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러의 고향 영국 해머필름스 영화들, 9월5일부터아트선재센터에서
웨스 크레이븐의 <스크림>이 성공을 거둔 이후, 부활한 십대 슬래셔무비들이 여름이면 심심찮게 우리를 찾아오고 있다. 하지만 이러한 귀환이 갑작스러운 것처럼 보이지는 않는다. 지난 10여년 동안 할리우드의 자본으로 만들어진 공포영화 몇편을 떠올려보자. <드라큘라>(1992), <프랑켄슈타인>(1994), <뱀파이어와의 인터뷰>(1994), <메리 라일리>(1996), 그리고 <슬리피 할로우>(1999). 이 영화들은 30년대 유니버셜 스튜디오의 공포물이나 60, 70년대 미국 공포영화 전통과는 일정한 거리를 두면서, 오히려 고딕호러의 스타일을 적극적으로 차용한 것들이었다. 특히 코폴라는 고딕호러의 부활에 상당한 노력을 기울였는데 <드라큘라>를 연출한 것말고도 <프랑켄슈타인>과 <슬리피 할로우>의 제작을 맡기도 했다. <슬리피 할로우>에는 두명의 저명한(?) 연기자가 카메오로 등장한다. 바로 시장 역을 맡은 크리스토퍼 리와 공증인 하덴브룩 역을 맡은 마이클 고프이다. 팀 버튼은 이들을 기용함으로써 자신의 영화가 어떤 전통에 기대고 있는가를 확실히 드러내보인다. 바로 <드라큘라의 공포>(1958) - 크리스토퍼 리는 드라큘라 백작 역을, 마이클 고프는 미나의 남편 홀름우드 역을 맡아 연기한다 - 를 제작한 영국의 소규모 제작사 해머필름프로덕션이다.
섹슈얼 뱀파이어무비로 명성을 얻다
해머필름은 50년대에 만든 Sci-Fi호러 ‘쿼터매스’(Quatermass) 3부작과 드라큘라, 프랑켄슈타인, 늑대인간 등이 등장하는 잡다한 고딕호러물들, 그리고 이른바 ‘카른슈타인 3부작’(Karnstein Trilogy)으로 알려진 섹슈얼한 뱀파이어무비들로 명성을 날렸다. 그외 몇편의 서스펜스 스릴러와 좀비영화들도 제작했지만 역시 이 스튜디오의 명성은 앞에 언급한 장르들로 인해 얻어진 것이다. 해머필름이 세계 각지의 심야상영관에서 명성을 떨치기 시작한 것은 대략 50년대 후반과 60년대에 와서이지만 - 당시 영국의 영화계는 카렐 라이츠, 토니 리처드슨 및 린제이 앤더슨 등의 감독들이 이끄는 리얼리즘적 경향의 ‘키친 싱크(kitchen sink) 영화가 부상하던 때였다 - 그 역사는 훨씬 전으로까지 거슬러올라간다. 1932년 엔리케 카레라스와 윌리엄 하인즈는 카레라스가 소유하고 있던 배급사를 통해 배급할 영화들을 제작하기 위한 별도의 영화사를 만들기로 결정했다. 이 영화사가 바로 해머필름이며 여기서 만들어진 첫 영화의 제목은 <헨리 9세의 공공생활>(1935) - 이때 생각나는 영화가 1933년 알렉산더 코다에 의해 만들어진 <헨리 8세의 사생활>이다. 비디오가게에서 보는 에로영화들마냥 제목부터 벌써 B급냄새를 풍기지 않는가? 해머의 영화들 가운데 이런 식의 제목을 가진 영화는 얼마든지 더 발견할 수 있다. <프랑켄슈타인은 여자를 창조했다>(1967), <지킬 박사와 시스터 하이드>(1971) 등 - 이었다. 이후 해머필름에는 엔리케의 아들인 제임스 카레라스와 윌리엄의 아들인 앤서니 하인즈 등이 합세했다(이들은 이후 해머필름 전성기를 이끌어나가게 된다).
