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화 ‥‥> 나이가 들면서 좀더 재미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더 자주 한다. 운동도 좀 하고 취미도 즐기고. 난 게으르다. 그래서 강박관념이 많아지고 생활 자체가 닫혀 있는 것 같다. 나야말로 생활을 발견해야 하지 않을까 싶다. 홍상수 감독님 영화를 보고 도움을 얻어야겠다.운동장 ‥‥> 에도 나오지만 운동장의 느낌을 많이 좋아한다. 초등학교 2학년 때 할아버지가 돌아가셨다. 그날 오후 집안 어른 중 누군가가 학교로 나를 데리러 왔다. 할아버지가 죽었다는 말을 듣고 조퇴해서 교실을 나와 가로질러 걷던 운동장의 기억이 아직도 강렬하다. 연출부로 일한 <그 섬에 가고 싶다>에서도 안성기씨가 자신의 어린 모습을 보는 운동장장면이 오래 마음에 남더라. 마루 ‥‥> 평소에도 열려 있는 공간을 선호한다. 마당과 하늘, 비와 햇빛을 볼 수 있는 마루가 좋다. 일본 가옥들은 전통적인 열린 구조를 잘 현대화한 것 같아 부럽다. 영화 속 상우네 집은 어렵게 찾았는데, 모든 부분을 영화에 담을 수는 없었고 어쩌다보니 마루장면이 너무 많아졌다. 시사회에서 영화를 보며 “이렇게 많이 나올 줄 알았더라면 마룻바닥에 좀더 좋은 자재를 깔 것을” 하고 후회했다. 웃음 ‥‥> <봄날은 간다>를 보고 많이들 웃는다. 관객이 웃을 때가 제일 좋다. 재미있게 보고 있음을 손에 잡힐 듯 느낄 수 있어서. <봄날은 간다>의 어떤 부분은 로맨틱코미디라고 해도 좋다고 생각했다. 반면 음악평론가가 “소화기 사용법은 몰라도 분위기 전환법은 알아요” 하는 대목은 웃어줬으면 했는데 반응이 썰렁했다. 치매 ‥‥> 친할아버지와 외할머니가 치매를 앓다 돌아가셨다. 치매에 걸리면 먼 과거의 기억이 도리어 살아오는가 하면 별안간 맑은 정신이 돌아오기도 한다. “버스와 여자는 잡는 게 아니란다” 하는 대사도 그래서 넣어도 된다고 생각했다. 외할머니는 열아홉, 스물 적 이야기를 열심히 했고 외삼촌을 외할아버지로 부르셨다. 가시던 날 몸을 정갈히 씻고 숨을 거두신 할아버지는 난데없이 “진호는 자기 갈 길을 잘 갈 테니 걱정하지 말아라”라는 유언을 남기셨다고 한다. 그 말씀 덕택에 식구들은 내가 직장을 그만두고 갈 길이 불분명해 보이던 시기에도 크게 걱정하지는 않았다. 은수 ‥‥> 상우와 은수는 행복의 길이 달랐던 사람들일 수도 있다. 상우는 한 사람만 사랑하는 편이,은수는 이리저리 옮겨 날아다니는 편이 더 행복한 인간일 수 있다. 그건 어찌할 수 없는 일이다. 하지만 내겐 한 사람만 사랑할 수 있는 상우 쪽이 행복해 보인다.그에게는 적어도 무형의 위안을 줄 수 있는 가족이 있다. 돌아볼수록 은수가,그 애가 안스럽다.오즈 야스지로 ‥‥> 로 잠깐 후쿠오카영화제에 갔다가 오즈 야스지로 회고전에서 세편의 영화를 봤는데 <만춘>에 내 영화처럼 발톱 깎는 장면이 나와서 무척 놀랐다. 어쩌면 실제로도 나와 생각하는 것이 비슷한 사람이었을지도 모른다 싶었다. <동경이야기>에서 온천에 간 노부부가 바닷가에 우두커니 나란히 앉아 있는 순간도 좋아한다. 널리 알려진 프레임이라 그런가.
▶ 허진호와 <봄날은 간다> (1)
▶ 허진호와 <봄날은 간다> (2)
▶ 허진호의 낱말풀이
▶ <소름>의 감독 윤종찬, 허진호를 만나다 (1)
▶ <소름>의 감독 윤종찬, 허진호를 만나다 (2)
▶ <소름>의 감독 윤종찬, 허진호를 만나다 (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