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등학교 2학년의 어느날, 허진호 감독은 혼자서 전주행 밤차에 올랐다. 일곱살에 서울로 가족이 이사오기 전까지 살았던 그 도시는 , 소년의 머릿속에서 느리게 조금씩 희미해져가고 있었다. "열차 안에서 파는 술을 사서 마셨어요. 옆자리의 대학생들이 어느 학교 몇 학년이냐고 물어봐서 무슨 대학교 2학년이라 거짓말을 했던 것 같아요. 전주는 기억과는 달랐어요‥‥. 친척집에는 들르지 않았고, 그냥 만화가게에서 자고 새벽에 올라왔어요." 왜 그날 갑작스런 여행을 생각했을까 물으려는데 대답이겠다 싶은 토막난 말들이 스쳐간다. "작은아버지가 불던 휘파람 소리, 친구들과 올라가서 놀았던 동산, 뭐 그런‥‥." 사라진 것들의 호출에 이끌려 먼 외출을 감행하고 조용히 귀가했던 엉뚱한 열일곱살 소년은 나이를 먹어 영화감독이 됐다. 열렬하게 집요하게 소원한 건 아니었다. 일년 반쯤 다닌 전자회사를 그만두고 전공한 철학 공부를 더 할까, 다른 일을 해볼까 일년쯤 물끄러미 생각하다가 들어간 영화아카데미에서도 허진호 감독은 평생 영화를 할 맘은 안 들었다. 그러다 졸업할 때가 됐고 유영식 감독과 졸업작품 <고철을 위하여>만들다가 그는 비로소 생각했다. 영화 만드는 일이 재미있구나. 나처럼 게으른 사람이 이렇게 열심히 하는 일도 있다니.멜로 아닌 멜로드라마허진호 감독은 좀체 조바심을 내지 않는다. 그의 두 번째 영화 <봄날은 간다>는 처녀작 가 환대받은 지 꼬박 3년 반 만에야 수줍게 베일을 걷었다. 사랑과 상실에 관한 두 영화는 서로 닮았고 또 허진호 감독을 많이 닮았다. 그래서 이제 막 2악장을 마쳤을 뿐인데도 평자들에게 '허진호 영화'에 대한 소고(小考)를 은근히 재촉한다. "사랑도 언젠가는 추억으로 그친다는 것을 나는 알고 있었습니다"라고 고백했던 의 정원은, <봄날은 간다>의 상우를 병들게 한 실연을 인생의 봄날 어디쯤에서 겪었을 터다. 두 영화는 모두, 허진호 감독 개인에게 빛나는 순간을 가장 많이 선사했을 연애와 가족의 정경을 응시한다.그러나 허진호 러브스토리는 관습적인 멜로드라마와는 판이한 방식으로 우리에게 구애한다. 어떤 장르보다 관객의 감정을 증폭시키는 것을 목표로 기능적으로 조율되게 마련인 멜로드라마 내러티브의 전형은 그의 영화와 상극이다. 그나마 사랑은 주인공의 인생에 어떤 유형(有形)의 결실도 남기지 않는다. 결혼도 아이도 극단적 파멸도 뒤늦게 온 눈물겨운 고백도 없다. 다만 사랑이 '여기' 있었다는 기억이 있을 뿐이다.대신 <봄날은 간다>는 우리의 연애에서 지극히 중요하고 결정적이었으나 대다수 멜로드라마 속에서 합당한 대접을 받지 못했던 모멘트들을 조심스럽게 건져올려 귀하게 다룸으로써, 실제 연인들을 웃기고 울리는 것은 사별이나 불치병, 배신, 동화 같은 프로포즈 등의 '이벤트'가 아님을 알고 있는 관객을 적잖이 감동시킨다. 허진호의 영화는 한편 이후 등장했던 잔잔한 리듬, 자잘한 일상의 천착을 미덕으로 내세웠던 일련의 멜로드라마와도 금을 긋는다. 와 <봄날은 간다> 역시 사소한 스케치로 장면장면을 채워가지만 그것들은 그저 나열되는 것이 아니라 포개지고 응결되어 죽음과 사랑에 대한 하나의 신중한 '견해'로 결정(結晶)을 맺는다.게으른 감독의 느린 발견
