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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네시로 가즈키 소설의 매력 [1]

가네시로 가즈키의 소설을 읽으면 목욕탕이 생각난다. 책 속에는 냉탕처럼 정신을 버쩍 들게하는 냉소와 조롱, 온탕처럼 후끈한 삶에 대한 정열과 우정이 공존한다. 가네시로 가즈키는 아웃사이더를 다루지만 그의 주인공들은 쉬이 고개를 숙이거나 절망하지 않는다. 그는 여학교 축제를 습격하듯이 경쾌한 문체와 기발한 농담으로 일본사회에 상존하는 차별과 소외라는 무거운 주제를 꿰뚫는다. 가네시로 가즈키가 일본 대중문화의 새 얼굴로 주목받은 또 다른 이유는 영화, 드라마화에 적합한 화법과 필치 때문이다. 그가 내놓은 다섯권의 책 중 네권이 영화와 드라마로 영상화됐다. 현재 충무로에 걸려 있는 <플라이 대디>의 원작자인 그가 이번 인터뷰를 통해 답변한 자신의 집필방식은 빈번한 영상화에 대한 독자들의 궁금증을 다소 해소해줄 듯하다. 폭주하는 마이너리티의 대변자, 가네시로 가즈키의 소설세계로 당신을 초대한다.

재일동포로서의 삶은 힘들다. 코리안 재패니즈라고 불러도, 재일 코리안이라고 불러도 마찬가지다. 뭐라고 부르건, 그들의 조건은 변하지 않는다. 하지만 방법은 있다. 가네시로 가즈키의 조언처럼 “그게 싫으면 이렇게 계속 달리면 된다. 간단하다. 놈들의 시스템에서 빠져나오면 된다. 초등학교 1학년생들의 달리기 시합처럼 계속 달리면 된다”.

<레벌루션 No.3> <GO> <연애소설> <플라이, 대디, 플라이> <SPEED>의 작가 가네시로 가즈키는 재일동포다. 김사량, 이회성, 이양지, 양석일, 유미리 등 선배 작가들과는 달리 그는 한국 이름을 쓰지 않는다. 이회성이나 양석일처럼 치열한 재일동포의 수난사를 그리지 않고, 유미리처럼 내면에 침잠하지도 않는다. 지금 가네시로가 보여주는 것은, 재일동포를 포함한 일본 내 마이너리티의 유쾌한 투쟁이다. 가네시로 가즈키는 재일동포로는 처음으로, 최고의 대중문학에 주어지는 나오키상을 수상했다. 다른 말로 하자면, 가네시로 가즈키의 소설은 대중적이고 재미있다는 것이다. 여전히 선배들처럼 재일동포가 주인공이거나 중심인물이지만, 진중했던 선배들과는 다른 방식으로 다른 어법과 단어로 말한다. 그리고 질주한다. 가네시로 가즈키의 소설에 반했다면, 그건 틀림없이 속도와 웃음 때문일 게다.

가네시로 가즈키가 유명해진 것은, 영화로도 만들어진 <GO>가 시작이었다. 처음 쓴 장편소설로 나오키상을 수상한 이력에서 보이듯, 가네시로의 필력은 대단하다. 한번 읽기 시작하면 도저히 손에서 뗄 수 없을 만큼 흥미진진하다. 하와이에 가겠다면서 국적을 북조선에서 한국으로 바꾼 아버지와 조선학교에서 일본 고등학교로 진학해 싸움을 거는 녀석들마다 단번에 때려눕힌 스기하라. 자신의 정체성을 찾기 위해 고민하기 이전에 달리고 보는 소년의 발랄한 투쟁과 치명적인 연애 이야기는 한국과 일본의 젊은이들을 동시에 사로잡았다.

이 세상을 사는 마이너리티의 유쾌한 투쟁

스기하라는 아버지에게서 권투를 배웠다. 아버지는 말한다. “원 안에 꼼짝하지 않고 앉아서 손닿는 범위 안에 있는 것에만 손을 내밀고 가만히 있으면 넌 아무 상처없이 안전하게 살 수 있다. 권투란 자기의 원을 자기 주먹으로 뚫고 나가 원 밖에서 무언가를 빼앗아오고자 하는 행위다. 원 밖에는 강력한 놈들도 잔뜩 있어. 빼앗아오기는커녕 상대방이 네놈의 원 속으로 쳐들어와 소중한 것을 빼앗아갈 수도 있다. 게다가 당연한 일이지만 얻어맞으면 아플 것이고, 상대방을 때리는 것도 아픈 일이다. 아니 무엇보다 서로 주먹을 주고받는다는 것은 무서운 일이다. 그런데도 넌 권투를 배우고 싶으냐? 원 안에 가만히 있는 편이 편하고 좋을 텐데.” 스기하라는 답한다. 나가겠다고. 이 좁은 세계를 부숴버리고, 더 넓은 세계를 보겠다고. 부드럽게 말해준 적은 없지만, 아버지가 조선 국적을 포기한 것은 그런 이유였다. 거치적거리는 것을 없애주고, 아들 스스로가 선택할 수 있도록 조건을 마련해주기 위해.

