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상물등급위원회의 상영등급분류 보류는 위헌이라는 헌법재판소 결정이 나왔다. 지난 8월30일 헌법재판소 전원재판부(주심 한대현 재판관)는 등급위가 일정한 사유가 있는 경우, 해당 영화의 상영등급 분류를 보류할 수 있도록 한 현 영화진흥법 제21조4항은 “헌법이 금지하고 있는 사전검열 제도에 해당한다”고 지적하고 이같이 결정했다. 재판관 9명중 7명의 다수 의견을 따른 헌재는 “검열이란 실질적으로 행정권이 주체가 되어 사상이나 의견 등이 발표되기 이전에 그 내용을 심사 선별하는 행위”라고 전제하고, 등급위는 대통령령에 따라 구성된 행정기관이라는 점, 현 등급분류는 상영 전 의무사항으로 이를 어길 경우 형벌까지 부과할 수 있다는 점, 등급분류 보류의 경우 횟수제한이 설정되어 있지 않아 영화 상영금지 조치에 다름 아니라는 점 등을 위헌결정 이유로 들었다.
창작자에게는 표현의 자유를, 관객에게는 볼권리를의 제작자인 조영각씨도 “지난 96년 헌재가 사전심의는 위헌이라고 결정한 것과 맥락을 같이 한다”면서 “이를 계기로 전용관 확보 등 구체적인 논의들이 진행될 것으로 보인다”고 전망했다. 헌재의 위헌결정을 끌어내기까지는 약 2년 가까운 시간이 걸렸다. 발단은 지난해 2월24일, <둘 하나 섹스> 제작진(인디스토리 대표 곽용수)과 소송대리인들(조광희, 정연순, 이상희, 김희제, 김기중 변호사)이 서울행정법원에 ‘상영등급분류 보류결정 취소 청구의 소송’을 내면서부터다. 당시 소장에서 이들은 “등급보류 결정은 헌법상 언론·출판 자유의 본질적 내용을 침해하는 위헌적인 법률에 근거한 것”이라고 주장했다. 재판이 진행되는 과정에서 이들은 영진법의 상영등급분류제도에 대한 위헌심판 제청을 신청했고, 같은해 8월 서울행정법원이 이같은 제청을 받아들여 헌법재판소로 사건이 넘어갔으며, 1년 만에 이같은 결정이 나온 것이다.
이번 결정으로 인해 영상물관련제도의 개편은 불가피해졌다. 일단 등급위는 영진법 개정 이전이라도 등급보류를 내릴 수 없게 됐다. 헌재의 결정은 즉시 효과를 발생시키므로, 현행법상 적시되어 있는 등급보류 조항은 유명무실해졌다. 등급위의 김수용 위원장은 “예를 들어 <둘 하나 섹스>가 등급분류 신청을 하게 되면, 등급위로서는 18세 관람가를 내줘야 한다. 이제 사전규제는 없어졌다”고 설명했다. 그러나 김 위원장은 “예전같으면 등급보류를 받았을 영화들이 형법상 음란물 배포 등의 문제를 발생시킬 소지가 있는 경우에는 제작자와 검찰 양쪽에 이를 통보”하는 등 “영진법 개정 이전까지 한시적으로 나타날 수 있는 문제를 최소화할 수 있는 방안을 강구중”이라고 덧붙였다.
“성인전용관을 도입하자”
이에 따라 지난해 국회에 상정된 영화진흥법(이하 영진법) 개정안 중 등급거부 조항도 조만간 수정될 예정이다. 문화부의 윤성천 사무관은 “이번 결정 취지에 따르자면 개정안에 포함되어 있는 등급거부 역시 위헌이라는 추론이 나온다”며, “여야와 논의를 해서 등급분류 거부조항을 삭제하는 방안을 검토중”이라고 밝혔다. 지난해 문화부는 ‘등급보류제 폐지, 제한상영관 신설’을 골자로 하는 개정안을 마련했지만, 정부 입법으로 추진한 탓에 “음란물을 가려낼 수 있는 최소한의 법적 조치가 필요하다”는 법무부쪽 의견을 수용, 개정안 제21조4항에 “형법 등 다른 법령에 저촉된다고 판단되는 경우에는 상영등급을 분류하지 아니할 수 있다”는 등급거부 조항을 끼워넣어 영화인들의 반발을 불러일으켰다. 현재 정부가 부분적인 개정안 손질에 나섰지만 영화계에서는 등급분류제도에 대한 좀더 전향적이고, 광범위한 논의가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높다. 한국예술종합학교 심광현 영상원장은 “정부에서 추진해온 제한상영관의 경우, 등급보류를 받은 영화들을 구제하기 위한 편법에 불과하다. 등급위의 등급보류 조치가 위헌이라는 결정을 받은 만큼 제한상영관이 아닌 등급외전용관, 정확히 말해서 성인전용관의 도입이 필요하다”고 말하고, 이를 위해서는 “현 등급위가 창작자와 관객의 권리를 보호하기 위한 명실상부한 민간자율기구로 거듭나야 한다”고 덧붙였다.
이번 위헌심판제청 신청에 있어 소송대리인인 조광희 변호사 역시 “영진법뿐만 아니라 음반·비디오물 및 게임물에 관한 법률 역시 등급보류 조항을 둔 만큼 재검토가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여기에 모든 영화에 심의를 필수 의무화하고 있는 조항 역시 재고해야 한다는 주장도 나온다. 영화진흥위원회 김혜준 정책연구실장은 “일반 극장이 아닌 시네마테크에서 상영되는 예술영화, 한정된 공간에서 상영되는 독립, 단편영화 등에 심의를 의무화하고 있는 조항 역시 개정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영진법 개정을 앞두고 영화계와 정부는 당분간 “창작과 표현의 자유”를 보장한 헌재 판결의 취지를 살리기 위한 심도깊은 논의를 나눠야 할 것으로 보인다. 이영진 기자 [email protect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