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머, 해머를 패러디하다
역시 테렌스 피셔가 연출한 <드라큘라의 공포>와 <늑대인간의 저주>(1961)는 이른바 ‘고딕호러’라 명명되는 해머영화들의 특징을 잘 보여준다. 예산상으로 볼 때 해머영화들은 분명히 저예산의 B급영화들이었음에도 불구하고 - 일년에 네댓편의 영화들을 찍어냈으며 제작비를 아끼기 위해 같은 배역에 같은 스탭, 그리고 같은 세트를 사용해서 찍어낸 것들도 꽤 있었다 - 비교적 공들인 분장과 화려한 색감의 화면들로 관객의 시선을 붙잡아두는 전략을 채택했다. 불길하게 푸르스름한 기운이 감도는 하늘 한가운데 떠 있는 보름달, 첨탑이 있는 성의 안뜰에 은은히 흐르는 안개, 어두운 숲 사이로 가로질러 달려가는 마차 등의 이미지와 더불어 관객을 섹슈얼한 암시로 가득한 판타지의 세계로 인도해가는 것이다. <늑대인간의 저주>는 자신의 의지와 상관없이 저주의 희생자가 되어 괴물로 변해가는 주인공을 다루고 있다는 점에서 <쿼터매스 익스피리먼트> <프랑켄슈타인의 저주> 등과 같은 맥락에 놓인다. 또한 신분적 차이가 있는 인물들의 사랑이 좌절되는 과정을 묘사하는 데 집중함으로써 역시 공포물보다는 멜로드라마적 특성 - 이 영화에서도 늑대인간의 모습이 온전히 화면 안에 등장하는 것은 거의 영화 종반에 이르러서이다 - 을 강하게 띤다고 말할 수 있다(이러한 특성은 70년대의 ‘카른슈타인 삼부작’에까지 이어지게 된다).
앨프리드 히치콕의 <싸이코>(1960)가 큰 성공을 거둔 이후 해머필름은 몇개의 스릴러영화들을 만들었지만 앞서 성공한 영화들의 변종도 계속 만들어냈다. <드라큘라: 어둠의 왕자>(1966), <프랑켄슈타인은 여자를 창조했다>, <무덤에서 일어난 드라큘라>(1968), <프랑켄슈타인은 죽어야 한다>(1969) 등이 그렇게 만들어진 영화들이다. 이때쯤이면 ‘고전적인’ 해머영화들은 패러디의 대상이 되기에 이른다. <궁지>(1966)로 베를린영화제 금곰상을 수상한 로만 폴란스키가 미국에 건너가 <악마의 씨>(1968)를 찍기 직전에 만든 <용감한 뱀파이어 킬러들>(1967)이 그 예다. 전형적인 해머풍의 오프닝 - 보름달 뜬 언덕을 달려가는 마차 위로 들려오는 내레이터의 목소리 - 으로 시작한 이 영화는, 반쯤 정신이 나간 듯한 교수와 그의 얼간이 조수 - 폴란스키가 직접 연기했다 - 가 주인공임을 밝히는 순간부터 우스워지기 시작한다. 주인공들은 베개를 가지고 흡혈귀의 심장에 말뚝을 박는 방법을 연습해보는가 하면 흡혈귀의 희생자가 된 여관집 주인은 술통에 빠진 뒤 취한 채 피를 찾아 돌아다닌다. 게다가 성에서 만난 흡혈귀 백작은 교수가 쓴 흡혈귀 관련 저서를 감명깊게 읽었다며 서명을 부탁하기까지 한다.
극장수입의 감소에 따라 해머필름은 새로운 전략을 짜기 시작했다. 이렇게 해서 나온 것이 여배우들의 나체를 노골적으로 드러내고 섹스에 집착하는 선정적인 뱀파이어 무비들이다(하지만 결국 해머필름은 1976년에 극장용으로는 마지막 영화를 제작하게 된다). ‘카른슈타인 삼부작’ - <뱀파이어 연인들>(1970), <뱀파이어를 향한 갈망>(1971), <악마의 쌍둥이들>(1971) - 은 셰리던 르 파뉘의 <카밀라>를 원작으로 한 것으로 카른슈타인가의 뱀파이어 구성원들이 주인공이다. <뱀파이어 연인들>에는 폴란스키의 <악마의 씨>에서 보여진 것과 유사한 꿈장면이 삽입되어 수간(獸姦)과 동성애를 환기시키는 장치로 활용되고 있다. 여자 희생자들을 찾아 사랑을 나누고 그녀들의 가슴을 깨물어 피를 얻는 여자 뱀파이어를 주인공으로 한 이 영화는 동성애에 관한 노골적인 묘사로 인해 관심을 끈다. 뱀파이어 사냥꾼들은 기어이 그녀의 무덤을 찾아내어 가슴에 말뚝을 박고 칼로 머리를 내리친다. 여기에서 보여지는 선정성과 섬뜩함 너머에는 오히려 체제를 위협하는 대상을 가차없이 응징하는 데 대한 비난의 시선과 공포가 자리하고 있는 것이다.
21세기에 해머의 영화들을 본다는 것은
오늘날 해머의 영화들을 보는 이들이 예전의 관객이 느꼈을 법한 공포를 체험한다는 건 힘든 일이다. 자신을 쫓아오는 인간들을 피해 한참 도망만 다니다가 너무나도 간단히 처치돼버리고 마는 해머의 몬스터들을 보고 있노라면 오히려 연민의 정이 솟아오르기 십상일 게다. 제작한 이들의 의도와는 다소 동떨어진 것이겠지만 이제 해머의 영화들은 버림받은 타자들의 수난기로 읽힐 여지를 갖게 되었다. 몇몇 해머의 영화들에서 몬스터들이 지니고 있다고 생각되는 악은 그들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외부로부터 주어진 것이다. 예외라 할 캐릭터가 바로 뱀파이어들인데 그들이 보여주는 악을 향한 적극적인 의지는 그들을 <프랑켄슈타인의 저주>에 나온 닥터 프랑켄슈타인의 계보에 놓게 만든다. 하지만 <뱀파이어 연인들>은 그럼 악이란 무엇인가, 하는 질문을 던지게 만든다. 물론 해머의 영화들을 이렇게 보는 것은 온전히 관람자들에게 달린 문제이다. 해머의 영화들은 호러마니아를 자처하는 이에게는 시시한 경험이 될지도 모른다. 반면 공포영화를 별로 즐기지는 않더라도 <뱀파이어와의 인터뷰>나 <슬리피 할로우> 등을 보고 매력을 느꼈던 이라면 반가운 경험이 될 것이다.
유운성/ 영화평론가 [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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