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과서 파동이다 신사참배다 해서 한-일관계가 악화일로로 치닫는 가운데 맞은 56번째 광복절. 서울 수색 인근의 한 폐벽돌공장에 차려놓은 세트장에서 막바지 촬영에 여념이 없던 제작진의 분위기는 이날 따라 사뭇 숙연했다. 한국이 일본의 식민지 신세를 벗어나지 못했다는 역사적 상상을 영화의 기본 전제로 삼았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공교롭게도 이날 촬영분이 일본 비밀경찰이 조선인 아지트를 급습해 대학살을 자행하는 장면이었기 때문.
촬영이 시작되면서 한밤중 적막을 찢어놓는 총소리가 터지자 지하 근거지에 은신해 있던 조선인들이 땅바닥을 뒹굴었다. ‘아닌 밤중에 총소리’에 놀란 주변 주민들의 항의 때문에 다음날부턴 총없는 액션장면만 촬영할 수밖에 없었다지만, 이날 장면은 광복절이라는 시간적 상황과 맞물려 비장한 느낌을 전해줬다. 이날 장면은 이같은 비영화적 무게 못지않게 영화 내적으로도 중요한 의미를 가졌다. 조선계라는 사실 때문에 일선에서 밀려나, 독자적으로 수사를 진행하던 중 비밀경찰과 우연히 맞닥뜨린 주인공 사카모토(장동건)가 민족적 정체성을 찾게 되는 계기를 제공하기 때문이다. 일본 비밀경찰의 기관총 난사에 조선인 꼬마 민재의 맑은 눈이 감기는 모습을 본 뒤, 사카모토는 역사를 ‘복원’하기 위한 장정에 나서게 된다.
지난 1월 혹한과 폭설을 뚫고 촬영을 시작, 무더위의 끝자락인 8월 말 일단락지을 예정인 는 편집, CG 등 후반작업을 거쳐 11월 또는 12월쯤 관객을 찾아갈 예정이다.
글 문석 기자·사진 오계옥 기자 [email protected]