50년대에 해머필름은 영국방송사 <BBC>의 인기 시리즈물인 <쿼터매스 익스피리먼트>의 판권을 사들였고 곧 이 시리즈물의 영화화에 착수했다. 이렇게 해서 나온 것이 바로 쿼터매스 3부작, <쿼터매스 익스피리먼트>(The Quatermass Xperiment, 1955)와 <쿼터매스2>(Quatermass2, 1957), <쿼터매스 앤 더 핏>(Quatermass and the Pit, 1967)이다. 우주과학자인 교수 버나드 쿼터매스를 주인공으로 한 이 영화들은 대략 <X파일>과 유사한 플롯을 지닌 Sci -Fi호러물들이다. 해머필름의 역사에서 이 시리즈가 의미를 갖는 이유는 부분적으로 이후에 주력하게 될 몬스터호러의 가능성을 열어놓았다는 데 있다. 가령 시리즈의 첫 번째 작품인 <쿼터매스 익스피리먼트>에는 자신의 의지와는 관계없이 과학실험의 희생자가 되어 괴물로 변해가는 한 인물이 나오는데, 초라하고 동정을 불러일으키는 외양을 띤데다가 거의 저항할 수 없을 정도로 무기력한 존재라는 점에서 영락없이 프랑켄슈타인 박사가 만들어낸 피조물의 변형으로 비쳐진다(특히 숨어다니던 희생자가 한 소녀를 만나는 장면은 유니버설에서 만들어진 제임스 웨일의 <프랑켄슈타인>(1931)을 강하게 연상시킨다).
아니나 다를까 해머필름의 몬스터무비로의 이행은 메리 셸리의 <프랑켄슈타인>을 영화화하는 것으로 시작하여 <드라큘라> <지킬박사와 하이드 씨> 등의 고전을 각색하는 것으로 이어진다. 사실 원작소설에 충실히 따랐다기보다는 30년대 유니버설에서 만들어진 공포영화들을 바탕으로 대강 각색한 영화들이 주를 이룬다. 토드 브라우닝의 <드라큐라>(1931)와 <낡고 어두운 집>(1932), 웨일의 <프랑켄슈타인>, 그리고 칼 프로인트의 <미이라>(1932) 등이 모조리 리메이크의 대상이 되었다. 이때에 만들어진 해머영화들 가운데 많은 작품을 연출했던 이가 테렌스 피셔이다. 그가 만든 해머영화들은 유니버설의 원작들과는 구별되는 독특한 분위기를 가지고 있으며 강조점도 달랐다. <프랑켄슈타인의 저주>(1957)에서 흉물스런 모습을 지닌 피조물이 완성되어 모습을 드러내는 것은 영화가 시작된 이후 거의 2/3가량이 지나서이다. 이 영화는 공포영화라기보다 프랑켄슈타인 박사의 심리적 추이에 초점을 맞춘 영화이며 성적인 암시가 넘치는 멜로드라마에 가깝다. 프랑켄슈타인은 미와 완전함에 대한 강한 집착을 보이는 인물이자 그것들을 위해서라면 적극적으로 살인까지 저지를 수 있는 인물이다. 피터 쿠싱이 연기한 프랑켄슈타인은 제임스 웨일과 케네스 브래너판의 프랑켄슈타인과 비교해볼 때 가장 악마적인 지성을 지닌 인물로 묘사되고 있다. 현재의 관객들이 이 영화에서 공포를 느끼게 된다면 그것은 피조물의 흉측한 외양 - 크리스토퍼 리가 연기한 피조물은 오직 동정심만을 불러일으킬 뿐이다 - 때문이 아니라 프랑켄슈타인의 악마적 행위 때문일 것이다. 많은 비평가들의 거부에도 불구하고 이 영화는 대단한 성공을 거두었으며 쿠싱과 리는 다른 영화들 - <드라큘라의 공포>, <미이라>(1959) - 에서도 다시 호흡을 맞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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