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상림(66) 상무는 단성사 터주대감이라 불릴 만하다. 태흥영화 이태원 사장이 “그 사람은 살아 있는 역사책이야”라고 말할 정도다. 단성사 왼편 건물 3층에 마련된 간이 사무실, 여전히 그는 건재했다. 지난 9월1일로 극장 업무는 끝났지만, 여전히 그가 바쁜 이유는 뭘까. “그래도 제일 큰 극장이었잖아. 곧 100년을 채울 텐데, 내가 직접 쓰지 않더라도 누군가 책 한권 정도는 내야지.” 그가 지금까지 모은 극장 자료만 해도, 큰 박스로 2개나 된다. 어디 고이 모셔 있던 자료를 거저먹은 게 아니라 당시 문화공보부 등을 들락거리는 등 발로 직접 뛰어서 구한 것들이다.
몇년 전부터는 1920∼30년대 영화들의 원제를 찾느라 직접 인터넷을 뒤지고 있다. “그런데 자료 찾느라 <매일신보> 같은 걸 뒤지다보면 배꼽잡을 일이 많아. 예를 들면 당시 배우들 이름 뒤엔 군 또는 양을 붙였거든. 그런데 이 사람들이 외국사람 이름만으로 성별을 아나. 그러니 로버트 아무개양이라고 써놓고선 며칠 후에 프린트 돌리면서 뒤늦게 정정하는 거야. 죄송합니다. 로버트 아무개군입니다라고. (웃음)”
연세대 정외과를 졸업한 뒤 친척인 이남규 전 단성사 대표 때문에 극장 일을 맡게 된 그는 “그때 붙잡혀서 지금까지 이 일 하고 있다”고 푸념하지만, 그렇다고 외국 대사나 정부 관리가 된 친구들이 부럽지는 않다. “전쟁 막 끝나고 나서 <대장 부리바>나 <애수>처럼 좋은 영화들 참 많이 했지. 마카로니 웨스턴은 내 취향은 아니었어. 공식이라는 게 있잖아. 그런데 그 놈들은 기관총 들고 설치고, 뒤돌아서는 이에게도 총을 뽑아대니. 원…. 요즘 영화도 그래. 악당이 매력적이잖아. 헌데 영화라는 게 묘해. 그런 악당들을 좋아하게 되니, 그래서 나도 나쁜 놈 될까봐 요즘 영화는 통 안 봐.” 온갖 배우들과 영화 스토리뿐 아니라 자질구레한 세계사 지식까지 꿰고 있을 정도로 해박한 그는 단성사에 관한 유쾌한 연설을 늘어놓다가도, 손때 묻은 단성사가 사라진다는 사실이 못내 서러운 듯, “이 건물이 나보다 한살 많은데…”라며 연신 중얼거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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