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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예고편 봤수?
2001-09-05

<스내치>

Snatch 2000년, 감독 가이 리치 자막 영어, 한국어, 중국어, 타이어, 스페인어, 포르투갈어 화면포맷 1.85:1 지역코드 3

<스내치>는 다른 사람에게 소개하기가 상당히 난감한 영화이다. 우선 빠른 설명을 위해 국내에서도 개봉되었던 감독의 전 작품인 <록 스탁 앤 투 스모킹 배럴즈>를 얘기하자니, 그 영화를 실제로 본 사람이 아닌 경우 십중팔구는 “록… 스모킹… 뭐?”라고 반문할 것이 뻔하다. 그렇다고 <스내치>에 출연하는 세계적인 수준의 스타인 브래드 피트나 <트래픽>으로 최근 주가를 올린 베니치오 델 토로를 언급하자니, 둘 다 10명이 훨씬 넘는 주연배우들(?) 중 한명일 뿐이라 적당하지 않다. 게다가 브래드 피트는 알아들을 수도 없는 아이리시 영어를 웅얼웅얼거리면서 피터지게 맞기도 하는 이상한 놈팡이 집시로 나오고, 한술 더 떠 베니치오 델 토로는 영화가 시작된 지 20여분 뒤면 화면에서 얼굴을 찾을 수가 없다. 고육지책으로 영화장르나 스타일로 얘기를 하지만 더 복잡한 설명이 뒤따라 나와야 하기 때문에 이것도 적절한 방법은 아니다. 그러다 마지막으로 선택하는 방법이 감독인 가이 리치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이지만, 조금만 이야기를 진전시키다보면 ‘마돈나랑 최근에 결혼한 남자’에 대한 이야기로 흘러버리기 일쑤다.

그러나 이 영국 출신의 촉망받는 신예감독이 만든 <스내치>는 전작인 <록 스탁 앤 투 스모킹 배럴즈>에 이어 두뇌회전을 즐기는 관객이라면 정신없이 빠져들게 할 만큼 매력적인 요소가 가득한 아주 재미있는 영화다. 특히 관객을 가장 흥분시키는 요소는 퍼즐조각에 비유되곤 하는 복잡한 스토리 라인. 주요 등장인물이 강아지랑 돼지들까지 포함해서 거의 20명에 달해 관객을 곤혹스럽게 만들지만, 그들이 각각 자기 구역에서 뭔가 일을 열심히 벌리면 그 일들이 꼬이고 꼬여 마지막에 결론이 짜잔… 하고 드러나게 되는 것이다(물론 이렇게 설명해도 영화를 보기 전에는 절대 이해가 되지 않는 게 정상이다). 이런 복잡한 스토리 라인을 더욱 재기발랄하게 만들어주면서 이 영화를 매력적이게 하는 두 번째 요소가 바로 감독의 장기인 빠른 장면전환과 현란한 교차편집이다. 이런 <스내치>의 매력적인 요소들을 또다른 방식으로 유감없이 즐길 수 있는 방법이 있으니, 바로 <스내치>의 DVD에 빼곡이 실려 있는 각종 서플먼트들을 보는 일이다. 그중에서도 ‘극장용 예고편’과 ‘미국용 TV Spot 광고’ 모음들은 편집에 대한 묘미를 마음껏 누려볼 수 있는 코너들로 시선을 사로잡는다. 특히 재미있는 것은 미국시장을 겨냥한 극장용 예고편과 달리 영국시장을 겨냥해 따로 만든 극장용 예고편을 볼 수 있다는 사실이다. 영국시장용 예고편은 화면의 색감에서부터 사용된 이미지와 편집 등이 전혀 다르게 되어 있어, 어떤 예술영화의 예고편을 보는 듯한 색다른 충격을 주기 때문이다. 한편 ‘미국용 TV Spot 광고’ 모음에 실려 있는 세편의 짧은 광고들은 미국용 극장 예고편보다 더 현란한 편집의 묘미를 마음껏 보여준다. 특히 세편 모두가 똑같이 영화의 주요 장면들을 주이미지로 이용하고 있지만, 영상의 전개 순서나 타이포그라피의 사용에 따라 상당히 다른 느낌을 전달해주는 것은 아주 흥미롭다.

<스내치>의 DVD에는 이 밖에도 영화를 찍기 전에 만화형태로 꼼꼼히 만들어진 스토리보드와 실제로 촬영된 영상을 동시에 비교해주는 ‘StoryBoard’ 코너와, 제작 전반에 관한 기록을 담은 ‘Making Snatch’ 등도 들어 있어 영화보는 재미를 배가시켜준다. 그리고 배우들이 연기하는 대사나 해당장면에 대한 감독의 설명을 골라 들을 수 있게 만들어져 있는 ‘Deleted Scenes’ 코너도 무척 재미있다. 따라서 <스내치> DVD는 가이 리치 감독의 팬들에게는 경전으로, 그 이외의 관객에게는 신기한 볼거리로 그 역할을 충분히 할 것으로 보인다.

김소연/ DVD칼럼니스트 [email protect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