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상작을 발표하는 순간, 다양한 국적, 다양한 색깔의 영화를 불러모으마던 베니스의 약속은 완성됐다. 금사자상을 수상한 인도의 <몬순 웨딩>과 심사위원 대상을 수상한 오스트리아의 <한여름>은 그 배경과 성격이 판이한 작품. 어느 한편에 열광할 취향이라면, 다른 한편을 지지할 수는 없을 것이다. 그렇지만 두 작품은 어떤 면에서는 서로 참 많이 닮아 있다. 인도의 ‘몬순’과 오스트리아의 ‘한여름’. 공교롭게도 지역 특유의 날씨를 제목으로 갖다붙인 두 영화는 ‘지금 여기’에 관한 개성있고 신랄한 보고서다.
흥겨운 축제의 장을 연 <몬순 웨딩>
미라 네어가 <몬순 웨딩>을 들고 베니스에 날아온 것은 아주 영리한 선택이었다. 어떤 기대도 의도도 없었다면, 운이 아주 좋았던 게다. 일찌감치 베니스영화제 출품을 결정했던 미라 네어는 <몬순 웨딩>을 소개하는 글에서 “영화의 배경인 인도의 펀자브는 이탈리아와 여러모로 비슷하다. 삶에 대한 열정으로 충만한 사람들은 열심히 놀고 또 일한다”고 적었다. 미라 네어의 통찰은 정확했다. 결혼 축제를 준비하고 또 거행하는 며칠간의 과정에 춤과 노래를 곁들이고, 코미디적 요소를 가미한 이 작품을, 축제의 고장 베니스의 관객은 박수와 환호로 반겨 맞았다.
<몬순 웨딩>은 실제로 꽤 흥겹다. 젊은 연인이 등장하고 그들의 혼례를 치르기 위해 여자네 집안 식구들이 하나둘 모여든다. 오랜만에 회합한 일가 친척은 술과 음식과 춤과 노래로 회포를 풀고 젊은 부부의 탄생을 축하한다. 웨딩플래너인 노총각과 젊은 하녀가 ‘방자-향단’ 커플식의 러브스토리를 일궈가는 과정은 코믹하지만 은근한 애절함도 있다. 한편으로 갈등도 터진다. 신부는 옛 애인을 잊지 못하고, 신랑이 이 사실을 알게 된다. 신부의 사촌은 어릴 적 자신을 성추행한 친척 어른을 고발한다. 그리고 축제는 계속된다.
<몬순 웨딩>의 내러티브는 그다지 신선하거나 매력적이지 않다. 전통 문화와 서구 문화로 대별되는 세대간의 갈등과 어울림을 정교하게 묘사하고 있지만, 인물간의 갈등을 너무 쉽게 수습하고 또 계도적으로 마무리한다. 정작 <몬순 웨딩>이 특별한 대목은 결혼 앞둔 여자가 옛 애인과 밀회를 즐긴다거나, 친척 어른의 상습적인 성추행을 이야기한다거나 하는 식으로, 인도영화에서 금기시해온 외도와 근친상간 등 성모럴에 관한 담론을 과감히 끌어들였다는 것. 뮤지컬과 코미디를 혼합한 인도 대중영화 마살라의 전통에 닿아 있으면서도, 코스모폴리스로서의 뉴델리를 조망하는 데 게을리하지 않았다는 것도 <몬순 웨딩>의 미덕 중 하나다.
<한여름>, 베니스를 강타한 화제작
오스트리아에서 다큐멘터리를 만들어온 울리히 자이들의 극영화 데뷔작 <한여름>은 이렇다할 화제작이 없어 나른해 있던 영화제 전반부에 화들짝 놀랄 만한 충격을 준 작품이다. 사실 극 초반에 등장하는 난교파티장면이나 구타장면 등이 가장 먼저 이슈가 되긴 했지만, 정작 이 영화의 놀라운 점은 여섯 가지 에피소드가 서로 맞물려 돌아가는 정교하고 유기적인 구성, 그리고 다큐멘터리를 방불케 하는 리얼한 연기와 상황 연출이다. <한여름>은 한여름 폭염 속에서 발작적으로 그리고 기이한 행태로 타인을 공격하는 비엔나 교외사람들의 이야기다. ‘탑10리스트’를 주절거리고 운전자에게 인신공격을 일삼다 내쫓기는 히치하이커, 창고 가득 음식을 채우고 매일 저울질을 하는 노인, 상대가 먼저 나가길 기다리며 한집 살림을 하는 이혼한 부부, 실적없이 경보 알람을 팔러 다니는 중년의 외판원, 20년 연하 애인의 주먹질과 모욕을 사랑으로(?) 견뎌가는 여교사, 질투심 때문에 애인을 울리고 달래기를 반복하는 청년. 이들은 언젠가 어디에선가 스쳐 지나가고, 더러는 서로를 향해 분풀이를 하기도 한다.
<한여름>은 구성의 특성상 <숏컷> <매그놀리아>에 비견될 만하다. 인물들의 분노와 히스테리가 정점에 오르는 순간, 지진이 나거나 개구리비가 쏟아진 것처럼, 여기에선 폭염을 식혀줄 소낙비가 내린다. 그러나 <한여름>은 인물과 사건을 과다하게 배치하지도 않고, 가쁜 호흡으로 관객을 휘몰아치지도 않는다. 비전문 배우들과 함께 다큐멘터리 스타일로 촬영한 이 영화는 서로에게 상처를 주고받는 사람들을 차갑고 건조한 시선으로 따라가지만, 그 이면에 숨겨진 세상과 사람에 대한 감독의 ‘따뜻한 비관’은 보는 이의 가슴을 먹먹하게 만든다. 기술적으로는 도그마영화와 일본영화를 결합한 듯한, 독특한 스타일의 영화. 영화제 기간 내내 평단의 반응은 꽤 호의적이었다. <일 가제티노>는 “차갑고 무례하게 절망적인 지옥도를 그려나간, 어렵지만 꼭 필요한 영화”라고 평했고, <리푸블리카>는 “우리를 아연케 하는 것은 정신적으로나 육체적으로 서로에게 상처주지 않고 살 수 없게 하는 상황인데, 감독은 오스트리아사회의 그 암울한 단면을 효과적으로 보여주고 있다”고 칭찬했다.박은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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