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연 감독과 영화는 별개인가?
윤: 그런데 에서 보면 육체관계라는 게 아예 없죠, 놀이동산 갔다 와서 군대 얘기 하면서 무서우니까 살짝 팔짱끼는, 그거 하나였는데 <봄날…>에서는 구체적이 됐어요. 찍을 때, 내 생각에는 감독 자신이 육체관계가 아니라도 사랑이 성립할 수 있다고 생각하지 않았나 하고.
허: 은 연애하기 전 이야기고….
윤: 거기서도 의도만 있었다면 충분히 설정 가능했죠.
허: 왜 그랬을까…. 어쨌든 만들고 났더니 제가 연애하면서 여자 손도 안 잡고 그런 남자로 생각을 해서…. (일동 웃음) 절대 그런 게 아닌데. (웃음)
윤: 한국에서는 감독과 작품을 동일시하는 게 있는 것 같아요. 내가 하고 싶은 얘기는 순수한 영화를 찍었다고 해서 감독도 순수한 사람으로 보는 것은 상당히 위험하다는 거죠. (일동 폭소) 그런 생각이 들어요. 영화 하면서 내가 만드는 세계는 나의 정확한 거울일 수도 있지만 내가 꿈꾸는 세계일 수도 있어요. 내가 순수하지 못하기 때문에 순수한 것을 찍고 싶은 건가.
허: 내가 그랬나보다. (웃음)
윤: 그런 열망이 있는 거지. 그러니 영화라는 것을 영화적으로만 접근해줘야 하죠. 감독과 작품을 동일시하는 것은 좀…. <소름> 찍고 났더니 완전히…. (웃음)
허: <메멘토>는 또 아닐 것 같은데.
윤: <메멘토>를 보면 또 굉장히 지적인 사람으로 생각한다든지 하는 거요?
허: 약간 이미지가 달랐어요. 처음 만났을 때 <메멘토>를 먼저 본 상황이었는데 그 느낌이 굉장히… 하여튼 느낌이 달랐던 것 같아요.
윤: <메멘토>가 서울단편영화제에서 상을 받았는데, 자원봉사자들이 그 감독이 오면 굉장히 여리고 그럴 것이다 그랬나 본데, 웬 소도둑놈이 오니까…. (일동 웃음) ‘감독 맞아?’ 이런 소리 나오고.
허: 본인이 직접 출연까지 했고, 그랬는데 본인과 좀 다른 건가요, 어떤가요.
윤: 세간에서 알다시피 큰 사건이 있었고, 거기로부터 자유로울 수는 없었던 것 같아요. 사고 뒤 한달 만에 미국으로 갔고. 그전에는 내가 무서움을 몰랐어요. 한번도 시체를 본다는가 한 적이 없어요. 그 사건이 있고나서 처음 시체를 본 거예요. 미국 땅에 떨어지니까 제일 큰 변화가 잘 때 불을 못 끄고 자는 거예요. 그 다음에 생활을 같이 했으니까 침대를 같이 썼을 것 아니에요. 그런데 침대에서 잠을 못 자요. 소파에서 TV 보다가 거기서 지쳐 잠을 자는 거예요. 한 학기 동안을. 누구도 그 기억에서 자유로울 수 없죠. 그 자유로울 수 없는 사람이 뭘 만드는 데 그게 투영이 안 될 수 없잖아요. 어떤 형태로든. 뭐 그런 거니까 연관이 없다고 볼 수는 없겠죠. 그래서 허 감독 영화를 보면서 제일 부러운 게 원만한 삶을 살았던 사람들의 얘기가 오히려 가슴에 와닿아요. 내가 할 수 없는 부분의 이야기다, 하는 것 때문에.
내가 만드는데, 다음 영화는 달라질까?
윤: 왜 마지막에 벚꽃길장면 있잖아요, 저는 거기서 상우가 할머니 돌아가셨어, 얘기할 줄 알았어요.
허: 벚꽃길장면 같은 경우는 판단을 잘 못하겠더라고요. 한 테이크는 감정이 너무 많이 나왔고, 그게 지금 들어가 있는 건데. 다른 것은 너무 차가운 느낌으로, 화분 주고 상우가 확 돌아서 버리거든요. 그 테이크에 그 말을 해요. 안 하는 느낌이 더 괜찮았어요.
