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년 새 우리가 누릴 수 있는 영화문화의 수준은 갑자기 높아졌다. 오슨 웰스, 루이스 브뉘엘, 오즈 야스지로, 잉마르 베리만, 라이너 베르너 파스빈더, 알랭 레네, 마뇰 드 올리베이라, 에릭 로메르 등 말로만 듣던 거장들의 영화가 한 묶음씩 서울 시내 극장에서 필름으로 상영됐다. 지난 8월25일부터 아트선재센터에서 진행된 영화제는 하워드 혹스의 <빅 슬립>, 오슨 웰스의 <시민 케인>, 미조구치 겐지의 <오하루의 일생>, 장 뤽 고다르의 <미치광이 피에로>, 자크 타티의 <윌로씨의 휴가> 등 영화사가 공히 걸작 목록에 포함시킨 작품 12편을 선보였다. 각종 영화 관련 서적을 통해 귀에 익은 이름들이지만 국내 극장에서 상영된 적이 없는 영화들이다.
말로만 듣던 영화를 스크린으로 확인
이런 영화를 필름으로 보게 된 건 극히 최근의 일이다. 1년 전만 해도 여러 번 복사해서 화면이 뭉개진 비디오를 구해 보는 게 고작이었다. 1995년부터 3년여간 영화사 백두대간이 동숭아트센터와 손잡고 예술영화전용관을 운영한 적이 있지만 한 감독의 영화를 한데 모아 상영할 기회는 거의 없었다. 수입한 영화를 한편씩 개봉하는 형태였기 때문이다. 상황이 달라진 건 영화평론가 임재철씨가 운영하는 서울시네마테크가 본격적인 활동을 시작하면서부터다. 1998년 허우샤오시엔 회고전, 1999년 로베르 브레송 회고전을 거쳐 지난해부터 한두달에 한번꼴로 이어진 영화제는 시네마테크 본연의 기능을 일깨운 행사였다. 수십년 전 카메라에 찍힌 이미지는 간혹 세월의 흔적을 드러냈지만 창작자가 원했던 형태에 가장 가깝게 관객과 만났다. 뒤이어 문화학교 서울이 루이스 브뉘엘과 에릭 로메르 회고전을, 하이퍼텍 나다가 잉마르 베리만 회고전을, 아트선재센터가 라이너 베르너 파스빈더 회고전을 기획·상영했다. 이런 영화제들에 대한 관객의 관심도 점차 늘고 있다. 마뇰 드 올리베이라처럼 생소한 감독의 영화를 찾는 관객은 많지 않았지만 잉마르 베리만, 에릭 로메르, 오즈 야스지로, 루이스 브뉘엘 등의 회고전은 평균 좌석점유율이 70%를 넘는 호응을 얻었다. 이들 회고전을 유치했던 아트선재센터 기획팀 김수정씨는 “극장 위치를 물어보는 전화가 대폭 줄었고 영화제 때마다 마주치는 고정관객이 많이 생겼다”고 말한다. 드디어 국내에도 본격적인 시네마테크 문화가 정착한 것일까?
현상만 보면 충분히 ‘그렇다’고 말할 수 있지만 이런 영화제를 준비하는 쪽의 대차대조표는 결코 낙관적인 수치를 보여주지 않는다. 간단히 말해 행사를 하면 할수록 적자가 늘어나는 구조이다. 당장 1∼2년 적자를 감수하며 일할 순 있지만 장기적인 전망을 갖기 힘들기 때문에 몇년 뒤엔 이런 회고전이 자취를 감출 수도 있다. 일례로 가장 왕성한 활동을 벌이고 있는 서울시네마테크는 프로그래머나 팸플릿 집필자의 인건비를 하나도 계산 안 한 상태에서 지금까지 2천만원 넘는 적자를 기록했다. 상영료, 필름운송비, 자막번역료, 대관료 등을 합치면 매번 1천만원 이상의 비용이 든다. 대관료 수입만으로 운영하는 극장도 어려움이 많다. 올해부터 영화제 위주 프로그램을 계속하고 있는 아트선재센터는 1년간 1억원 넘는 적자를 예상한다. 그렇다고 대관료를 올려 적자를 보면서도 회고전 기획을 계속하는 이들을 실망시킬 수도 없는 상황이다. 그간 이런 영화제가 기획되기 힘들었던 것도 수익을 내기는커녕 계속 돈을 쏟아부어야 하는 사업이기 때문이다. 그나마 임재철씨가 직접 프로그램을 짜서 판권소유자와 접촉하는 서울시네마테크를 제외하면 대부분 이런 회고전은 외국 문화원의 협조를 기반으로 진행된다. 파스빈더 회고전의 경우 독일문화원, 전주영화제, 아트선재센터 등이 공동으로 진행비를 부담해 성사됐으며 브뉘엘이나 로메르 회고전도 스페인 대사관과 프랑스 대사관의 협력을 받아 진행할 수 있었다. 서울시네마테크 대표 임재철씨는 “대사관이나 문화원의 협조없이 프로그램을 짤 수 없다면 문화원이 적극적인 활동을 하지 않는 할리우드 고전영화나 50∼60년대 이탈리아영화를 보는 건 불가능하다. 그런 편식이 기형적인 영화문화를 만들 수도 있다”고 말한다. 실제로 국내 영화문화가 성장한 궤적을 살펴보면 70년대 프랑스문화원과 독일문화원이 자주 상영했던 영화들이 당시 영화광들에게 지대한 영향을 끼쳤다. 영화를 볼 수 있는 다른 통로가 없던 시절엔 불가피한 일이었지만 이제는 직접 프로그램을 만드는 영화제가 필요한 때라는 것이다.
