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직도 리얼리스트’의 판타지
저는 원래 기억력이 별로 좋은 편이 아니거든요. 그래서 술을 얼마까지 먹었는지 잘 모르거든요. 그리고 술을 마시는 내가 지금의 난지, 옛날의 난지 구별이 안 돼요. (웃음) 지금도 잘 마시는 줄 알고 마시다간 중간에 필름이 끊긴다든가 할 텐데…. <성공시대> 할 땐가 그러셨잖아요. 리얼리즘은, 그게 뭐였지? 리얼리즘에서 벗어나겠다는 의지를 표명하신 것 있었잖아요.
<성공시대> 할 때요?
<성공시대> 그 앞에 자막으로 처리하셨잖아요. 감독님은 아무리 기억력이 나빠도 기억하셔야 돼요.
아, 있어요, 있어요. 그 비슷한 말. 있어요, 내가 뭐라 그랬지? 리얼리즘에 대해서 ‘이다’, ‘아니다’를 얘기했어요.
리얼리즘이 전부는 아니라고 얘기하셨어요.
하여튼 그것도 애매한 말을 했어요.
장 감독 작품 중에 <우묵배미의 사랑>처럼 정말 한국 리얼리즘영화의 백미, 완결판이라고 불러도 좋을 그런 영화들이 있는가 하면, 사실 <경마장 가는 길> 같은 영화는 원작이 어떠했든 비판적 리얼리즘의, 뭐라고 할까요, 정수라고 할까요, 그런 역할들에 충실했거든요. 그리고 <화엄경> 같은 영화가 또 있단 말이에요. 그런데 지금 이 영화는 버추얼 리얼리티를 핑계로 <화엄경>보다도 더 강하게 판타지의 폼을 많이 빌려오잖아요. 그래서 이게 <성공시대>를 처음 들고 나오셨을 때 그때의 모습과 어떻게 보면 너무 일맥상통하다는 그런 느낌을 갖게 되거든요.
그래, 난 안 변한다니까. (웃음)
변하는 척하는데 변하질 않았다니까요. 그런데 이 영화에서 특별히 <나쁜 영화>나 <거짓말>같이 다큐멘터리처럼 아주 사실적으로 보이는 화법에서부터….
화법만 다른 것 같아요.
그래요, 화법만 달라요.
그러고보니까 멋있다, 화법만 틀린… 말하는 방법만… 난 진짜 안 돼. (웃음)
아니 그렇게 반성만 하시면 기사가 진행이 안 되거든요. 이번에 말하자면 화법을 바꾼 이유, 판타지라는 쪽으로 다시 가게 된 이유는 뭔가요? 아, 참과 거짓도 하나고 진과 위도 하나고 미와 추도 하나다, 뭐 이런 식으로 얼버무리지 마시고요. 여기에서 판타지라는 것에 가능성을 더 많이 두신 이유는 뭔가요?
난 정말 현실에 대해 점점 낙심해가는지도 모르겠어요, 솔직히 말해서. 현실은 별로 중요하지 않다는 생각을, 의도적으로 또 어쩔 수 없이 하고 있는 것 같기도 해요. 화법이 바뀐 이유가 거기에 있을지 몰라요. 음, 왜 자꾸 낙심할까, 지금 이렇게 이승에 대해서. 내가 지금 술이 과한 건가. 그래서 아마 자꾸 현실을 넘어서는 생각, 일종의 판타지든 초현실이든, 그게 꿈이든 그 세계에 대한 지향이 생기는 것 같아요. <바리공주>도 사실 그런 거거든요. 현실을 얘기하는 것 같지만 어떤 또다른 세계에 대한 경향을 굉장히 강하게 갖고 있단 말야. 현실에 왜 자꾸 나는 낙심하고 있는가, 우리가 말하는 이상에 대해서 난 점점 흥미를 잃어가는가. 그런데 이럴 때 가끔, 아주 건방진 얘긴데, 최치원 같은 사람이 생각나요. 나중에 해인사 골짜기에 들어가서 신발 한짝 안 남기고 종적을 감춘 그 사람도 현실이 싫었나 보더라고, 신라시대에 이미.
<화엄경>, 출발점이자 종착점인
아무래도 <화엄경>이 떠오르는데, 그걸 지금 다시 찍는다면 달라질까요.
아뇨. 모르겠는데요. 아마 더 재밌게 찍으려고 할 거예요.
그때는 굉장히 리얼한 요소들을 가지고 환상을 나타냈잖아요.
