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0년대 - 시대의 우울을 녹인 ‘속곳 바람’
1981년 불황, 불황, 불황. 신군부의 군화정치에 짓밟힌 것이 영화뿐이겠느냐만, 한가위 명절에도 극장들은 상영중인 영화 간판을 계속 걸거나 창고 속 영화들을 다시 꺼내는 수세적 방책으로 일관했다. 김영애, 원미경 주연의 <빙점 ’81>도 꽁꽁 얼어붙은 추석에 재상영을 거듭했고, <닥터 지바고> 등의 외화들도 당시 호주머니 사정이 여의치 않은 극장들에겐 요긴했다. 그러나 영화가 어둠 속에서 생명을 얻는 빛이라는 걸 새삼 깨닫게 되는 순간도 있었다. <바람불어 좋은 날>과 함께 리얼리스트가 되어 돌아온 이장호 감독의 <어둠의 자식들>(25만5817명)이 추석을 관통, 연장상영됐다. ‘언제나 거기 있던’ 임권택 감독이 <만다라>(12만8932명)로 재발견된 것도 이때였다. 외화로는 <차타레 부인의 사랑>(26만3513명), (28만4285명), <캐논볼>(20만4723명) 등의 신작들이 추석명월과 대련, 좋은 반응을 얻었다. 개봉작 중 <차타레…>와 은 국내 검열을 의식해 도중 수입사가 바뀌기도 했다. 결국 용기있는(?)자가 흥행선을 집어탄 셈이 됐다. 관객 수와 극장 매출액은 예년에 비해 크게 감소했지만, 다양한 장르의 영화를 볼 수 있었던 한해.
1985년 어우동의 ‘속곳 바람’은 뜨거웠다. 추석을 시작으로 3개월 동안 개봉관인 단성사를 다녀간 관객만 39만2678명. “계집이 사내죽일 때 칼 쓰는 줄 아세요”라며 웃음을 흘리는 ‘이조(李朝) 최대의 스캔들 메이커’ 어우동의 등장으로, 같은 시기 선보였던 영화들은 흥행가도에서 일찌감치 떨어져나갔다. 열풍까지는 아니었지만, 추석 시즌 극장가에서 <어우동>의 독주는 예상한 일이었다. <무릎과 무릎사이>에 이어 링에 올라선 이장호-이보희 콤비에 대항할 만한 작품이라고는 찾아볼 수 없었기 때문. 경쟁작인 프랑스영화 <마이 뉴 파트너>가 7만3천명, <싸이렌스>는 11만명을 불러모으는 데 그쳤다. 대적할 만한 작품으론 늦여름 개봉해서 장기상영중이던 <람보2>뿐이었다. <어우동>이 배창호 감독의 <깊고 푸른 밤>(49만5573명)과 함께 흥행 쌍두마차를 끌었지만, <킬링필드> <인디아나 존스> <람보2> 등 여름을 강타한 외화 ‘삼총사’를 막진 못했다. 80년대 초반, 외화와 거의 대등한 수준이던 한국영화 점유율이 17% 이상 떨어졌고,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스크린쿼터 폐지하라는 미국의 압력이 시작되었다. 그 압력에 개정된 영화 관련법에서 외화수입제한, 외화수입액상한제 등이 날아갔고, 영화사 설립이 등록제로 완화됐다. 법개정의 진짜 핵심은 할리우드 직배 허용. 이를 발판으로 87년 직배사가 한국에 상륙한다.
1988년 ‘지상 최대의 쇼’ 올림픽을 앞두고, 영화계는 그야말로 초비상이었다.걸어둔 영화들마다 흥행이 바닥을 쳤다. <뽕2> <변강쇠3> <이조춘화도> 등 추석 개봉작도 예외는 아니었다. 외화도 상황은 마찬가지. <더 플라이>(18만5천명)와 <잡초>(13만8천)만이 그럭저럭 관객을 불러모았다. 전년 대비 관객 수는 7.5% 상승했다지만, 벤 존슨과 칼 루이스의 트랙 위 경주 탓에 9, 10월엔 오히려 관객이 줄었다. 45만9천명을 동원, 최고 히트작이 된 <다이하드> 역시 올림픽 열기에 밀려 초반 부진을 면치 못했을 정도였다. 추석 개봉작 중 한국영화로는 <매춘>(43만2천명)만이 유일하게 관객몰이에 성공했다. 올림픽을 앞두고 이뤄진 동구권문화개방 물결을 타고 소련영화 <전쟁과 평화>가 처음으로 수입, 개봉해서 11만1천명의 관객의 호기심을 자아낸 것도 이즈음의 화젯거리. 한편 할리우드 직배사 UIP가 첫 직배영화 <위험한 정사>를 상영해 국내 영화인들의 거센 반대운동을 불러일으켰다.
