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한 싸움이었던만큼 과정도 복잡하다.
이지상 감독의 <둘 하나 섹스>는 이미 두 차례 등급보류를 받은 상태로 극장 상영이 불가능했다. 그래서 지난해 2월, 제작사인 인디스토리의 곽용수 대표와 함께 등급보류 무효 소송을 서울행정법원에 냈고, 3월부터 재판이 시작됐다. 그 과정에서 이 사건에 적용될 특정 법률인 영화진흥법상의 등급보류 조항이 헌법에 위배되는 것이라 판단, 같은 해 5월에 위헌심판제청을 신청했다. 그 결과 8월25일에 서울행정법원이 위헌제청 결정을 내렸고, 헌법재판소로 넘어간 지 1년 만에 이번 결정이 나왔다.
이번 헌법재판소(이하 헌재)의 결정은 어떤 의미를 갖는가. 지난 96년 헌재의 사전심의 위헌 결정과 맥을 같이하는데.
지난 96년 헌재는 공연윤리위원회의 사전심의는 행정기관의 검열에 다름아니며, 이는 명백히 표현의 자유를 억압하는 것이므로 위헌이라고 지적한 바 있다. 당시 결정은 제도를 어떤 방향으로 어떻게 개선해야 하는지는 명확히 제시해주는 것이었다. 그런데 결과는 어땠는가. 연극, 출판물, 음반과 달리 대중적인 파급력이 너무 크다는 이유로 영화는 보수적인 입김에 휘둘렸고, 결국 등급보류라는 정치적인 결정만 내려졌다. 이로 인해 결정의 취지가 크게 훼손됐다. 바뀐 건, 직접 자르지는 않지만 영화를 만든 이로 하여금 제도적인 압박 때문에 스스로 자르도록 강요하는 셈이다. 결국은 검열인 것이다. 이번 사법부의 결정은 정부가 만들어낸 또다른 검열장치인 등급보류가 위헌이라는 것에 대한 확정적인 결정이다. 용어만 바꾸는 것으로는 더이상 안 된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현재 정부에서 발의, 국회에 계류중인 영진법 개정안의 경우, 등급보류 대신 등급거부를 포함시켜 놓았다. 반드시 고쳐야 한다.
등급보류나 거부 조항이 필요하다고 말하는 이들은 사후 처벌을 미리 예방하기 위한 것이라고도 한다.
기본적으로 표현물에 대한 처벌은 곧 야만적인 행위다. 사후 처벌 역시 당장 철폐는 안 되겠지만, 완화하는 방향으로 가야 한다.
헌재는 등급보류 조항을 쥐고 있는 한, 실질적으로 등급위가 검열기관에 해당한다고 지적했는데.
등급위는 등급 분류 기능만을 부여받아야 한다. 그들에게 국민들의 선택권을 제한할 수 있는 권한까지 준 것은 아니었다. 개인적으로는 미국처럼 등급위 역시 완전한 민간자율기구 형태로 가야 한다는 생각이지만, 현재로선 등급분류위원에 청소년을 포함시킨다든가 하는 발상의 전환이 필요하다.
음반·비디오물 및 게임물에 관한 법률 역시 등급보류 조항을 두고 있는데.
역시 위헌이다. 제한상영관처럼 특정지역에서만큼은 대여, 판매가 가능하도록 해야 한다. 법 개정이 시급하다.
96년부터 오랫동안 끈질기게 싸워왔다. 보수적인 입장을 견지하는 이들과도 많이 부딪혔을 텐데.
물론 이번 결정으로 싸움이 끝났다고는 생각지 않는다. 반대론자들도 만만치 않을 것이다. 하지만 그들은 이번 결정이 무엇인지 숙고해볼 필요가 있다. 정부 또한 마찬가지다. 누구에게나 선택할, 표현할, 그리고 그것을 즐길 권리가 있다. 그걸 뺏으려 해선 안 된다. 헌재의 결정이 나온 오늘이 내 생일인데, 그동안 관심을 가져온 일들 중 하나가 매듭지어져 좋은 선물이 된 것 같다. 이번 계기로 표현의 자유를 따내기 위한 노력들이 지속됐으면 한다.
이영진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