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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되는 구멍가게로 남고 싶다”
2001-09-07

<엽기적인 그녀> 제작한 신씨네 대표 신철 인터뷰

<거짓말> 이후 1년이 훌쩍 넘도록 신철 대표는 말을 아껴왔다. 공식적인 자리에서도 쉽게 얼굴을 볼 수 없었고, <엽기적인 그녀>의 성공 이후 몰려든 언론의 인터뷰 요청도 사양해왔다. “400만명이 들었다”며 “축하한다”는 말을 건넸을 때도 짧게 “고맙다”고 했을 뿐이다. 사진 촬영도 싫다며, 자신의 이야기는 적게 써달라고 부탁했다.

<엽기적인 그녀>를 시작할 무렵 <거짓말> 개봉과 맞물려 있었는데.

판권 계약하고, 시나리오 나온 게 지난해 초 겨울이었다고 하는데, 사실 기억이 안 난다. 새 영화 하겠다고 한 게 따뜻한 봄이었다고 생각되는 걸 보면, 머릿속이 복잡했긴 복잡했던 모양이다.

얼마나 복잡했기에 그런가.

그땐 뉴스나 신문은 쳐다보지도 않을 정도였다. 등급보류 두번 먹고, 불법 CD는 돌 만큼 돈 상황에서 하루빨리 개봉해야 한다고 생각해서 날짜를 잡아 들어갔는데, 아니나 다를까 음대협(음란폭력성조장매체시민대책협의회)에서 또 시비를 걸어왔고, 일주일 먼저 개봉한 <박하사탕> 극장을 떼간다고 동료들에게 비난을 듣기도 했으니…. 서울 근교 사찰에 절 하러 다니면서 울화를 내렸다.

<편지> <약속> <거짓말> 등에 이어 이번에도 중견감독이다. 곽재용 감독과는 특별한 인연이 있었던 건가. 아니면 그들과 함께 가야 한다는 동료의식 같은 것이 있었나.

곽 감독은 소년이다. 누구보다 여린 감성의 소유자다. 박건섭 이사가 추천하긴 했지만, 충분하다는 판단이 없었다면 안 했을 것이다. 그가 열흘 만에 써온 시나리오 보면서 그대로 가면 되겠다는 확신이 섰다. 누구와 함께 가야 한다는 것은 없다. 한때는 신인감독만 데리고 한다고 욕먹지 않았나. 그때는 내가 어렸을 때니까 중견감독이 어려웠던 것이고, 이제는 경험도 쌓이고 함께 얘기할 수 있게 되니까, 오히려 그게 편하니까 그렇게 된 것 같다.

결과가 좋다. 이번에는 돈을 좀 벌게 된 건가.

또 빚 이야기 하려고 그러나. 이제 좀 그만 했으면 좋겠다. 그러니까 신철 하면 사람들이 빚을 떠올리지. (웃음) 이젠 13평 월세가 아니라 전세 들어 사니까 걱정하지 마라.

세간의 평가에 따르자면, 1세대 충무로 기획자 중에서 비즈니스 감각이 뛰어나다는 평가를 받아왔다. 이번 영화는 어땠나.

솔직히 그런 감각이 있는지 잘 모르겠다. 다만 원작의 에피소드들을 한 줄기로 묶어내면서 느낌을 훼손하지 않고 그대로 살려온 게 주효한 것 같다. 개인적으로 최근 1∼2년 동안 내가 잘할 수 있는, 재밌는 영화 만드는 데 집중하자고 되뇌인 건 사실이다. 인생 살다보면 스트레스의 연속이잖나. 대부분은 극장에서까지 고문당하고 싶어하는 이가 있겠나…. 재미와 의미를 함께 담을 수 있는 건강한 영화였으면 더욱 좋겠지만, 아직은 능력이 모자란 것 같고. <행복은 성적순이 아니잖아요>나 좀 그랬을까, <엽기적인 그녀>는 재밌자고 만들었다. 재미로도 한발 앞선 영화 했으면 좋겠는데, 그것도 힘들다.

흥행할 것이라는 확신이 섰나.

기대가 컸다. 그래서 전국 300만명이 목표라고 후배들을 다그치기도 했고. 하지만 확신한 건 아니었다. 잘될 것 같다는 덕담을 듣긴 했지만, 예매 스코어 보면서도 반신반의했다. 얼떨떨해서 아이엠픽쳐스 최완 사장에게 전화해서 “이거 잘되는 거예요?” 하고 물었더니, 아주 잘되는 거라고 하더라.

<신라의 달밤>과 더불어 여름영화 시즌에 드물게 잘된 한국영화였다. <A.I.>가 꽤 강적으로 예상됐었는데.

<A.I.> 개봉하면 첫주는 무조건 진다, 그 다음주 어떻게 다시 올라갈까 고민했는데 뜻밖에 계속 수위를 지켰다. <백한번째 프로포즈> 개봉했을 때, <쥬라기 공원> 때문에 이틀 만에 극장에서 떨어졌었는데, 그때 쌓였던 원은 푼 셈이지. 예상보다 올해 할리우드영화가 좀 약하지 않았나 싶다.

불리한 싸움이었다고 생각하나.

아니다. 아주 그림이 딱 떨어지진 않지만, 미국에서 <메리에겐 뭔가 특별한 것이 있다>가 개봉했을 때 <고질라> <아마겟돈> 같은 대작이 버티고 있었는데도 다크호스로 떠오른 적도 있지 않나. 그런 위치 정도면 되지 않을까 했다. 두 젊은 배우를 내세운 마케팅이 호소력 있었다고 본다.

<엽기적인 그녀>는 주관객층이 10대에서 20대 초반으로 좁다면 좁은 편이었는데, 개봉 이후 애초 2차 관객으로 잡았던 20대 후반으로도 넓어졌다.

요즘 연상녀, 연하남 커플이 유행하지 않나. 사실 ‘엽기’는 고정적인 성역할에 대한 컨벤션에 비춰보면 그것을 벗어난 것이다. 전체적으로 보면 본질적인 거부는 아니었지만, 영화 초반부에 나오는 캐릭터나 상황들이 결국 관객층을 넓혔고, 관습적인 엔딩 부분의 약점도 어느 정도 상쇄해줬다고 본다.

몸집을 키우고 싶다는 욕심은 없나.

에이. 그건 내가 죽어도 못하는 거다. 감당이 안 된다. 내 욕심은 기획, 프로덕션이지 조직은 아니다. 그냥 잘되는 구멍가게로 남고 싶다.

황혜림 기자 blauex.hani.co.kr·이영진 기자 anti.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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