"한 호흡의 단순한 동작을 담은 5초짜리 컷은 제대로 됐는지 여부를 쉽게 가릴 수 있지만 1분, 2분이 넘어가는 컷은 OK를 내는 일 자체가 어렵다. 시간이 길어지면 감독이 컨트롤할 수 있는 요소만으로는 완전할 수 없는 부분이 생기기 때문이다." 이렇게 말하는 허진호 감독에게 영화 만들기는 발명이라기보다 일종의 느린 발견에 가깝다. 허 감독은 와 <봄날은 간다>를 구체적인 콘티나 붙박이 대사없이 찍었다. 두 영화 모두 감독을 포함한 서너명이 함께 시나리오를 썼고, 스토리가 하도 오래 곰지락곰지락 만들어져서 감독 스스로도 얼마에 걸쳐 완성됐는지 기억을 못할 뿐 아니라 현장에서도 변화가 다반사라 그 장면은 이런 버전이 있었다고 설명하다가 "아참, 그건 안 찍었구나" 소스라치기도 한다. '게으른 천성'이 본인이 꼽는 이런 작업방식의 첫 번째 이유지만, 그의 영화를 보면 선택의 여지가 없다. 어느 영화기자의 표현을 따르자면, 똑같이 연애의 각론에 능한 감독 에릭 로메르가 인생의 한 조각을 잘라내 그것을 들여다보는 쪽이라면, 허진호 감독의 멜로드라마에는 허리가 잘리지 않은 '흐름'으로서의 시간이 있다. 그러므로 케메라에 담길 공간과 인간과 공기가 눈앞에 한데 어울려 있지 않은 상태에서, 머리로 하는 채비와 계획은 허진호 감독에게 별반 소용이 닿지 않는다. 때로 석연치 않아 재활영을 할 때마다 이미 본직적인 무엇이 사라지고 없음을 통감하는 것도 비슷한 연유다. <봄날은 간다>에서 숏의 길이를 배우의 리듬에 종속시키고, 대상을 바라보는 거리를 카메라와 피사체의 거리로 직역하고, 두 연인이 마주볼 대는 반응숏 대신 망원렌즈를 이용해 동시에 발생하는 두 사람의 여러 가지 감정을 리얼타임으로 잡는 허진호 감독의 '밀착' 연출은, 관객이 러닝타임 내내 영화 속 시간의 부피와 무게를 고스란히 같이 짊어지고 걸어가게 만든다. "우리, 처음에 참 좋았는데." 사랑이 최초의 섬광을 잃었을 때 은수는 그렇게 말한다. 편집과정에서 이 대사가 삭제되지 않았더라면 모르긴 해도 관객은 아련한 심정으로 동조했을 것이다. 그래, 그때 참 좋았는데.에 비해 위태로워보일 만큼 두 연인의 심리적 시간 한 가닥에 영화적 시간을 의존한 <봄날은 간다>는 '편협한' 대신 대단한 집중력을 보여준다. 자연인으서의 배우와 현장 공기를 끌여들여 시추에이션과 동선을 잡아간 <봄날은 간다>의 연출방식은 감정를 바라보는 시선을 깊게 했다. 은수의 허밍을 상우가 녹음한 <사랑의 기쁨>은 제목과 달리 사랑의 슬픔만 영원히 남았다는 가사를 들려준다. 감정은 균질한 물건이 아닌 것 같다고 입버릇처럼 말하는 허진호 감독은 <봄날은 간다>에 연애의 양가 감정들이 예민한 비늘은 맞대고 뒤척이는 모습을 두 배우의 조력으로 잡아낸다. 상우와 은수는 항상 밀어내는 동시에 잡아당긴다. 은수는 첫 입맞춤과 이어지는 포옹을 제지한 다음, 술 마신 이튿날 아침밥 먹기 싫다며 상우를 밀쳐낸 직후, 무심코 팔을 내밀어 상우의 몸을 살짝 잡는다. 상우 역시 "헤어지자" 말해버린 뒤 가만히 은수의 손을 잡았다가 놓는다. 마지막 이별의 순간에도 미련의 시선은 엇박자로 교차된다. 사랑은 대개 그런 것이다. 묻는 신에서, 은수가 실은 헤어지려고 찾아온 것일 수도 있다는 이야기를 이영애와 나눴다고 한다. 두 사람의 결론은 은수 자신도 상우의 얼굴을 보고 싶은 건지, 헤어지기 위해 간 것인지 정확히 몰랐으리라는 것이었다.▶ 허진호와 <봄날은 간다> (1)
▶ 허진호와 <봄날은 간다> (2)
▶ 허진호의 낱말풀이
▶ <소름>의 감독 윤종찬, 허진호를 만나다 (1)
▶ <소름>의 감독 윤종찬, 허진호를 만나다 (2)
▶ <소름>의 감독 윤종찬, 허진호를 만나다 (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