컨텐츠 바로가기[Skip to contents]
HOME > Magazine > 스페셜 > 스페셜1
옛날 영화를 보러 갔다
2001-09-07

이재룡 감독 등 영화인 4인이 말하는 시네마테크의 매력 (2)

김정령 - 인츠닷컴 영상사업부 사업부장

친구들과 술집에 가듯, 그곳에 가면 즐겁다

영화에 관한 한 다중인격인 나로선 다양한 취향의 영화를 고루 좋아하지만 결코 비디오로 혼자 보는 풍의 영화보기 방식을 좋아하지는 않는다(비디오도 여러 명이 함께 보면 더 재미있다). 그래서 밖에선 꼭 개봉작들을 극장에서 챙겨보고(1회에 관객과 함께 줄서서 기다리며 선물도 받고 흐흐…. 마지막회를 여자변태처럼 맨 뒤에서 보는 맛도 꽤나 재미있다) 심각하고 슬픈 영화에서 슬쩍 울기도 하고 우울하고 철학적인 영화에선 밖에 나와 “으! 살기 싫다”를 다연발하며 담배를 피우기도 하고 즐겁고 행복한 영화일 땐 극장 앞 떡볶이집에서 떡복이를 집어먹으며 눈물나게 웃을 때도 있다. 난 이런 전염되는 ‘공감대’를 좋아한다. 술마시고 음악들으며 사람들과 어울리는 것처럼 시네마테크에서도 잘 보면 비슷한 공감대가 형성돼 있다. 특히 영화 같은 무언가에 미쳐서 지금은 예전 친구들이 없어진 외로운 영혼들이나 혼자서도 잘 노는 친구들이나, 무언가에 편집광처럼 미쳐 있는 친구도 그곳에 가면 편안해진다. 왜냐하면 그곳에 가면 사람들이 아무 약속없이 그곳에 그냥 모여 있기 때문이다.

영화 프로그램에 따라 조금씩 층은 다르지만 비슷한 사람들이다. 서로 잘 알 듯하면서도 쉽사리 서로에게 말도 안 붙이고 새침한 여자애들처럼 웬 프로그램 전단은 그렇게 뚫어져라 보는지 아마도 그들이 저마다 눈인사를 하면서도 입 꽉 다물고 각자 혼자서 열심히 읽은 시네마테크 전단은 선전효과 만점일 거다. 하지만 영화가 시작되면 눈이 반짝(마사루의 친구들처럼)하는 그 표정들이란…. 행복하기 그지없는 표정들이다. 이런 공감대가 자연스럽게 흐르는 공간 시네마테크는 사람들 때문에 좋은 것이다.

브레송이든 로메르든 아님 주성치를 한다 하더라도(언젠가는 하겠지) 비슷한 사람들이 모여 눈이 반짝거릴 공감대의 공간이 생길 테니 말이다. 후후, 상상만 해도 즐겁군!! 주성치 영화기간… 오맹달도 초청하고…. 모두 갈색 슬리퍼에 베개에 눌린 머리 그리고 운동복 차림에… 환호성을 지르고…. 시네마테크는 영화에 대한 사람들의 공감대로 이루어진 문화라고 생각하니까….

노은희 - 제네시스 픽처스 기획실장

그곳에 내 영혼의 약장수가 있다

“<희생>을 보았다”는 것이 자랑이던 시절이 있었다. 그리고 3년쯤 지났을까.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희생>을 보며 졸았다”고 얘기하기 시작했다. 당시 박스오피스 1위를 달리던 모 영화를 만든 모 감독은 연극영화과 재학 시절 먹물 든 선배들의 구박과 젠체하는 동기들의 왕따에도 불구하고 <희생> 같은 종류의 작품은 거들떠보지도 않았던 자신의 소신에 잭팟의 영광을 돌렸다. 그리고 그는 최근 또 하나의 잭팟을 터트렸다. 지금은 그런 시절이다.

영화를 만드는 자들은 사실 약장수다. 어떤 영화를 만들까에 대한 고민은 무좀약을 팔기 위해 차력을 할까 아니면 관절염약을 팔기 위해 뱀쇼를 할까 하는 선택과 본질적으로 다르지 않다. 약장수가 깡통을 돌릴 때 영화를 만드는 자들은 티켓을 파는 것이 다를 뿐, 둘 다 관람료를 받기 위한 행위임에는 동일하다. 영리한 사람들은 결국 우리의 지갑을 열게 하는 것은 약이 아니라 쇼라는 것을 금세 알아차렸다. 보라. 저 눈부신 차력과 뱀쇼의 발전을.

<희생>이 지루하다는 것을 부정할 생각은 없다. 1년 전에 한 여자와 한 남자가 만났느냐 아니냐를 가지고 한 얘기 또 하고 한 얘기 또 하면서 그나마 정답조차도 가르쳐주지 않는 <지난해 마리앵바드에서>나, 두 시간 내내 눈에 띄는 사건이라고는 할아버지 할머니가 도쿄에 사는 자식네 놀러갔다가 할머니가 돌아가신다는 것이 유일한 <동경이야기> 역시 만만치 않을 것이다. 그러나 오즈였는지 레네였는지, 아니면 다른 누구였는지는 가물가물하지만, 눈꺼풀을 비벼가며 들여다본 그 밋밋한 쇼무대의 뒤안에서 언젠가 나는 오롯하게 약병을 지키고 있는 고집스런 약장수를 발견했던 것 같다.

날이 갈수록 세상은 좀더 잔인해지기를 강요하고, 영화들은 좀더 무식해지기를 종용한다. 나 역시 예외는 아니어서 잔인해지기 위해 타인에 대한 연민을 버리고, 무식해지기 위해 자신에 대한 존경을 버리는 스스로를 발견한다. 그건 무좀처럼 창피하고 관절염처럼 욱신거리는 순간이다. 그럴 때 내가 취할 수 있는 유일한 행동은 시네마테크로 피신하는 것이다. 나는 절박하게 예의 그 약장수를 찾는다. 낡은 필름이 돌아가고 초라한 오프닝이 시작된다. 내 경험에 의하면 그는 언제나 그 자리에 서 있었다. 늙지도 병들지도 사라지지도 않은 채로….

▶ 싹은 틔웠다... 그러나 갈 길이 멀다

▶ 함께 둥지 틀까요?

▶ 영화 유학, 이제 갈 필요 없다!

▶ 3500명의 `공범`이 만든 시네필의 천국

▶ 영화에 물주기, 숨통터주기

▶ 영화인 4인이 말하는 시네마테크의 매력 (1)

▶ 영화인 4인이 말하는 시네마테크의 매력 (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