1990년대 - 직배의 물량공세를 뚫고 점유율 40%까지
1990년
역시 <장군의 아들>이었다. 초여름 개봉했으나 극장행렬은 좀처럼 줄지 않았다. 추석 극장가 수성은 수월했다기보다 당연한 일이었다. 하지만 막상 추석을 하루 앞두고서 한국과 소련의 수교가 이뤄졌고, 연휴에 진입해선 동독과 서독의 통일 소식이 전해져오는 통에 추석특수는 소강상태에 접어들었다. 개봉작인 박철수 감독의 <물 위를 걷는 여자>가 13만명을, 홍콩영화 <첩혈가두>가 15만명을 겨우 넘겼을 뿐, <지옥의 반담>(5만3677명), <단지 그대가 여자라는 이유만으로>(5만5천명) 등은 그저그런 성적표를 남겼다. 80년대 흥행제조사였던 배창호 감독의 <꿈>도 3만명을 채 넘기지 못하고 분루를 삼켰다. 이에 비해 직배사들의 항해는 순조로웠다. 일례로 연말 1개월 상영만으로, UIP의 <사랑과 영혼>은 56만명을, <다이하드2> 역시 38만7천명을 끌어모았다. 외화의 관람인원수가 한국영화의 5배에 달할 정도로 격차가 심했다. 그래도 1990년은 한국영화의 회생을 점칠 수 있는 해였다. <남부군>의 정지영, <추락하는 것은 날개가 있다>의 장길수 감독 등 중견감독들의 영화가 30만명 이상의 관객을 불러모으는 등 호응을 받았고, 박광수(<그들도 우리처럼>), 장선우(<우묵배미의 사랑>) 등 두 중량감 있는 신인감독들의 신작들이 모습을 드러낸 해이기도 했다.
1994년 외화의 프린트 벌수 제한이 풀린 94년 추석 극장가는 한국영화와 외화의 명암이 확연히 엇갈렸다. 단성사와 국도극장을 진지로 삼은 <태백산맥>은 개봉 이전 임권택 감독의 명성뿐 아니라 총제작비 30억원, 촬영횟수 132회, 7천명의 엑스트라 등 제작부터 화제를 불러모았던 작품. 장현수 감독의 <게임의 법칙> 역시 한국적인 누아르영화라는 호평을 등에 업고서 출정했다. 하지만 결과는 참패. <태백산맥>은 약 23만명, <게임의 법칙>은 13만4천명에 그쳤다. 반면, 같은 시기 포문을 연 <트루 라이즈>와 <칼라 오브 나이트>는 10월까지 연장상영하며, 각각 87만4664명과 43만9391명을 끌어들였다. 뒤이어 개봉한 장선우 감독의 <너에게 나를 보낸다>(38만1578명)와 강우석 감독의 <투캅스>(86만400명)가 만회에 나섰지만, 전국 50개 스크린에서 와이드 릴리스 전법을 구사, 80만명 이상을 동원한 <라이온 킹> <스피드> <쉰들러 리스트> 등 직배사들의 물량공세를 막아내기엔 역부족이었다.
1997년 97년 추석, <접속>과 <창-노는계집 창>이 벌인 ‘흥행대국’은 볼 만했다. 장윤현과 임권택, 명필름과 태흥영화, 금융 자본 대 충무로 자본이라는 신구 대결구도도 흥미로웠고, 충무로의 명보극장과 종로의 피카디리 사이의 자존심 싸움이 걸린 한판이라는 점도 놓칠 수 없었다. 박빙의 승부는 계속됐지만, 2주가 지나면서 같은 시기 단성사와 중앙극장에서 개봉했던 정지영 감독의 <블랙잭>이 떨어져나갔고, 명보극장과 같은 상권에 있는 중앙극장에 <접속>이 들어가면서, 승리의 여신은 <접속>(67만5천명)의 편에 선다. 60만명이라는 고지를 놓고서 서울극장의 <에어포스 원>과 <접속>의 제2라운드가 이때부터 시작된다. 한편, 할리우드 직배사는 88년 국내 상륙 이후 가장 많은 1960만명을 동원했고, 본국에 송금하는 로열티 액수만 280억원을 상회할 정도로 기세를 더했다. 하지만 더이상 한국영화는 할리우드, 홍콩영화에 이은 ‘넘버3’의 처지가 아니었다. 혼자 튀는 대박영화는 없었지만, <편지>(60만3701명), <창>(41만1591명), <비트>(34만9800명), <할렐루야>(31만1천명) 등 5위권 이내의 영화들이 고른 지지를 얻었던 해였다. 또한 97년 한국영화 시장점유율 25.4%는 이후 40% 시대를 열기 위한 이정표이자 서막이기도 했다.
그리고 2001년 추석, <봄날은 간다>와 <조폭 마누라>, 한국영화 두편이 극장 잡기 경쟁을 벌이고 있다. 여기에 아직 대작 <무사>가 버티고 있다. 세편의 영화야 스크린을 하나라도 더 잡기 위해 보름달 아래 안간힘을 쓰겠지만, 한여름 <엽기적인 그녀>와 <신라의 달밤>에 혼쭐난 직배사들의 눈엔 한국영화의 도원결의로 보일지도 모를 일이다.
글 이영진 [email protected]
참고자료 <한국영화작품전집>(영화진흥공사), <한국의 영화포스터Ⅰ, Ⅱ, Ⅲ>(정종화, 범우문화문고), <한국영화연감>(영화진흥공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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