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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를 위해 절대 풀 수 없는 퍼즐을 만들었지” (2)
2001-09-14

창의적인 신세기 필름누아르 <메멘토>, 감독과의 두뇌게임 10문10답

★ 중급 ★

1. 레너드는 전혀 알지 못하는 나탈리를 어떻게 찾아가게 됐는가. 또 나탈리는 레너드를 보고 왜 놀라는가.

레너드는 나탈리의 애인 지미를 범인으로 알고 죽인다. 그리고 지미의 옷을 입고 그의 차를 탈취한다. 그런데 지미의 옷에서 저녁에 카페에서 만나자는 메모가 쓰인 컵 받침대를 발견한다. 마약 거래는 컵 받침대를 이용한다는 대사를 기억하라. 물론 그건 나탈리가 지미에게 준 것이지만, 지미를 죽인 사실을 망각한 레너드는 그것을 자기에게 주어진 메모로 오인해 나탈리를 찾아가는 것이다. 한편 나탈리는, 기다리던 지미는 오지 않고 낯선 사내가 지미의 옷을 입고 지미의 차를 타고 왔으니 놀랄 수밖에 없다. 보통의 경우였으면, 이 사내가 지미를 살해했을 것이라고 믿을 것이다. 그러나 “이 마을엔 기억을 잃어버린 이상한 사내가 떠돌아다닌다는 소문이 있다”는 대사가 나온다. 아마 나탈리도 그런 소문을 들었을 것이다. 그래서 침뱉은 맥주잔으로 시험해본 뒤, 그의 증상을 믿게 된 것이다. 나중엔 지미를 추적하는 마피아의 추궁으로부터 벗어나기 위해 그녀 역시 레너드를 이용한다.

2. ‘새미 젠키스를 기억하라’라는 문신의 의미는.

다른 문신들과 달리, ‘새미 젠키스를 기억하라’라는 문신은 레너드가 옷을 입어도 드러나는 부위에 있다. 바로 왼쪽 손등. 레너드가 손을 씻을 때마다 카메라의 시선은 이 문신에 머무른다. 마치 정말 무엇인가를 기억하려는 듯이, 혹은 잊어버리려는 듯이, 레너드는 이 문신을 자꾸만 씻고 또 문지른다. ‘기억’이라는 가장 민감한 단어를 포함하고 있는 유일한 문신이기도 한 이 문구를 카메라가 연신 의미심장하게 비추는 것은 일종의 암시이다. 진실과 거짓, 두 갈래로 뻗어 있는 암시. 관객으로 하여금 새미 젠키스에 관한 레너드의 이야기에 몰두하게 하여 진실을 흐리는 한편, 더 깊은 심중에서는 자꾸만 그것을 환기시킴으로써 그것이 뭔가 거짓을 품고 있음을 의심케 하는 암시 말이다.

3. 도드는 누구인가. 레너드는 왜 도드에게 폭행을 가하는가.

도드는 나탈리의 남자친구 지미 그랜츠와 함께 마약거래에 연루되어 있는 ‘동료’다. 지미가 테디를 만나러 갔다 돌아오지 않고 지미의 돈 20만 달러의 행방이 묘연해지자, 이 돈을 둘러싸고 마피아, 테디, 나탈리간의 보이지 않는 쟁탈전이 벌어진다. 도드는, 이 고래싸움에 끼여 다치는 새우다. 도드가 정말 나탈리에게 협박을 한 적이 있나 하는 점이 확인되지 않은 상태에서, 도드가 자신을 협박한다는 나탈리의 진술만을 믿을 수는 없기 때문이다. 테디가 레너드를 이용해 지미를 죽였듯, 나탈리 역시 레너드로 하여금 주변의 방해세력들을 제거하고자 하는데 그 첫 대상이 도드였다. 어쨌거나, 처음 레너드에게 도드를 제거해줄 것을 청했다가 거절당한 나탈리는, 일부러 레너드의 화를 돋궈 그에게 얼굴을 맞은 후 ‘도드가 때렸다’고 거짓말을 함으로써 레너드로 하여금 도드에게 폭력을 가하게 하는 데 성공한다.

4. 레너드는 왜 새삼스럽게 디스카운트 인의 사진을 찍는가.

레너드가 긴 전화통화를 하는 곳은 디스카운트 인이다. 레너드는 나가서 갖가지 일을 겪은 뒤 디스카운트 인으로 돌아가면서 사진을 찍는다. 그러나 그의 평소 수칙대로라면 사진은 처음 투숙할 때 찍어두었어야 한다. 혹시 이건 옥의 티일까? 아니다. 최초 투숙 때 테디는 레너드를 이곳으로 데려다주었을 것이다. 그래서 테디는 레너드의 방으로 찾아온 것이다. 최초 투숙 때는 사진을 찍어둘 필요가 없었던 셈이다. 이 시점까진 테디가 계속 보호해왔다. 그러나 지미를 살해하고 나탈리의 집에서 묵은 뒤 혼자 이곳으로 다시 오게 됐을 때, 이곳은 그가 기억해야 할 장소가 된 것이다. 그래서 이때야 사진을 찍는 것이다.

★ 고급 ★

1. ‘전화를 받지 마라’라는 문신은 왜 새겨져 있는가.

