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년 동안 변치 않는 편안함, 배우 안성기에 대해 알고 싶은 30가지 것들
<무사>의 시사회가 있던 8월20일, 안성기씨가 스튜디오에 들어선 것은 저녁 9시 반이 다 되어서였다. 그날 아침 11시부터 계속 인터뷰를 하느라 한끼도 못 먹었다며 약속을 좀 늦춰달라고 양해를 구한 그는, 언제나처럼 단출하게 혼자였다. 영화사 직원 한명이 동행했을 뿐, 데뷔 전의 신인들에게도 따라붙는 매니저나 코디, 메이크업 담당은 찾아볼 수 없었다. “모양새가 어떻든 이게 편해서”라는 그는 매니저 없이 직접 모든 일을 결정하는 몇 안 되는 배우다.
그는 참으로 꾸준히 우리 곁을 지켜왔다. 57년 <황혼열차>부터 시작한 아역배우 생활을 접어두더라도, 77년 <병사와 아가씨들>을 시작으로 2001년 <무사>까지 스무해가 훨씬 넘도록 거의 한해도 거르지 않고 스크린으로 우리를 찾아왔으니까. 아주 오래된 연인들처럼, 때로는 너무나 익숙한 그를 별 설렘없이 보는 우리 관객의 변덕스러운 시야에 한결같이 머물러온 것이다. 그 한결같음은 어쩌면 배우 이전에 안성기라는 ‘사람’이 품고 있는 미덕이다. 묵묵히 자신의 부대를 이끌며 철없는 장군을 보좌하는 평민 출신 무사 진립이 그러하듯 어떤 역할도 이성과 경험의 회로를 통해 안정되게 소화하는 베테랑 연기자, 아직도 현장에 가장 먼저 나오고 좀처럼 지친 기색 없는 성실한 영화선배. 그리고 커피 선전의 이미지 그대로, 오랜만에 유학생활에서 돌아온 아들과 좀더 함께하기 위해 빨리 귀가하려 애쓰는 자상한 가장.
아내와 함께 쇼핑했다는 검은 쫄티를 의상으로 준비한 그를 카메라에 담기 바빠 다음날로 연장된 인터뷰에서, 실은 이제껏 드러나지 않은 소소한 일상의 모습을 시시콜콜 찾아볼 작정이었다. 오랜 세월 ‘배우’로 함께한 그에게 궁금한 것은 사실 ‘사람’이라고. 하지만 <흑수선> 촬영을 앞둔 양수리 종합촬영소 앞 카페에서 마주 앉은 동안 일단은 인정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는 보이는 대로 한결같은, 혹은 좀체 무너지지 않는 사람이라고. TV보다 라디오를 좋아하고, “처음 시작했을 때나 지금이나 비슷하다”며 “변하지 않는 게 좋다”는 그는, 디지털 속도로 돌아가는 시대에 흔들림 없이 아날로그의 호흡으로 살아가는 사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