스기하라는 싸우고, 달리고, 춤추면서 알게 된다. ‘이제 더이상 커다란 것에 귀속되어 있다는 감각을 견디면서 살아가고 싶지 않아.’ 어딘가에 속해 있다는 안도감만으로 살아가는 것은, 우물 안의 행복일 뿐이다. 아래에서 불이 지펴지고 있는, 거대한 솥 안의 개구리다. 조금씩 뜨거워져도, 개구리는 뛰쳐나가지 않고 그대로 삶아진다. <플라이, 대디, 플라이>의 아버지가 딱 그런 꼴이었다. 그는 가장 소중한 것을 잃고서야 1m 바깥을 바라보게 된다. 그리고 자신의 육체로, 원 밖으로 주먹을 주고받는 싸움을 하기로 결정한다. <GO>의 스기하라 역시 주먹으로, 달리기로 그 좁은 세계를 거부했다. 일본인이란 게, 한국인이란 게 뭐 그리 중요하단 말인가. 그냥 인간이면 되는 거지. “노 소이 코레아노, 니 소이 하포네스 조 소이 데사라이가도.”(나는 한국 사람도 일본 사람도 아닌 떠다니는 일개 부초다)

가네시로 가즈키의 세계인식은 거저 나온 게 아니다. 때로 인간은, 자신이 경험한 것을 그대로 글로 옮기지만 많은 경우는 자신이 했어야 할 일을 쓴다. 가네시로 가즈키의 소설에는 그가 겪어온 모든 것과 그가 했어야 한다고 생각하는 것들이 탁월하게 엮여 있다. 1968년 도쿄 근처의 사이타마현에서 태어난 가네시로 가즈키는 조총련계 민족학교에 다녔다. 하지만 조선학교는 적성에 맞지 않았다. 가네시로는 공부보다 영화와 소설 읽기에 더 열중했다. 초등학교 시절부터 애거사 크리스티의 소설과 김전일의 할아버지가 나오는 <옥문도>와 어두운 하드보일드 소설을 읽으며 매료되었다. <포스트맨은 벨을 두번 울린다>를 보고는, 주인공 같은 아웃사이더가 되겠다고도 생각했다. 공부보다는 영화와 소설에 미쳤던 가네시로는 불량학생으로서도 최전선을 달린다. 중학교 때 마작, 파친코, 담배, 술 등을 배웠고, 지각 120일에 결석 60일을 기록했고, 흉기를 들고 패싸움을 벌이려다 체포되기도 했다. 자칫하면 야쿠자의 길로 달려갈 수도 있었지만, 일본 고등학교로 진학하면서 인생이 바뀐다.

매국노란 말까지 들으며 한국 국적으로 바꾸고 일본 고등학교로 진학했지만, 바뀐 것은 없었다. 가네시로 가즈키는 집단폭행을 당하기도 하고, 이지메도 충분히 경험했다. 철학과 사상서를 읽고, 순수문학에도 빠져들었지만 그건 책일 뿐이다. 순신의 캐릭터처럼, 재일동포로서 살아가기 위해서는 문과 무를 겸비해야만 한다. 그러지 않으면 정일처럼, 어이없는 죽음을 맞이하기 십상이다. 아니면 <플라이, 대디, 플라이>의 아버지처럼 비굴해지거나. 고등학교 시절 처음으로 한국을 방문하지만, 한국 역시 그의 나라는 아니었다. 정일의 외침처럼, ‘우리는 나라란 것을 가져본 적이 없습니다’였다. 고등학교를 졸업한 뒤 2년간 백수생활을 하며 책을 읽다가, 수험 준비를 하여 1989년 게이오대학 법대에 진학한다. 죽마고우였던 친구가 죽은 뒤 방황하기도 하고 책과 영화, 마작 등 온갖 유희에 빠져 지내던 가네시로는 93년 대학 졸업과 함께 본격적으로 글을 쓰기 시작한다. 1998년 <레볼루션 No.3>가 소설현대 신인상을 수상하고, 2000년 <GO>가 나오키상을 수상한다.