윤: 그 테이크에서 유독 망원렌즈를 썼는데 뒤를 다 지워버리고 싶은 생각이 있었나, 아니면.
허: 꼭 그런 생각이 있었다기보다는, 인물이 조금 멀리서 다가오고 그 인물이 커져보였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어요. 표정이 보여야 하기 때문에. 방법은 컷을 나누지 않는 이상은 망원을 쓰는 수밖에 없더라고요. 망원을 쓰니까 포커스 아웃되는 느낌이 나쁘지 않더라고요.
윤: 스탭이나 배우와도 상당히 대화를 많이 하면서 작업한 것 같아요.
허: 내 생각이 옳다고만 생각하진 않거든요. 연기자들에게도 나 이거 잘 모르겠는데 어떡해야 좋은지 물어보고, 촬영감독과도 나는 이렇게 생각하는데, 내가 잘못 생각하는 것일 수도 있을 것 같다, 어떻게 생각하는지, 이렇게 물어보는 그런 방식을 많이 택한 것 같아요.
윤: 저도 현장의 즉흥성을 많이 살렸어요. <소름>에서 용현과 선영이라는 인물이 있는데, 마찬가지로 고민은 두 사람이 사랑했을까, 하는 점이었어요. 두 사람에게 물어보기도 하고. 그러면 배우들은 감독님이 시나리오 쓰신 거 아니에요? 그거 저희한테 물어보면 어떡합니까, 이러는데. (일동 웃음) 내 얘기는 직접 대면하고 연기해보면 감정의 교류가 있고 거기서 느끼는 점들을 내게 얘기해달라는 것이었죠. OK 기준이 배우가 자기 감정에 충실한가였어요. 본인의 지닌 감정을 최대한 빼주는 게 좋지, 어떤 모델을 놓고 그렇게 해달라는 주문은 조금 무리가 있는 것 같아요.
허: 그런 것도 있더라고요. 감독이 정해서 가다보면 분명 아닌 길도 있다구요. 그러면 번복을 해야 하는데, 그건 좀 그렇잖아요. 그래서 내가 먼저 OK를 내기보다는, 좀 기다렸다가 하죠. 그 사이에 무슨 얘기가 나오잖아요. 촬영이 저건 좀 이상한 것 같다거나 배우가 이상하다거나. 나는 OK 냈는데 그 다음에 이거 다시 찍지, 이런 것은 좀 쪽팔리죠. (일동 웃음)
허: 다음 작품은 어떤 것 하실 생각이세요? 지금 트리트먼트를 쓰신다고 들었는데.
윤: 저는 멜로를 하고 싶었어요. 써놓은 시나리오는 없었고. <소름> 찍으면서 사실 정신적으로 굉장히 안 좋았어요. 확실히 이렇게 극악무도한 영화를 찍으니까. (일동 웃음) 삶이 뭔지 운명이 뭔지 우리 한번 찍어보자 이러다 보니, 끝나고 나서 굉장히 허탈하더라고요. 부작용도 많고, 한계도 많고. 그래서 밝은 얘기를 해보고 싶었어요. 그런데 중간에 다른 시나리오가 하나 들어온 게 있어서, 그게 되면 약간 필름누아르풍의 영화가 되지 않을까.
허: 저는 이번 영화를 하면서 연애영화 지겹다, 재미없다, 빨리 장가를 가야지, 그런 얘기를 했는데. 한계를 알겠어요. 어떤 얘기든 내가 만들게 되면 비슷한 게 나올 것 같아요. 그렇게 한번 더 해보는 게 좋은 건지, 아니면 거기에 변화를 주기 위해 다른 사람이 쓴 것으로 해볼까, 그게 더 재미있을 것 같기도 하고…. 그런데 어떤 것을 선택할지는 아직 모르겠어요. 좀더 재미있게 할 수 있는 게 있었으면….
윤: 허 감독이 결혼하고 멜로 찍으면 좀 다른 멜로가 나올 것 같아요, 이젠. (웃음)
허: 아이고…. (웃음)문석 [email protected], 사진 오계옥 [email protected]▶ 허진호와 <봄날은 간다>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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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허진호의 낱말풀이
▶ <소름>의 감독 윤종찬, 허진호를 만나다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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