“난 전화에 약해요.”(I’m not too good on the phone) 레너드는 반복해서 이렇게 말한다. 모텔 프론트의 버트에게도 단기기억손실증에 걸린 자신의 상태를 설명하면서 전화를 연결하지 말아달라고 누차 부탁한다. 누군가를 만났을 때 그를 예전에 만났었는지, 친구인지 적인지조차 기억할 수 없고, 심지어 한 자리에서 너무 오래 대화를 나누면 어떻게 얘기를 시작했는지도 잊고 마는 상황에서 레너드가 믿을 것은 자신의 육감뿐이기 때문. 사람들의 눈을 보고, 그들의 보디랭귀지를 관찰하는 것은 보험조사관 시절부터 말의 진위여부를 파악해야 했던 그가 터득한 방식이다. 그가 문신으로 새긴 (테디의) 차량등록번호의 주인을 알아보고 전화하겠다는 나탈리에게도 전화에 약하니 약속을 잡자고 말한다. 나탈리에게 그 정보를 건네받을 때도, 선글라스를 벗어달라고 부탁할 정도. 최근에 새긴 ‘전화를 받지 마라’라는 왼팔의 문신은 이러한 본능의 발로다. 흑백화면에서 끊임없이 통화하며 새미 젠킨스의 얘기를 들려주던 레너드가 이 문신을 확인한 뒤 전화를 받지 않자, 테디는 ‘진짜 존 G’를 죽였을 때 자신이 찍어준 사진과 함께 전화를 받으라는 메모가 담긴 봉투를 모텔 방문 밑으로 밀어넣는다.

2. 다시 묻기. 레너드는 왜 아내를 죽였는가. 그리고 왜 복수를 반복하는가.

아내를 죽인 건 분명히 레너드다. 이걸 오직 기억손상으로 인한 실수라고만 볼 수 있을까. 더 근본적인 이유가 있지 않을까. 다양한 추론이 가능하겠지만 우리의 해석은 이렇다. 레너드의 기억에 따르면 아내는 죽었다. 그의 기억창고의 마지막 대목에서 아내는 죽은 모습이었고, 그뒤의 모든 일은 15분 이상 기억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레너드 앞에 아내는 멀쩡히 살아 있다. 귀신이 나타난 게 아니라면, 이건 레너드에게 견딜 수 없는 현실이다. 레너드의 자기 보존을 위해서라면 아내는 죽어야 한다. 레너드의 아내는 어떤 상태였을까. 매번 경악하는 남편에게 자신이 어떻게 살아 있는지 15분마다 설명하며 끔찍한 체험을 수없이 되새겨야 한다. 그녀에게도 이건 지옥 같은 일이다. 레너드는 실수했지만 그 실수에는 이 불행한 부부 양자의 무거운 잠재의식적 동기가 작용하고 있는 것이다. 무엇보다 아내를 자신이 죽였다 해도 레너드는 그걸 기억할 수 없을 것이다. 눈앞에서 살아 있는 사랑스런 아내 살해를 무의식적으로라도 꿈꿀 만큼 레너드는 잔인한 인물인가. 그런 혐의가 있다. 영화의 마지막 장면을 떠올려보라. 자기의 비위를 거스른다는 이유로 레너드는 테디의 차 번호판을 범인의 차량번호판처럼 기록한다. 지금은 조작이지만, 15분 뒤엔 그걸 사실로 믿게 될 것임을 안다. 그는 그렇게 살아왔다. 복수를 하고도 복수의 기록을 남기지 않으면 또 복수를 할 수 있는 것이다. 복수는 그의 힘이며, 유일한 존재 이유다. 나머지는 모조리 15분전, 저 망각의 블랙홀로 보낼 수 있는 것이다.

3. 이 영화의 장르는 무엇인가.

이 질문은 내용을 이해하는 것과는 관계없다. 그러나 이 영화가 놓인 맥락을 살펴보는 데는 도움이 된다. <메멘토>는 필름누아르다. 원조 필름누아르의 주인공은 대부분 <말타의 매>의 제임스 스페이드 같은 탐정이며, 간혹 <시민 케인>의 기자처럼 유사 탐정이었다. 그들은 아무도 믿지 않고 저 홀로 음모와 배신의 뒷골목을 누빈다. 그는 진실을 원하지만 진실을 기대하지 않으며, 요부에 매혹당하지만 끝내 그녀의 거미줄에 걸려들지 않고 결국 자기만의 공간으로 쓸쓸히 되돌아온다. 구제불능의 혼돈과 타락의 도시에서 그는 존재 가능한 마지막 영웅이었다. <메멘토>의 레너드는 이 구도를 따른다. 그는 탐정처럼 믿을 이 없는 어두운 범죄세계를 홀로 누비며 범인의 뒤를 쫓는다. 이곳 역시 요부의 혀가 표지처럼 유혹하고 있다. 모든 유혹과 난관을 통과해 홀몸으로 살아남는 것도 정해진 수순. 그러나 그에겐 제임스 스페이드의 우울한 표정에 깃들어 있던 진실과 낭만에의 아스라한 향수가 없다. 그는 정체성이 파괴된 인물이기 때문이다. 영웅의 진정성이 들어설 자리가 이젠 사라지고 만 것이다. 복수심만이 그의 존재 이유지만 아내를 자기가 죽였으니, 그의 복수심마저 진실과는 거리가 멀다. 15분의 영속성도 지니지 못하는 세계는 그에게 훨씬 더 악마적이다. 어떤 종류의 진정성도 주체성도 그리움도 말라버린 죽음의 세계. <메멘토>의 밑그림은 이렇게 작은 위안의 여지조차 완벽하게 봉쇄된 아수라다. <메멘토>는 필름누아르의 유산을 훌륭하게 계승하면서 보기 드문 창의성으로 가득한 신세기 필름누아르다.

허문영·황혜림·최수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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