싸우고, 달리고, 춤추면서 세상과 맞서다

<레벌루션 No.3> <GO> <연애소설> <플라이, 대디, 플라이> <SPEED>로 이어지는 가네시로 가즈키의 소설은, 공통된 설정과 세계관 속에서 진행된다. 데뷔작인 <레벌루션 No.3>는 일류 고등학교 사이에 섬처럼 존재하는 삼류학교의 ‘좀비스’가 벌이는 모험담이다. ‘공부 잘하는 인간의 세계에 산다손 치더라도 그냥 살아서는 안 된다. 유전자 전략으로 고학력자들이 떼지어 형성하고 있는 답답한 계급사회에 바람구멍을 뚫어야 한다’는 선생의 말에 동감하여 좀비스는 명문인 세이와여고 축제에 진입하려는 계획을 세운다. 딸을 폭행한 고교 권투선수에게 복수하려는 스즈키를 트레이닝시키는 박순신이 등장하는 <플라이, 대디, 플라이>는 세이와여고를 습격하기 전 여름방학의 일이다. <SPEED>는 세이와여고 진입에 성공하여 정학을 받은 좀비스가 히로시의 무덤이 있는 오키나와로 가기 전까지 벌어진 사건이다. 스즈키의 딸 하루카와 <SPEED>의 주인공 오카모토 카나코는 모두 세이와여고를 다니고 있고, <연애소설>의 단편 셋에 모두 등장했던 다니무라 교수가 다시 <SPEED>에 나온다. <연애소설>에 나온 단편 <영원의 환>에서는 오카모토의 가정교사였던 아야코의 죽음 때문에 다니무라 교수를 죽이려는 남자가 주인공이다.

하나의 세계 속에서 벌어지는 가네시로 가즈키의 소설이 말하는 것은 한결같다. 우선 싸워서 이겨야 한다는 것. 중년의 샐러리맨 스즈키나 16살 여고생 오카모토는 모두 ‘싸움’과는 거리가 멀었던 인물이다. 나름대로 그들은 만족스러운 삶을 살아왔다고 생각했지만, 한순간에 모든 것은 물거품이 된다. 그들이 그동안 배운 것, 익혀온 것으로는 자신의 원 안에서 웅크리는 것밖에 할 수 없음을 깨닫게 된다. 그래서 그들은 격투기를 배우고, 운전을 배우고 ‘기술’을 익힌다. 가장 원초적인, 육체의 단련과 대결로 승부를 낸다는 것은 지극히 원초적인 흥분과 즐거움을 안겨준다. 하지만 그것으로 다가 아니다. 순신은 말한다. “아저씨는 이시하라에게 폭력을 휘두르려 하고 있어. 폭력에는 정의도 없고 악도 없는 거야. 폭력은 그냥 폭력일 뿐이야. 그리고 사람에게 휘두르는 폭력은 반드시 자신에게로 돌아오게 되어 있어,” 폭력은 이기는 수단이 아니라, 자기를 지키는 수단이다. 말콤 엑스의 말처럼 자위를 위한 폭력은, 폭력이 아니라 지성인 것이다. 그래서 폭력을 선택하기는 하지만, 궁극적으로 이기는 것은 불가능하다. 가네시로 가즈키는 단순하다. 주먹과 지식이 없으면 이길 수 없다는 것을 알지만, 단지 그것만으로는 시스템을 바꿀 수 없다는 것도 안다. “아까 우리에게 굴복한 놈들은 머지않아 사회의 한가운데에서 다른 형태로 우리를 굴복시키고 승리를 거머쥐려 할 것이다. 그리고 우리는 몇번이나 패배의 쓴맛을 보게 되리라. 하지만 그게 싫으면 이렇게 계속 달리면 된다.”

‘좀비스’는 아무리 죽여도 죽지 않는다는 뜻에서 붙여진 별명이다. 사회의 낙오자라고 비웃지만, 그들은 세상 누구보다도 건강하고 쾌활하다. 반드시 그래야만 한다. 그렇지 않고서는 적들의 시스템에 구멍을 낼 수도 없고, 정신없이 달려서 벗어날 수도 없다. “만약 차별이란 개념에서 완전히 해방될 수 있다면, 그 순간에 죽어도 후회없다”고 순신은 말하지만, 그런 날이 결코 올 것이라고는 믿지 않는다. 그래서 가네시로는 말한다. “너는 고된 인생을 살지도 모르겠다. 상처받아 좌절하는 일도 있겠지… 무슨 일이 있어도 춤추는 거야.” 가네시로 가즈키의 소설은, 바로 그 춤을 보여주고 있다. 원시 부족이 춤을 추며 전투의 승리를 기원했듯이, 가네시로 가즈키의 인물들 역시 거대한 축제, 카니발에서 그들의 춤을 통해 궁극의 승리를 기원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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