사실은 지금도 똑같아요. 판타지가 정말 판타지처럼 보일까. 왜냐하면 가상현실도 현실로 끌어내리면 진짜 현실적으로 만들 수 있지 않을까, 뭐 그런 계산이 깔려 있는 거거든요. 판타지를 보는데 판타지 같지 않고, 현실을 보는데 현실 같지 않고 이런 것이 원래 의도인데, 모르죠. 그 의도가 살지 안 살지. 다만 <화엄경>이 어떤 생각을 쥐어짠 느낌이 없지 않다면, 이것은 생각을 전혀 안 하게 논스톱으로 끌고가야겠다, 보고 나면 그냥 끌려오긴 했는데 좀 억울하다, 그런 생각이 좀 들게…. (웃음) 그렇게 가려고 그래요. 어려운 거 너무 싫어, 이제. 찍기는 좀 모던하게 찍어도 보는 건 좀 편했으면 좋겠어.
결국 <화엄경>은 완성된 건 아니지 않나요.
아니니까 내가 계속 중언부언하는 거겠죠. <화엄경>은 아마 너무 노골적이어서 실패했을 거야. 길에서 커간다는 것을 너무 노골적으로…. 그래서 가장 앙상해 보였을 거예요. 너무 강요하는 것처럼 보였을 거예요. 나머지 작품은 강요하지 않는 것 같다는 게 차이지.
그렇다면 <화엄경> 이후의 작품은 모두 <화엄경>을 완성하기 위한 것이라고 봐도….
그 전에도 마찬가지예요. <서울 예수> 때도. 물론 본격적으로 그런 고민을 가진 것은 <화엄경>일 거예요. 왜냐하면 화엄경이라는 말의 매력인데 변증법하고 불교에서 갖고 있는 일종의 중도, 또는 불의의 개념하고는 유사한 것 같으면서도 틀린데, 내가 여기 와서 천착을 하는 거거든요. <경마장 가는 길>까지만 해도 과도적이고, <화엄경> 때 와서 그 개념을 본격적으로 쓸어안고 여기까지 왔으니까. 이게 뭐 노장으로 변했다, 뭐 왔다갔다했는데 다 똑같아.
마무리- 숨겨진 희망
근데 사실은요, <화엄경>은 워낙 관념적인 얼개 같은 것을 만들어놓고 그것을 따라갔으니까, 말하자면 진폭도 작고 혼란도 작았죠. 장 감독은 그걸 앙상하다고 말하시지만. 그 다음 영화들도, 특히 <나쁜영화>도 처음 생각한 결론은 <화엄경>과 비슷한 데가 있었어요. 열린 채로 간다고 그랬지만 결국은 거리의 아이들하과 행려들의 만남이라는 것을 생각하셨죠. 그런데 그냥 도중에 파열된 채로 끝내버렸거든요. 우리 음악을 보면, 이건용 같은 사람이 하는 얘기지만, 우리 화음은 서양의 화음과 달리 도미솔 이런 식으로 한꺼번에 소리를 내는 게 아니라 음들을 흩어서 터뜨린다는 거예요. 서양의 화음이 수렴하는 화음이라면 이건 열린 화음이라나요.
그러니까 서양음악으로 극도의 슬픔이나 혼란을 표현해도 그게 잘 안다가와요. 화음으로 다 수렴돼 그 안에서 조화가 이뤄지기 때문인가. 얘기가 빗나갔는데, 어쨌든 장 감독이 <나쁜영화>에 대한 어느 인터뷰에서 그 영화 부족한 점이 많았다고 얘기했을 때, 좀 억울하다고 생각했어요. 그건 서양식의 정서에서 도저히 나올 수 없는 파열로 끝나버리는, 열린 화음으로 끝나버리는, 그런 식의 우리 음악이나 우리 정서와 닮았다, 그렇게 생각했던 거죠. 다시 성소도 열어둔 채 만든다고 선언을 해놨는데….
멋있다. 멋있어.
분명히 그래요. 내가 사람은 안 바뀐다고 말하는 건 형식의 문제만은 아닌가 봐요. 장 감독이 아니다, 아니다, 난 결론을 내주지 않았어, 그리고 세상은 쉽게 바뀌는 게 아니야, 이렇게 얘기하는 것 같아도 이 영화에선 결국엔 시스템과 성소하고 싸우게 만들거든요. 주같이 게으른 애를 싸우게 만들거든요. 아닌 척하면서도. 그런 것에 대한 희망을 못 버리고 있는 것 같아요.
그래요. 그런 희망 못 버리는 것 같아요. 병신같이. (웃음)
결국 장 감독은 자백하고 말았다. 그가 끔찍하다고 여기는 방향으로 흘러가는 세상에 대해서, 또 그 세상에 대해 삐딱한 눈길을 보내는 자신에게 태형을 가하려는 세상에 대해 절망하지만, 그럼에도 바로 그 끔찍함 속에 조용한 눈길을 보내며 희망을 찾고 있음을. 그의 눈 속에는 한 마리 나비가 펄럭이고 있음을. 어느새 취재진은 그 나비를 따라 걸음을 옮기고 있었다.
정리 문석 기자·사진 오계옥 기자 [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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