이 있었다. 약간 비가 내리면 어울릴 것 같은 찝찝한 느낌…. 우·하·하. 인천여상, 인천항 여객터미널, 또 인천역사 밑 상가, 자유공원, 그리고 거기가 어디더라…. 라자가구 공장 뒤의 부둣가…. 가장 인상 깊었던 곳은 그 물 빠진 부둣가…. 거기서 태희랑 지영이가 앉아서 술 마실 모습을 상상해봤다.
처음에 감독님이 인천의 많은 이미지들이 우리의 캐릭터를 설명해줄 거라고 했던 말씀이 떠올랐다. 그게 정확히 무엇일지, 영화로 만들어지기 전에는 배우들조차도 잘 파악하기 힘들겠지만…. 쌍둥이가 물건 팔 인천역, 지영이가 혜주한테 고양이를 받는 장면, 친구들끼리 즐겁게 사진 찍는 모습, 찬용이랑 혜주를 남겨놓고 뛰어가는 친구들, 그 장면의 장소에 가서 상상을 해보니 약간이나마 그 느낌을 알 수 있을 것 같다.이요원이 본 인천
나는 인천이란 곳을 처음 가봤다. 월미도 인천 앞바다…, 인천이란 곳은 사람들의 입을 통해 많이 들어봤지만 내가 직접 가본 것은 처음이었다. 인천의 곳곳을 돌아다니면서 내가 여기서 20년을 살았다면… 하는 생각을 했다. 아직 인천이란 곳은 굉장히 낯설지만 분명 그곳에서 우린 놀고, 생활하며 그 나름의 소중하고 즐거운 학창 시절을 보냈으리라….옥지영이 본 인천
서울과 가까운 지역, 그러나 서울과는 굉장히 다른 느낌. 건물들이 대부분 낮아서 그런지 모르겠지만 인천이란 곳의 썰렁함과 허전함 그리고 삭막함이 느껴졌다. 서울이라는 곳에 감춰져 빛을 보지 못하는 곳. 인천이라는 도시의 왠지 모를 소외감이 20대 아이들과 비슷한 것 같다. 수많은 공장들 중에서 지영이가 일했던 곳…. 자신의 꿈을 펼치지 못하고 인천이란 공간에 갇혀 있는 그 아이. 떠나고 싶지만 자신의 처지를 알기 때문에 갈 수 없는 지영…. “인천은 분명 주변에 있는 도시지만, 그렇다고 ‘우울한 초상’으로 그리고 싶진 않았어요. 주변에 있지만 강한 내성을 가진 도시이고, 항구를 끼고 있는 열려 있는 도시죠. 또한 이주민들과 떠돌이의 도시기도 하고요.
아이들과 영화의 주요 공간을 함께 가고 그 공간에 대한 느낌을 적어보면서 자신들의 생각을 정리할 수 있었던 것 같아요.” 단편 <둘의 밤>을 찍으며 처음 인천이란 공간의 마력에 빠져들었다던 정재은 감독은 <고양이를 부탁해>에서 인천을 단순한 배경으로 놔두지 않았다. 을씨년스런 부둣가, 미로처럼 돌아가는 지영집 골목, 미얀마 총각들이 “우리 한국 여자 좋아해” 하며 서툰 유혹을 걸어오던 휑한 월미도 유원지는 백마디 대사보다 더 절실히 아이들의 심정을 보여주는 공간으로서의 역할을 해낸다. 주변부의 답답함을 안고 있지만 언제라도 떠날 수 있는 항구와 공항을 터놓은 인천의 모습은, 천만개 우울한 요소들을 가지고 있지만 단 하나 꿈꾸는 마음만은 따로 숨겨둔 아이들과 닮아 있다는 것을 이 어린 배우들이 알아주길 바라는 마음이었을까?▶ 배두나, 이요원, 옥지영, 이은주, 이은실의 영화 뒤 비밀 이야기 (1)▶ 배두나, 이요원, 옥지영, 이은주, 이은실의 영화 뒤 비밀 이야기 (2)
▶ 배두나, 이요원, 옥지영, 이은주, 이은실의 영화 뒤 비밀 이야기 (3)
▶ 여섯번째 주인공 ‘티티’ 찾아 삼만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