고다르, "영화의 모든 걸 시네마테크에서 배웠다"
사실 이런 일을 하는 데 가장 적합한 곳은 국가가 지원하는 시네마테크나 필름아카이브이다. 영화도서관이라 할 수 있는 필름아카이브나 시네마테크는 영화를 수집, 보관하는 외에 프로그램을 짜서 상영함으로써 영화문화의 기본을 만드는 곳이다. 국내엔 영상자료원이 그런 일을 하는 곳이지만 예산부족에 허덕이는 영상자료원은 보유하고 있는 필름을 보관하는 일만으로도 벅차다. 당연히 외국영화 프로그램을 짜고 상영하는 일을 못할 수밖에 없다. 프랑스의 경우 고다르가 “영화에 관한 모든 것을 시네마테크에서 배웠다”고 말한 것처럼 시네마테크가 최고의 영화학교로 기능하고 있다. 파리의 시네마테크는 예산의 90%를 정부에서 보조받고 나머지를 후원금과 매표수입으로 충당한다. 물론 프랑스의 시네마테크도 처음부터 정부가 주도해 만든 것은 아니다. 필름수집에 광적인 에너지를 쏟아부은 앙리 랑글루아가 있었기에 가능했던 일이다. 국가가 정책적으로 영화문화를 부흥시키는 데 앞장서는 프랑스와 달리 미국은 후원회가 잘 발달돼 있다. 뉴욕의 영화문화를 대변하는 링컨센터는 각종 단체나 개인이 제공하는 후원금과 회비로 운영되고 있다. 미국에선 기부금이나 회비를 내면 그 액수의 50∼80%에 해당하는 세금 감면혜택을 받기 때문에 문화계로 유입되는 돈이 자연스레 생겨나는 것이다. 프랑스나 미국 어느 쪽도 해당되지 않는 한국에서 본격적인 시네마테크 활동을 하기 어려운 건 당연하다. 자국영화의 시장점유율이 40%에 달하고 수천억원이 영화계로 유입되는 활황기에 있는 한국영화계가 여전히 불안해보이는 것도 이런 토대가 부실한 데 원인이 있을 것이다.
시네마테크, 멀티플렉스의 얼트바이러스
최근 영화시장의 기형적 모습은 이런 우려를 더 부추긴다. 멀티플렉스의 등장으로 스크린 수는 급속히 늘었지만 볼 수 있는 영화는 줄고 있으며 그나마 개봉주말 흥행성적에 따라 순식간에 다음 타자로 교체되고 있다. 90년대 중반 안드레이 타르코프스키의 <희생>이나 압바스 키아로스타미의 <내 친구의 집은 어디인가> 같은 영화가 대중적 관심을 끌며 예술영화가 상업극장에서 성공하는 이변을 낳기도 했지만 90년대 말부터는 이런 일이 확연히 줄어들었다. “이제는 영화 애호가들이 좋은 영화를 볼 수 있는 곳이 영화제뿐”이라는 영화평론가 정성일씨의 지적대로 주류에 속하지 않는 영화들의 배급통로는 협소해졌다. DVD처럼 새로운 매체가 쉽게 볼 수 없던 영화들을 접할 기회를 만들고 있지만 시장논리가 배척하는 좋은 영화들을 DVD시장이라고 환영하긴 힘들다. 그리고 DVD의 화질이 아무리 좋아도 필름으로 보는 매혹을 집어삼킬 정도는 아니다.
지금 우려되는 것은 뒤늦게 싹튼 시네마테크문화가 일시적인 유행에 그친 뒤 사라지지 않을까 하는 점이다. 정책적 지원이나 조직적인 후원이 뒤따르지 않는다면 충분히 그럴 수 있다. 예술영화전용관에 대해 문예진흥기금을 면제해주던 혜택은 문예진흥기금이 없어지면서 사라질 예정이고 영화제를 할수록 늘어나는 적자를 보전할 만한 뚜렷한 대안이 눈에 띄는 것도 아니다. 최근 영화진흥위원회가 설립을 결의한 미디어센터는 기대해볼 만한 사업이지만 제대로 운영될지 아직 불투명한 상태. 영화산업이 폭발적인 성공을 거두고 있는 지금, 당장의 흥행작보다 절실한 것은 영화계의 백년대계를 생각하는 일이다. 좋은 영화를 볼 수 있는 환경을 지키기 위해 머리를 맞대야 할 시점이다.
남동철 기자 [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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