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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우석 감독의 팩션 블록버스터 <한반도>
강병진 2006-07-28

우리는 한번도 이 땅의 주인인적이 없었다?

“경의선에 관한 모든 권한은 우리 일본이 갖고 있다.” 일본의 이 한마디에 한반도가 얼어붙는다. 100년 전의 조약을 근거로 남북의 경의선 개통식을 방해한 일본은 개통을 취소하지 않을 경우, 한반도로 유입된 모든 기술과 자본을 철수하겠다며 대한민국 정부를 압박한다. 이에 대통령은 일본의 억지 주장에 강경하게 맞서려 하지만, 국가안보와 경제안정을 최우선으로 생각하는 총리(문성근)와 보수파 장관들의 주장도 거세긴 마찬가지다. 한편, 사학계의 이단아 취급을 받아온 역사학자 최민재(조재현)는 100년 전 조약문서에 찍힌 국새는 고종이 직접 만든 가짜이며, 진짜 국새를 찾는다면 한국과 일본의 근대사가 다시 쓰일 수 있다고 확신한다. 최민재에게 마지막 희망을 건 대통령은 ‘국새발굴진상규명위원회’를 구성하여 그에게 일임하고, 불화의 씨를 없애려는 총리는 국정원 서기관 이상현(차인표)에게 최민재를 저지할 것을 명령한다.

영화의 첫 장면은 강우석 감독이 비분강개하는 한반도의 현실을 드러낸다. 경의선 개통식 현장, 남북의 정상과 양측 인사들은 금방이라도 깃발을 흔들며 박수를 칠 준비가 된 듯 하지만, 세계 각국의 축하사절단과 외빈들의 빈자리가 싸늘한 분위기를 조성한다. ‘우리는 한번도 이 땅의 주인인 적이 없었다!’고 말하는 영화의 카피처럼 마음대로 통일을 앞당길 수도 없고, 마음대로 기뻐할 수도 없는 현실이 영화 <한반도>의 시발점이다. 감독은 과거 고종과 명성황후의 죽음에 교량을 걸치고 반복되는 역사의 비극을 강조하면서 왜곡과 분노로 얼룩진 한일 관계에 새로운 관심을 환기한다.

100년의 역사와 동아시아의 정세를 아우르는 만큼 <한반도>는 강우석 감독의 전작들에 비해 가장 거대한 이야기를 가졌다. 역사에 대한 무거운 인식이 배경에 깔린 <한반도>는 관객에게 부담스러운 영화로 다가올지도 모른다. 하지만 <공공의 적>, <실미도> 등에서 사회와 역사에 대한 인식뿐만 아니라 영화적 재미에도 충실했던 강우석은 <한반도>에서도 관객과의 접점을 찾는 데 무심하지 않다. 96억원의 제작비를 들인 <한반도>는 블록버스터로서의 외양에도 힘을 기울였다. 영화의 무대는 청와대와 국정원, 경복궁에서 동해와 상공으로 이어지는 ‘한반도의 육·해·공’ 전체. 이를 위해 고종황제의 장안당과 명성황후의 옥호루, 청와대 내부가 세트로 복원됐으며 국방부 지원하에 구축함과 전투기의 전투태세를 갖추는 장면 등이 실제로 촬영되었다. ‘경의선 개통식’ 장면을 위해 ‘도라산역’은 준공 이래 최초로 민간에게 역사를 개방했다고 한다. 역사적인 인식으로나, 규모면에서 <한반도>는 분명 강우석 감독의 가장 큰 도전이 될 것이다. <실미도>로 대한민국 1천만 관객시대를 열었을 만큼 관객과의 접점에서 우위를 차지하던 그의 자신감이 어떤 결과를 드러낼지 기대된다.

명성황후 강수연

“내 나라, 내 궁에서 무엇이 두려워 숨는단 말이더냐!” 극중 시해당하기 직전 대례복을 입은 명성황후는 눈앞에 칼날을 마주하고도 당당하다. 특히 명성황후가 고종의 침소를 향해 마지막 유언을 울부짖는 장면은 <한반도>의 이야기를 끌고가는 감정이 농축되어 있는 부분. 명성황후를 연기한 강수연은 3분가량 되는 이 장면에서 짧지만 강한 울림을 전해준다.

강우석 감독이 강수연을 선택한 것은 이 시퀀스가 단순한 플래시백이 아니기 때문이다. 지금 시점에서 ‘재조명’의 의미가 큰 만큼, 제작진에서도 아무나 명성황후의 옷을 입을 수 없다는 판단이 전반적이었다. 때마침 최민재 역을 맡은 조재현이 강수연을 추천했고, 강수연 역시 “시나리오를 받아든 순간, 그 의미가 바로 전달되었고 흔쾌히 제안을 수락했다”고 한다. 강우석 감독은 제작진에 촬영횟수나 분량에 관계없이 강수연에 대한 상호 만족스러운 예우를 갖출 것을 지시했고 그에 따라 한국영화 사상 출연 분량 대비 가장 높은 개런티가 지급되었다는 후문이다.

사실 강수연에겐 ‘명성황후’가 처음이 아니다. 1982년, 여고생이었던 강수연은 KBS 대하드라마 <풍운>에서 명성황후의 어린시절을 연기했다(당시 어린 고종은 안정훈이, 성인이 된 명성황후는 탤런트 김영애가 맡았다). 그런 이유가 아니라도 정난정, 장희빈, 장녹수 등 조선시대의 대표적인 여인들을 연기했던 그녀에게 ‘명성황후’는 유독 특별한 캐릭터였을 것이다. <써클> 이후 3년 만에 스크린으로 돌아온 강수연의 다음 작품은 개그맨 리마리오와 함께 공연하는 <비무장지대로 튀어라>(감독 장사현). 이 영화에서 강수연은 다이아몬드를 되찾기 위해 비무장지대 잠입까지 불사하는 조폭 여두목 ‘득남’으로 출연한다.

고종의 독살설

을사조약이 아니라 을사늑약이다. 민비가 아니라 명성황후다. 11월 17일은 명성황후가 시해된 날이며, 역사 속의 그는 이미연이 아니다. <한반도>는 한일 관계에서 오해되어온 것들뿐만 아니라 현재까지도 논란이 되고 있는 부분들을 재조명하려 한다. 그중 대표적인 것이 ‘고종 독살설’. 12살이라는 어린 나이에 왕위에 오른 고종황제는 후에 일본을 비롯한 러시아, 청나라 등 세계열강의 침략 야욕 속에서 끝내 의문의 죽음을 맞는다. 기록에는 평소 즐기던 식혜를 마시다가 사망했다고 적혀 있지만, 학계에서는 일제의 사주를 받은 윤덕영, 한상학 등이 독을 넣어 독살했다는 설이 제기되고 있다. 실제 고종이 독살당했다는 소문은 3·1운동을 촉발시켰다. 또 그 이전인 1898년, 커피를 즐기던 고종과 황태자 순종의 커피에 독을 넣었다는 설도 있다. 커피 맛을 잘 아는 고종은 한 모금 마시다가 뱉어버렸지만 순종은 다 마셔버려 뇌에 이상이 생겼다는 독살미수사건의 일설도 전해진다. 지난 2004년에는 1919년 총독부의 명령을 받은 전의 안상호가 홍차에 독극물인 비소를 탄 뒤 시녀를 통해 고종에게 먹였다는 덕혜 옹주의 증언이 담긴 문건이 발견되어 화제가 되기도 했다.

국새

국새는 영화 <한반도>의 ‘뜨거운 감자’다. 영화뿐만 아니라 현실에서도 마찬가지. 1999년 국민의 정부 때 만든 현 국새는 제작 직후부터 끊임없이 하자 가능성이 거론되다 지난해 10월 더 이상 사용할 수 없는 불량품으로 최종 확인됐다. 감사원이 한국원자력연구소에 의뢰한 결과 “국새 내부 깊숙한 곳까지 금이 가 더 이상 사용할 수 없을 정도가 됐다”는 충격적 소견이 나온 것. 현재 새로운 국새 제작이 이루어지고 있으며, 현대기술을 사용했던 전작과 달리 전통기술을 도입한 제작방식이 고려되고 있다.

영화 속 국새는 현존하는 유일한 국새장인인 국새전각장 세불 민홍규 선생이 직접 참여하여 제작했다. 한 달여 동안 제작된 이 국새는 시가 2천만원 상당의 가치를 지닌 ‘작품’이다. 국새를 제작하는 과정은 실제 문화재관리청에서 추진 중인 대한제국 국새의 복원작업 시기와 맞물려 있던 터라 영화 속 ‘대한 국새’, ‘국새함’은 철저한 고증을 거쳐 만들어졌다. 실제 고종 황제의 국새는 73점이 만들어졌지만, 한일합방과 6·25를 거치면서 2점이 남았고, 그마저도 현재는 행방을 알 수 없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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